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ce Farms

이전에 계획했던 대로 백수철을 데리고 일요일 (6월 30일)에 그레이스 팜즈에 갔다. 뉴욕이나 뉴저지에서는 차로 한시간 정도 운전하면 갈 수 있다.

그레이스팜즈는 원래 이름 그대로 교회 공동체가 운영하는 농장이었다고 한다. 이 건물 (River Building 이라고 부른다.) 은 이 농장 80에이커 (32헥타) 중 3에이커 (1.2헥타) 정도를 비워 새로 지은 커뮤니티 센터이다.

Grace Farms, Google Map

디자인은 그놈의 프리츠커상에 빛나는 SANAA가 했다.

예전에 자연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몇몇 스타 건축가들이 간단한 사진과 모델 형식의 답변을 했던 적이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하도 가물가물해서 SANAA가 아닐수도;;) 다른 건축가들은 나름 심오한 정의와 표현을 했던 반면 SANAA의 경우는 그냥 녹색이랑 나무같은 것을 떨렁 그려놨던 기억이 난다. 하여튼 자연은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라고 할 때 – 그냥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풍으로 ‘자연이 뭐 자연이지.’ 이런 결론이었던 듯.

백수철은 저런 바지를 입었다.

그런 SANAA의 대답은 이건물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건물은 언덕을 따라 SANAA 특유의 헤벌레 커브로 여유만만 늘어져 있다. 하나의 매스 아닌 매스가 길죽한 덩어리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건물 반대쪽에는 말그대로 ‘자연’이 있고 건물은 그 ‘자연스러운’ 곡선을 따라 최선을 다해 투명한 매스가 언덕을 따라 흐른다. 건축이 흐르는 강이라고 River building 이다. 괜히 뚜껑이 반딱 반딱 거리는 것이 아니엇;;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곳에 오는 방법은 자동차 뿐이다. – 자연과 건축이 만나는 방법 – 두개의 주차장이 하나는 언덕 위에, 하나는 언덕 아래에 있다. 이 매스의 자연스러운 댄스가 끝나는 지점은 언덕 위에 있는 오디토리엄 역할을 하는 Sanctuary. 관람을 마치고 차를 탈 수 있도록 위쪽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부러 매스를 피해 농장길을 따라 아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구불구불 매스는 길지만 윗주차장과 아래주차장은 그리 멀지 않다.

아아아 너무 귀여워

사방이 열려있기는 하지만 유일하게 닫혀있던 문이다. 서비스 차로를 막는 문이기 때문에 문이라기보다는 방문객이 큰 무리없이 주차장으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정도만 하면 충분해.’ 라는 느낌으로.

대부분 River Building을 보기 위해 여기에 오는 것이지만 SANAA가 리노베이션을 진행한 Original Barn이 개인적으로는 더 정감이 간다. 원래 교회와 커뮤니티 센터가 있던 미국식 박공 건물 두 동인데, 미국에서 싼 맛에 많이 쓰는 외장도 이렇게만 하면 있어보이게 (그러면서도 소탈하게) 할 수 있구나 싶다. River Building은 여기를 봐도 돈돈디테일 저기를 봐도 돈돈디테일 이렇게 보여서 좀 부담스럽;; 교회라는 프로그램이 어떤 겉모습을 가져야하는지도 잘 말해주는 것이랄까. 그레이스 팜즈를 방문할 예정이시라면 이 정갈한 빌딩이 멋진 답사의 애피타이져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세지마표 토끼의자

SANAA의 리노베이션이니 자기 가구도 팔아야지 가구들과 마감들도 일정한 톤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소박하게 보인다고 결코 소박하지 않은 건물;;

‘소박한’ 두동을 감상하고 있을 무렵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정말 이곳은 비가 오는 날 눈이 오는 날 와봐야 하는 곳이다. 만약 방문이 예정이시라면 꼭 날이 구진 날 찾아 오시길 – 사실 베스트는 소나기가 지나가는 날, 즉 내가 갔던 날이 아닌가 싶다.

건물을 짓고 나면 장마를 맞아봐야 제대로 됐는지 안다고 한다. 이것은 물론 공구리를 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한국 건물의 특성상 방수의 성공적인 시공을 눈으로 확인하는 방법이 따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리버 빌딩에서는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비가 와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자연’과 건물의 경계. 그 얇은 선 하나가 비를 통해 그어진다.

