렉스, 송도 A4

안기가 처음 트윗에 링크날린 것 보고는 적잖이 놀랐다. REX’s Songdo project.
한국 회사가 얼마나 많이 했고 렉스가 얼마나 많이 했건, 젓가락 꼽아놓은 듯한 뽐새가 당신의 미의식을 얼마나 거스르든지, 안그래도 삭막한 송도를 더 살벌하게 만들던 말던, 분명히 지을 때 더 비쌀테니 괜히 아파트값을 올리는 주범이 되는 것 아니냐는 쓰잘데기없는 조선일보 댓글같은 소리를 하든지 말건. 이게 지어지건 말건, 한국 주거 디자인 상황에선 획기적인 디자인임에는 틀림없다. ((회사 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송도 D 17-1, 18-1도 안지어진다던데))

한국 주거 산업의 역사 (와 부동산의 역사)를 줄줄이 쓰고 싶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고, 그걸 뭐 세상어디에도 없는 특이한 한국의 문화인 것인양 떠드는 것도 귀찮다. 어쨌든 큰 시장에는 틀림없(었)다. 그 특이한 디자인은 법규와 시장에서 비롯되었다. 이 두 (자주 상충하는) 힘이 주거 상품의 디자인을 만들어낸 균형이었다.

주거 시장은 한국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문제를 종종 두리뭉실 퉁쳐서 말하기 일쑤이다. 부동산의 문제가 있고, 건축적인 문제가 있다. 어반 디자인의 문제도 있다. 각각의 원인과 복합의 과정과 결과를 세세히 따지기 보단 뭐가 “아파트의 삭막한 감성” 하나로 퉁쳐서 부동산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와 삭막한 ‘우리네 삶’의 현주소를 설명한다. 몇몇 건축’가’ 혹은 교수’님’들은 아파트에 사는 것조차 죄악시 하며 건축적 형태에 감성들을 부여하신다. 몇몇 아파트 ‘선수’들은 그런 우아를 유치하다며 시장의 진화에 뒤쳐진 공룡들로 치부한다. 심지어 회사에선 ‘일반 건축’ 팀과 ‘주거’팀으로 팀이 나뉘어 있다. ((더 짜증나는 건 사실, 나름 ‘벽을 넘어서 손에 손잡고’ 하시려는 분들이 어설프게 해주시는 것들이긴 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건설회사들은 외국 건축가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니 우리도 애플처럼 이노베이션 해보자구. 너도 나도 스티브 잡스가 되고 싶은 최고 경영자 여러분들께서는 외국 건축가 외국 디자인을 구해오라구. ((한국 디자인 회사들한테 외국 디자인 회사 리스트 뽑아오라고 시키셨다. 저희야 잘 뽑아 드렸죠. 최신 프로젝트. 규모. 야 미국 뭐시기 회사에 너 아는 친구 있다며 연락처 좀 받아와. 아 네. 룰루랄라 이렇게 잘들 말아먹으셨습니다. 나도 먹튀다. 뭘 해먹었어야 먹튀지. 그럼 그냥 튀다.)) 말아먹으신 외국 유명 스타 건축가 분들의 디자인을 줄줄이 나열하는 건 참 재밌긴 하겠는데, 귀찮고, 어쨌든 그 양반들이 망했던 이유는 사실 위에 나열한 우아 건축가들의 실패와 이유가 같다. 우리가 앞선 디자인을 내어놓을테니, 시장에 적합한, 법규에 적합한 부분들은 로컬에서 알아서 하라구. 시장 안에 갇혀 있던 디자이너들은 그 안에 갇혀 있어 실패했고, 시장 밖의 디자이너는 그 밖에서만 바라보고 실패했던 것이다.

그러나 렉스는 밖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안으로 들어와서 정확히 건축적인 문제점을 꿰뚫는 제안을 하였다. 아마도 미식축구 선수같이 생기신 조슈아 프린스-라무스 ((아니 정말 이름에 프린스가 들어간단 말인가)) 흉아가 OMA 시절부터 가져왔던 다년간의 해외 프로젝트의 경험 덕이 아닐까… 라고 내 맘대로 상상.