지붕 아래에만 있으면 분명히 건물 안에 자연 밖에 있다고 느낄 수 있고, 자연은 한발 앞에 있지만 저 멀리에 있는 듯 하다. 그에 비하면 낙수장에서는 집안에 있으면 그 폭포를 보기도 힘들다. 손을 내민다고 풀을 만질 수도 없고 물에 발을 담그려면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와야 한다. 하지만 왠지 그냥 폭포위 바위에 앉아 있는 듯 하다.

다시말해 그레이스팜의 리버빌딩에게 ‘자연’은 가촉 거리는 가깝지만 (파노라마로) 관조하는 대상이 된다. 아주 얇지만 분명한 경계가 존재한다. 가깝지만 멀다. 폴링워터는 분명하지 않은 두터운 그라데이션의 경계로 자연을 체험하게 해준다.

사실은 이 얇디 얇고 선명한 경계가 SANAA가 자연에 대해 가지는 태도인 듯 하다.

2009년의 서펀타인 파빌리온. 여기에 정확하게 유리 매스만 밑에다 집어 넣은게 리버빌딩. 이 건물의 명확한 경계는 지붕과 바닥을 통해 이미 만들어져 있고, 그 경계는 저 얇디 얇은 컬럼을 따라 그려진다. 거기에 유리 (아주비싼!) 가 있는가 없는가는 그리 큰 상관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어디에나 분명하게 아주 얇은 선이 분명한 경계를 만들고 있다.

아주 작은 점이 만드는 경계도 있다.

가구가 만드는 영역도 있는데, 저 위치에 저 가구는 위치가 변하지 않는다.

비올 때는 구지 이렇게 해두는 것 같다. (아아 이것도 귀여워!)

숟가락을 놓는 곳도 정해져 있다.

‘자연스러움’ 혹은 ‘자연’ 이라는 단어는 그래서 건축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쉽게 내뱉어서는 안되는 것 같다. 특히나 ‘자연스러운 곡선’ 따위의 게으른 표현으로 자신의 디자인이나 다른 사람의 건축을 설명하면 가서 좀 때려줘야 한다.

그 외에 이 건물은 모든 부분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 4시간 넘게 수철이하고 목이 아프도록 수다를 떨다가 왔다.

심지어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재료에게서 나오는 패턴도 다 예뻐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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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 Sol, run. #gracefarm by #san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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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처음 갔던 게 벌써 3년 전. 건물은 똑같이 아름답고 식당의 메뉴가 좀더 많아졌고 식사로 먹을만한 것도 많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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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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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가도 좋아하고 어른들도 좋아하니 건축뿐 아니라 일반 관광을 원하시는 분들도 즐겁게 반나절 즐기기에 좋다. 월요일만 닫고 일주일 내내 열려있고 매일 매일 뭔 프로그램들도 있다. 아이들을 위한 아트 프로그램이나 자연 관찰 프로그램같은 것도 있으니 아이있는 부모님들도 함께 가면 좋을 듯 하다. https://gracefarms.org/

Falling Water

니자랑 솔이랑 한국 가고 나서 3주간의 휴가를 내고 뉴욕에 와있던 백수철을 데려다 먹이고 재웠다. (SNS없는) 백수철은 우리집이 비기 전까지 (퇴근과 주말이 없는) 후배 박영민의 브루클린 집에서 먹고 살고 있었다. 우리 셋은 한국에서 퇴근과 주말이 없는 회사에서 함께 근무했었다.

내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을 볼 일은 평생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미국 건축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 미술 / 건축사를 기준으로 교육을 받았던 나에겐 보면 좋고 아님 말고 정도의 건물이었다.

New York to Fallingwater

뉴욕에서 다섯시간을 운전해서 가야하는 거리에 있고, 주변에 산과 농장 외에는 없으니 다른 이유를 들어서 가보기에도 나에게는 먼거리에 있어서 방문의 논외였지만, 텍사스에서 학교 생활을 하며 운전을 하면 피로가 풀리는 영민이가 있었던 덕에 수철의 방문 계획에 대해 그래 가보자. 하게 됐다. 물론 기차나 비행기를 알아봤지만, 너무 뻘스럽다.

5시간을 운전해서 도착한 공원은 정말 관리가 잘 되어있었다. 주차장에서부터 조경이 철저히 되어있었고, Visitor Center도 멀쩡했다. 나중에 해설사에게 들은 바로는, 프랭크로이드라이트의 아들의 연인이 설계했다고 한다.

미리 예약해둔 이름을 대고 들어가서 주차를 하고 비지터 센터의 레지스트레이션에 왔다고 알려주면 대기그룹의 순번을 알려준다. 시간도 예약해서 와야하지만 방문객이 많아서 비지터 센터에서 조금 기다려야한다.

방문시 내부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있고 몸을 움직이다 가구나 핸드레일같은 나무로 만들어진 전시품을 훼손할 수 있는 일정 사이즈 이상의 가구등도 휴대가 불가능하다. 모든 가구와 디테일 들이 모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직접 디자인으로 당시에 제작한 것을 그대로 뒀기 때문이다.

우선 설명과 함께 30-40분 정도의 내부 투어를 한 후 외부를 돌면서 약간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핸드폰 카메라 정도의 카메라 이외엔 촬영을 할 수 없다. 게스트 하우스까지 투어를 마치고 나면 외부로 나와서 건물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Fallingwater 한국 번역명 낙수장 落水莊은 정확히는 Kauffman House 이다. 건축주인 카우프만은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자면 ‘부자부자부자부자부자’ (건축주에 대한 설명 앞에 다섯번 wealthy를 붙였음) 였다고 한다. 구지 말 안해줘도 이 캔틸리버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건물은 크게 두동으로 이루어져있고, 그 유명한 캔틸레버로 이루어진 건물이 1차로 지어졌던 건물이다. 중학교 미술책에서 봤던, 그 머니샷은 폭포위에 얹혀진 쪽만 보이기 때문에 언덕에 캔틸레버를 박아놓은 듯 하지만, 실은 암반 위에 엄청난 하중을 버티는 코어를 짓고 거기에 캔틸리버를 걸어서 늘어트린 것이었다.

그러니까 왼쪽의 사진이 원래의 차량 진입로. 폭포의 뒤쪽으로 진입하도록 되어있었고 후에 브릿지를 걸고 언덕 위편에 2차로 게스트하우스를 지어서 연결하였다.

계단도 캔틸레버에 매달려 있다. 내외부의 재료는 모두 동일한 주변의 암석을 사용하였고 모든 창들도 코너가 오픈된 상태이고 기둥도 없었다. 컨셉대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위에 주택이 살포시 앉아있도록 설계했다. 내가 느끼기엔 그냥 돌바닥에 나앉아있는 것 같았다. 이건 좋은 점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점이기도 하다.

프랭크로이드라이트의 다른 설계들도 그렇듯이, 구석 구석 하나하나 신경쓰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밤새도록 훈련계획서를 초안에서 파란펜으로 긋고 다시쓰고 호치케스 찍어서 다시 워드쳐서 최종 최종 최종 최종.hwp를 만들던 작전과장 생각이 나서 해설자들이 입이 마르고 닳도록 경외하는 그 디테일과 작가 정신에 대해서는 ‘노고에는 경의를 표하나 감동은 좀’ 이라는 평점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프랭크로이드라이트만의 기하학은 나에겐 와닿지가 않는다.

나만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백수철은 코너 코너를 돌 때마나 캬~ 어우~ 하는 것 같았다.

물론 이 과감한 캔티와 매싱, 그리고 본관과 게스트하우스 관리동을 동선으로 엮고 시선은 완벽히 분리해낸 것, 각 공간마다 기승전결의 시퀀스를 배치해둔 것은 두고 두고 기억해둬야할 주택계획의 정석같다. 또 일본 전통 살림집에서 체험해봤던 좁고 어두운 (거의 깜깜이었다.) 진입이나 스케일을 보는 소소한 재미도 있었다.

계속해서 해설사는 미국의 모더니스트라고 하는데, 나는 약간 전통 건축 체험하고 온 것 같았다. 아마도 프랭크로이드라이트의 ‘이유없는 이유있는’ 집착이 내가 생각하는 모더니스트의 정의와 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모두 프랭크로이드라이트가 앞뒤없는 건축 덕후였다는 것은 만장일치의 의견. 어찌됐건 미국에선 꼭 가봐야하는 건물이니까, 숙제 한 느낌.