이 다이어그램 하나면 모든 게 설명된다. 아 저 가운데 펑!하고 터지는거 봐. ‘선수’분들이 믿어왔던 ‘다년간 법규와 시장에 최적화된’ 평면을 펑!하고 터트리고 있다. 그런 많은 ‘어른스러운’ 평면들을 봐왔지만, ((사실 평면 모음집 캐드화일 보면 다 있다.)) 아무도 코어를 의심하진 않았다. 비용에 의해 결정된 것들에 대해선 의심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향에 대한 광적인 집착 (이 부분은 시장과 법규가 일치)을 만족시키는 최고의 방법은 사실 저기에 있었다. 그리고 다른 어떤 외국 건축가들도 그런 상황에 대해 이렇게 깊이 사고한 것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쌩까거나, 장난질을 치거나. 물론 이런 걸 한국 사무실에서 하면 건설회사에서 쌩까겠지만서도.

물론 선수들은 아직도 저거 보고 유치하다고 뭐 재미있네. 그러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나는 이 작품이 일단 지어졌으면 좋겠고, 분양 성공했으면 좋겠다. 어이없는 ‘역발상’ 좀 하지 마시고, 찬찬히 문제를 들여다 보는 것이 최선이다.

Song Do A4 block by REX

I was shocked by recent proposal of REX’s Songdo project. Whether it will be built or not, it is a revolutionary design in Korean housing design.

In fact, some Korean architectural students even ask like this: “Is apartment an architecture?”
It has been a huge industry ((until 2009 and it’s getting worse)) and developed into unique market. Its uniqueness is derived from the code and the market. Two forces (which often conflict) makes equilibrium of this housing product’s design.

Housing market has been serious problem to Korean society. However, people usually couldn’t tell what is the problem. Sometimes real estate causes trouble, sometimes architectural detail was the reason. Sometimes its lack of urban consideration was to blame. But people didn’t differentiate those causes and symptoms and just blame APT ((APT: A PA TU, Korean pronunciation for apartment.)) Even some Korean architects still believe living in apartment is an architectural sin, the other architects (who design APT) blame them as childish idealist. Therefore Korean architectural design industry field seems to divided into two: A general architecture (or its architects) / An APT designer (even hard to be called architects)

The worse is actually, some people wants to across the border. To fuse its distorted history of categorization, they tried to design APT as an architecture, not a product. Whether they really concern about the city or just tried to be a part of big market. They’ve tried to find an answer from architectural design: They have tried to bring old traditional town’s sentiment back or tried to imply the nostalgia of community while blaming real estate developers and construction companies. From these trial and errors, I could see some achievement, but mostly I see them fail. Mostly their ‘proposal’ was ended up in an academic idea or interior design. Market didn’t want them. Professional architects were not professional in housing market, and professional APT designers laugh at them and their attempt, and tried to keep their own way. It wasn’t, in fact, not an issue of architecture, and design decision was made by ‘product development team’ in construction companies. Every architect (and 2nd grade architect) knows that, but ignores not to be hurt.

At some point, construction companies, which have APT brand, start to hire foreign architect. They thought, to be distinguished from other APT brand, they think they have to have some ‘special’ design. They imagine their product as iPod or iPhone. Yes, everyone wants to be Steve Jobs, every company wants to be Apple. They thought design as a decoration, like art. Whatever. I don’t wanna write down all the ugly history of failed APT by world starchitets and their name, but most of the reason they have failed, is almost same reason above. We will bring you an advanced design, but we don’t know your local code. They actually did same mistake as pure Korean architects who tried to be a part of the market.

However recent REX’s proposal nailed it. They dig into the code / the market. Unlike its precedent ‘foreign to Korea and world renowned’ architect, they knew what they should do. I believe it is a result of football-player-looking Joshua Prince-Ramus’ ((Really? Prince in the name?)) international experience in OMA. (Maybe) they did a lot of international projects, especially, Asian projects with the ‘shade’ code. ((As far as I know, the north eastern Asian countries – Japan, Korea and China-  have this similar code.))