그리고 건축물 먹고 왔다는 기념샷도 남겼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주변엔 아무것도 없고 농장 농장. 겨우겨우 점심먹을 데 찾은 곳은 다이너였다. 아 뭐 깨끗하고 친절하고, 미국식 다이너 좋아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자연 좋아하고 건축 좋아하고 운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추천. 가족 여행은 좀;;

(+ 20190711) 다녀오고 며칠 뒤, UNESCO에서 올해의 세계 문화 유산을 발표했는데, 이번에 한국의 서원들과 프랭크로이드의 작품들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stairway to class

April 09, 2004

2004년 대학원 스튜디오 “Folly” 작업.

http://jacopast.com

어떤 종류의 ‘기능이 없는’ 기능의 건물에 대한 수업

May 01, 2004

그 땐 모델만드는 일이 정말 재밌었다.

도미 선생님 스튜디오에서 했던 작업 중에 나 개인적으로는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작업인데, 제대로된 사진이 안남아있네. 에잉.

Storefront Pride

뉴욕시는 2019년 6월 한달간 Stonewall 50 주년을 기념한다고 한다. 이런 쪽에 무식자라서 그냥 이번 주에 프라이드 퍼레이드라도 있나 했는데, 회사 근처 유니온 스퀘어 가게들이 온 힘을 다해 나도 프라이드! 나도 프라이드!하고 있었다.

보통 이런 캠페인은 한주나 반짝 하고 마는데, 하루 하루 포스트잇이 늘어가길래,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나, 하고 검색해보니 스톤월항쟁 Stonewall Riot 50주년이라고 한다.

50주년이라니.

50년전 6월에 스톤월 항쟁이란 것이 있었고, 50주년을 기념해서 뉴욕시는 대대적으로 행사를 한다고 한다.

다들 얼마나 창의적으로 50주년 행사를 환영하는지 돌아다니면서 쭉 한번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 현상에 대한 예술적인 대응이 아마존 시대의 거리 상권의 대안이 아닐까 하는 쓰잘데기없는 상상도 하면서

다녔으면 좋겠지만, 비는 오지. 우산은 잃어버렸지. 내일부터는 회사도 안가지.

그래서 이 포스팅은 이쯤에서.

관련링크

A-ya

뉴욕에 누군가가 놀러오면 우선 뉴욕의 지리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해주곤 합니다. 멀리서 뉴욕과 뉴저지를 포함한 The Greater New York Area의 개요를 전해주고, 학술적인 설명은 피한 후 관광객에게 적합한 한두가지 코스를 추천해주곤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기분으로, 친분을 이유로 가끔 출연하는 팟캐스트 ‘엘리, 뉴욕은 원래 독해’에서 평소에 생각하는 ‘뉴욕 (관광)의 개요’를 이야기하였습니다. 항상 하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방송 분량을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두통 및 기침병의 압박으로 취객의 하소연처럼 갈팡질팡 녹음을 하였습니다.

도시 이야기와 함께 (뉴욕의) 어반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더했습니다. ‘예를 들어 알기 쉬운 설명’같은 것을 하려고 하였지만, 오히려 장님 코끼리만지는 듯한 설명이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진행자 분들이 잘 리드하고 정리해주셔서 제가 생각하는 어반디자인이 무엇인가를 제가 말하면서 속으로 조금 정리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의 횡설수설과 취객 발음을 견디고 들어보시면, 뉴욕에 대해, 그리고 뉴욕에서 하는 어반 디자인에 대해 조금은 궁금증을 해소하거나… 더 많은 궁금증이 생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팟빵] 엘리! 뉴욕은 원래 독해!! ENWD 1-98, 자코의 아~야~~ 도시이야기
http://m.podbbang.com/ch/episode/16681?e=23064717

Study Model

On July 22, 2014 at 05:05AM, https://flic.kr/p/2eLwqC9

Cooper Robertson 시절, Balmori 하고 함께 했던 11th St Bridge competition 스터디 모델. 오랜만에 모델도 만들고 스터디도 많이 하고. 중간에 솔이가 태어나는 바람에 최종 결승 제출일에 신경 못써서 결과물의 많은 부분이 발모리 쪽으로 넘어갔었다.

  • 쓴포도 – 최종 심사까지 올라갔지만, 탈락. 솔직히 나는 최종까지 올라간 것도 신기했음. 컴피티션도 해본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라는 걸 느꼈음.
  • 신포도 – 2018년에도 아직 모금 중이니, 당선됐어도 골치 아팠겠다 싶음.

Notre Dame Proposals

4월 15일 노틀담 성당에 화재가 있었고, 이런 저런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복구에 관한 모금을 두고 제국주의와 문화재에 대한 논쟁이 오갔고, 나의 입장은 대략 이랬습니다.

SNS나 웹상의 글들을 보면 적당히 필터링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조금 배우신 분들도 자꾸 과거 약탈 이야기를 꺼내며 ‘배운듯한 비아냥’을 보니 그저 하나마나한 커멘트를 하나 덧붙인 겁니다.

제국주의 약탈의 역사에 대해서는 그 역시 따져야할 문제이지만, 이 사건과는 별개의 문제로 다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적으로 ‘역사적 과오와 현재의 가치에 대한 충돌’에 대해서는 ‘미래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인과적인 관계’가 선명치 않다면 두 문제는 따로 놓고 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입니다.

인스타그램 건축

약간의 buzz가 잠잠해질 무렵, 다시 재미있는 이슈가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처음은 Mathieu Lehanneur 라는 프랑스 디자이너의 인스타그램 계정이었고, ‘이게 뭐야’ 싶은 그림이 떴습니다.

그리고 많은 아이디어들이 뒤따랐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각각은 나름의 이유가 있고,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고딕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했고, 고딕 성당이 구현하려던 가치는 무엇이고, 종교란 무엇인가, 상징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해석한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21세기의 건축이란 무엇이고 환경에는 어떻게 적응해야하는가를 곱씹어 보는 것이죠. 각각의 안에 대해서는 아래의 FastCo의 기사를 참조하면 좋을 듯 합니다.

The race to redesign Notre-Dame is heating up–here are 6 of the wildest ideas
– Recycled plastics, solar panels, greenhouses, and urban farms–because why not? (https://www.fastcompany.com/90347839/the-race-to-redesign-notre-dame-is-heating-up-here-are-6-of-the-wildest-ideas)

처음엔, ‘튀어보자’, ‘이름한번얹어보자’ 같은 짓같아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꽤나 그림들을 진지하게 만들었고 (진지한 개소리라고 하더라도) 여러 뉴스에서 함께 다뤄지는 것을 보니 잠깐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건축은 구축 (Tectonic)과 선언 (Statement) 입니다. 위의 그림들은 선언이고, 이전부터 중요한 건축의 절점마다 구축되지 못한 선언들이 그 시작을 알려왔습니다. 저 그림들이 역사에 남을만큼의 수준이 되는 그림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건축사 수업 혹은 건축사 교과서 한켠에 고딕에 대한 챕터는 있을테고, 그 수업에는 노틀담 성당을 다루고 고딕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버트리스와 높은 천정을 설명할 때, 이 그림들이 다시 등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세의 건축적 선언이 중세의 기술로 구축된 장면 (화재 이전의 성당 모습)과 21세기 초의 기술로 구축을 상상한 선언이 ‘포토샵으로’ 구축된 장면을 중첩해서 보면, 보다 선명하게 노틀담을 짓던 사람들이 ‘원하던 바’와 ‘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할 수 있는 것은, 해야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컴피티션

‘다시 생각한 복구’를 이야기하면 생각나는 독일 국가의회 의사당 Reichstagsgebäude 입니다. Norman Foster의 작업입니다.

돔이 파괴된 채로 사용되던 70년대의 의사당 (wikipedia)

화재와 전쟁 등으로 파괴되었지만 돔을 다시 올리는 것과 같은 대대적인 보수는 하지 않고 사용하다가 90년대 이후 대대적인 복구를 하였고, 이 시대의 가치에 맞는 형태의 복구는 이런 것이다. 하며 포스터경의 유리돔이 얹혀지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치에 맞고, 친환경의 가치를 구현했다는 이유로 지금도 포스터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투명하고 친환경적으로 보수한 의사당 (wikipedia)

다시 노틀담 이야기로 되돌아가서, 뉴욕타임즈의 기사는 화재 후의 논의에 대해서 좀더 다루고 있습니다. 화재 진압하자 마자 대통령이 나서서 – 우리는 복구 열심히 할 겁니다! 5년내로! 하니 나도 성금을! 너도 모금을! – 감동의 기자 회견을 하는 듯 했으나