This diagram explains everything. Korean housing ‘professional’ designers have believed the optimization of the Korean typical housing plan. I saw many ‘optimized-to-code-and-market-by-time’ plans, ((Usually we have one big CAD file of all the types of typical and successful tower and unit plan.))  No one breaks the rule of core system. Simply it was cost-based decision. No one doubt it. In fact, sad thing is, if a Korean firm propose this, no construction company will accept it.

They still can laugh at this diagram, “So what?” However I wish this project can impact many other “do-as-did” proposals with success as a product. I doubt it could be built, ((My last Song-do work at the previous firm also remains unbuilt for economic recession.)) but wish to be built.

2003년 10월

아이포토 정리한 덕에 옛날 사진들을 들추고 있다. 2003년 10월이니 대학원 첫해였던 걸로 기억한다. 첫학기 하고 바로 휴학, 두번째 학기 때 미네소타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니자에겐 무척이나 어두운 시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쨌거나 몸개그로 밝게 헤쳐나왔다. 사라님은 주로 바닥에 엎드리는 류의 몸개그를 구사하셨던 걸로 안다.

나름 저때만 해도 쥴님이 젊어는 보였는데. – 이미 이 때도 30대 마인드 – 이제는 어쩌다 고쥴되어버린 거근쥴. 이때가 아마 코엑스 죽돌이하던 시절이었다. 라바짜 언니는 어디서 무얼 하실까.

윤기는 고등학교 동창중에 제일 먼저 결혼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게 목표였고, 지금은 애가 둘이다. 오서우는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도 다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신기하다. 염추는 얼마전에 뉴욕에 다녀갔다. 모 공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정체모를 연수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산호세로 보내졌다. 고등 / 대학 시절 전화, 삐삐 안받기로 유명했는데, 이번에 샌프란시스코갔을 때 역시 전화 안 받았다. 인정폰은 건설회사에서 일한다.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악마로 불리우는데, 그 캐릭터가 바로 인정폰이다.

오땡촌은 단연 으뜸의 오덕이다. 오로지 모바일 게임을 위해 SKT에 갔다가 이건 아니잖아를 부르짖으며 블리자드 입사만을 목표로 USC의 게임만드는 학교로 유학을 갔다. 오땡촌 블리자드만 가면 바로 와우 다시 시작할테다.

박준형은 역사학도이다. 처음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는데, 형, 누나 모두 사회과학 전공이라고 했다. 마지막 봤을 때 일본여친 따라 일본 가서 박사님한다고 했다. 마지막 소식은 결혼식이었다.

결혼식에서 촬영을 맡았던 현석이는 이제 자기 프로필을 IMDB에 등록한 어엿한 김기사가 되었다. 가장 최근에 이창동 감독의 시에서 촬영감독을 맡았었다. 이종화는 -정말 아무도 모르는데- 현석이의 학교 작품에 주연을 맡았었다. 거기서 ‘도끼’역을 했었다. 최우재는 코넬에서 MBA를 한다고 했다. 코리안 타운에서 슥 지나쳤다. 나보다 머리크다. 요즘은 페이스북 덕분에 소식을 많이 접한다.

2002년 10월

2002년 졸업 설계.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고 했다는 생각이 든다.그 때나 지금이나 상황이 주어지면 대응하는 방식은 비슷한 것 같다.

그나저나 어차피 직각으로 되어있는 것도 아닌데 모델에 모눈 종이는 뭐하러 붙여 놨을까. 졸업할 4학년이 다 되었는데도, 건물이란게 어떻게 생겨먹어야되는지조차 감이 없었던 것 같다. 도대체 학부에선 뭘 가르쳐주는거야. – 수업을 들어가란 말이다.

당시에 스튜디오에 있던 민성이형은 캠브리지에 가서 마법을 공부하고 있고, 중학교 동창이기까지 한 성문이는 아이아크를 거쳐 나보다 먼저 컬럼비아에 와서 M.Arch를 하고 있다. 중학교 대학교 유학 동창에 친구들도 없는 주제에 만나는 건 백만년에 한번쯤. 도서관에 가면 볼 수 있다. – 당연히 나랑 만나기 힘들다.

이제는 나름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안기. 그리고 아예 LA 시민이 되어버린 가능.

안기는 호주있다가 독일거쳐 지금은 또 로마에 가 있다고. 마일리지 장난 아니겠다.

송도 작업에 이어 호주 작업도 마치고 다시 하이에나처럼 일거리를 찾아 다시 뉴욕으로. 11월이면 또 뉴욕으로 와서 내 방에서 지낼 것 같다.

셋이 같이 뭘했다하면 각자의 힘을 모두 마이너스로 발휘하는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그나저나 AnL studio는 확실히 이름이 좀… 언젠가 잡지에도 소개된다던데 안기 (추한거) 사진 많이 있으니 연락주세요. 모자라면 또 찍어드릴 수도 있습니다. 맞춤형 포토그래퍼.

얼은 이 때 나 도와주러 왔다가 건축은 하면 안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런던에서 5성 호텔 요리사가 되었다. – 믿거나 말거나. – 호텔 요리가 지겨워서 시리얼과 버터밥을 먹는 허세를 부리고 있다.

그리고 잊지 않고 등장해주시는 이 분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무섭 명랑 89.

엇. 알고보니 앞에는 미나뤼도 있네.

졸작 때는 이렇게 선후배 친구 동생 모두 모여 안그래도 튼 거 얼른 접고 야식이나 먹으러 가자며 안되요 진도가… 따위를 지껄이면 새꺄 나도 졸업했어와 같은 감언이설로 자리를 털게 만들어 먹으면 반드시 잔다는 순대국집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보다 나은 작품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자리가 마련되곤 하였다.

당시 민재 모델. 아무리 생각해도 민재는 개그 건축 신동이야. 요즘에야 많이들 저런 걸 만든다지만, 난 당시에 저걸로 민재가 뭘 하려는 지도 몰랐어. 유리에 닭발이라니. 난 벽에 샤시로 빵빵이 창있는 게 이 세상에 다인줄 알았다. 유리만 있는 건물은 귀찮아서 도면 안친 건 줄 알았다.

당시 안기의 모델. 매스 모델이 내 본 모델보다 이뻤다. 그러고보니 디테일 / 매스 라는 단어 자체를 이 친구들이 하는 거 보고 배운 듯 하다. 4년간 배워야할 걸 마지막에 벼락치기로 배우고 졸업했다.

도대체 서현 선생님은 9년 전 사진을 20년전 사진으로 만들어버리셔. – 그 때는 머리가 좀 많으셨긴 하네. ㅎ

당시 졸작 본 모델. 추상과 구상의 미묘한 경계에 … 넌 언제쯤 건축할래 라는 게 항상 서현 선생님의 질문이었는데, 글쎼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언제쯤 하겠습니까.

그러고보니 이 가방은 지금도 쓰고 있다. 이게 사진찍을 당시에도 1년 지난 거였으니까 참 오래도 됐다. 별로 맘에 드는 건 아닌데, 여행갈 땐 막 넣을만큼 꾹꾹 쑤셔넣어도 되니까 꼭 찾게 된다. 가방도 좀 사줘야하는데 가방에 넣을 물건들부터 재정비하고.

저 난데없는 클래식은 학교 복도에 버려져 있던 걸 주워왔던 것. 부팅도 된다. 논현동집에서 전시용으로 보관.. 되다가 니자가 치워버렸다.

그러고보니 이 때 쓰고 있던 마우스는 지금도 잘 쓰고 있다. 로지텍은 명품이에욤. 이때 쓰던 디카는 캐논 익서스. 나름 처음 산 디카였고 니자랑 알바해서 커플로 마련했었던 카메라다. 나중에 재환이한테 넘겼었던 듯. 3-4년 후까지도 니자의 셀프 전용 카메라로 잘 사용되었다. 사실 찍는 내용물들은 오두막이나 익서스나 거기서 거기. 아유 앳된 옛날 마누라 마누라 옛날 사진. 근데 알고보면 피부는 지금이 더 좋은 듯. 돈이 좋아요.

지금 보니 당시에도 아이포토에 넣어서 키워드 태깅 다 해뒀었다. 참 착실하기도 하지. 요즘 좀 게을러졌어. 반성하고 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