Glass, Golden Flames or a Beam of Light:
What Should Replace Notre-Dame’s Spire?
Alex Marshall, May 20, 2019, NYTimes https://www.nytimes.com/2019/05/10/arts/design/notre-dame-spire-designs.html

1,100명의 건축 / 역사 지식인들이, 워워. 생각 좀 하고 움직입시다 “take time to find the right way” 라며 서안을 내고, 프랑스 정부도 복원방식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정말로 다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공식적으로 컴피티션을 준비한다고 했고, 비공식적인 컴피티션도 열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농담

뉴스를 쭉 따라가다 보니 예전 숭례문 생각도 나고,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이런 안들이었습니다.

수영장!
주차장!!!!

이렇게 대놓고 웃겨보자는 안들이 오히려 눈길을 끄는 이유는 눈길을 끌자고 만들었으니까 현실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제국 주의 약탈’까지 이야기 하면서 냉소를 날리는 것도 좋지만, 개소리라도 정성스런 개소리라고, 이런 건축적인 농담을 많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5월 29일 업데이트)

프랑스 국회에서 표결. – 헛소리 그만하고 화재이전으로 그대로 되돌려라. (풋) https://archpaper.com/2019/05/notre-dame-cathedral-french-senate-rebuild-original/

Site visit

이번 달 초에 저널스퀘어에 한번 더 다녀왔다. 뉴저지에서 뉴저지로 가는 건데 뉴욕보다 멀다. 모든 인프라가 뉴욕을 향하고 있으니 생기는 현상이기도 하고 뉴저지가 대중 교통에 투자를 게을리하는 탓이기도 하다. 

예전에 뉴왁가서도 느꼈던 거지만 이 동네도 개츠비 시대의 영광같은 게 조금 남아있다. 거기에 중 / 서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만들어내는 묘한 공기가 있다. 

그대로 소프라노스를 찍어도 되는 동네. 

이런 거 브루클린이었으면 바로 힙인테리어로 커피숍으로 변신하고 가게 로고와 티셔츠까지 굴뚝으로 딱. 

스타벅스는 얼마전에 하나 생겼다. 역 바로 앞에. 

하지만 나무가 저렇게 자라면 아파트는 좋아진다. 

저멀리 트럼프 사위 (역시 부동산) 의 새 타워가 동네가 바뀌기로 했다고 알려주고 있다. 

좀 섬세하게 만들어졌으나 낡아버린 뉴왁과 달리 브루털하게 만들어졌던 저널스퀘어. 그러나 저러나 낡은 건 마찬가지. 

이래도 되나 싶은 법규. 좀 너무 막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정상적인 도시에선 생기기 힘든 틈. 가리워진 (휘는) 길의 파워는 대단하구나. 

우연히 만들어진 공간이지만 대단했다. 

그러니까 저 두 건물 사이의 틈이었다. 

글 제목이 사이트 답사인데 사이트 사진은 한장있네. 당연히 대부분의 사진은 회사 서버에 있지요. 사이트 사진이 아닌 사진이 이쁜 것들이니까 이렇게 블로그에서 재활용. 그나저나 저 극장 참 예쁘다. 

사진은 모두 iphone7+에서 촬영, dark room에서 a100필터 일괄 적용. 

선거, 디자인

한국 정치가 너무 재밌어서 요즘은 넷플릭스도 안본다. 맨날 한국 뉴스만 보니 눈에도 선거 관련된 디자인만 보인다.

프리젠테이션
대선 후보 토론에서 각 후보가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약간의 직업병이 발동하여 화면을 봤다. 가장 간극이 큰 두 피티는 문재인 후보와 홍준표 후보의 피티화면이었다. 문재인의 피티는 디자이너들이 한땀한땀 템플릿 디자인과 Bullet point와 장평 자간까지 잘 했고, 홍준표는 감성 사진에 뻘건 글씨 팍팍. 글쎄. 여기 학교도 아니고 디자이너들이 모여있는 것도 아닌데, 문재인 쪽 디자이너들은 일을 하다만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예쁜 피티화면까지 내부적으로 회의할 때 쓰고, 그게 홍준표 수준으로 단순 무식하게 변환되는 과정을 더 거쳤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포스터
손혜원 의원 무척 좋아한다. XX천재 어쩌구 하는 류를 싫어하고, ‘파격’ 혹은 ‘기존의 상식을 벗어난’ 어쩌구라고 보도되는 디자인을 매우 매우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포스터 별로 맘에 안들고, 안철수 포스터 이 정도면 멀쩡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문재인 포스터에 대한 기사에서 누가 폰트를 했고, 숫자의 컬러는 누가 정했고, 뽀샵 안했고 등등의 구질 구질한 설명이 덧붙여지는 걸 보니 더욱더 ‘아유. 똑똑한 병신 디자이너들.’ 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안철수 포스터는 당선에 도움은 안되지만 두고 두고 회자될 아이템이라는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 같은 운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의 완성도는 없지만.

한쪽은 전문가가 너무 많이 모여서 이도 저도 아닌 결과가 나온 것이고, 한쪽은 바보들이 모여있는데 전문가라 불리우는 사람 하나가 나타나서 어어어어 이래도 되는 건가.. 어어어어…. 뒷걸음치다가 쥐잡은 경우같다. 포스터에 정당이름 뺀거는 법적인 이유가 걸린다면 모르겠는데 그다지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거 넣고 저거 넣어야하고 하다가 망하는 포스터 한두번 봤나. 뺄 수 있는 한 빼고 잘 뽑은 건데, 트집잡으려고 잡는 거지 뭐. 그리고 포토샵을 한 것에 대해 진정성을 논하는 것도 너무 치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안철수쪽에서 디자인을 잘하고 있다는 건 절대로 아니다. 타인의 선거 유세를 해주고 있다는 병신 현수막만드신 분, 아무래도 포트폴리오에서 이번 건은 넣지 않으실 것 같다.

https://twitter.com/gama58th/status/853993054214148097

그 외
웹캠페인은 그나마 잘 했다. 문측 외에 다른 데는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선거 공약 쇼핑몰과 내가 대통령이라면 포스터만들기 참 맘에 든다.

사이트


음 일하다가 잠시 머리를 식히러 바닷가에 바람을 쐬러 다녀…

왔을리가 없고 기차타고 한시간 걸리는 사이트다녀왔다. 다음 회의 때문에 기차시간 맞추느라 사진을 달려가면서 찍었다. 그 와중에 cortex cam을 써서 달리다 숨참고 사진찍고 달렸다.

회의하다 이 길의 성격에 대해 “고아”라는 결론이 나왔다. 주정부 카운티 빌리지 사이에 애매하게 부모잃은 거리.

아 정말 이 동네를 어쩌면 좋니… 싶다가도

어딜가나 사람사는데는 그래도 어? 하고 멈춰서게 되는 공간들이 있다. 더군다나 미국에선 잘 있지 않은 길인데 이런 게 프로젝트에서 주목을 못받아서 아쉽다. 그렇다고 내가 낭만스럽게 이걸 꺼내드는 것은 좀 말이 안되긴 하는 상황. 프로젝트에서 시간이 좀 남으면 간략하게 정리해서 한두페이지 밀어넣어봐야지.

사진은 다 iPhone 7+, Cortex Cam으로 찍고 컬러는 Darkroom에서 흑백은 아이폰의 기본 Noir 필터 적용.

결정

최종 결정권자가 얼마나 정확하게 ‘직접’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가 프로젝트에 미치는 영향.

어떨 땐 오후 3시에 촬영이 끝나기도 하고 대부분은 다 오후 5시 이전에 끝났다

연상호

엉뚱한 시도보다 미리 고민하고, 준비한 스토리대로 찍은 영화. 3개월이 안 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다

봉준호

그러고보니 둘다 기차 영화를 찍었네. 역시 철덕인가…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샤워도 하고 노닥거리기도 하는 일상의 행복이 거기서 이루어져야죠. 촬영은 누군가한테는 특수한 행위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스태프들에겐 일상이거든요.” – 안판석

그에 비해 왕가위 –

문자로 적혀있지는 않지만 직장 생활 해보면 느껴지는 리더의 중요성. 특히 디자인 분야에서.

street performer

맨날 사진찍는 자리에 어느날 베이스 반주로 노래를 하는 형이 있었다. 어. 정말 잘했다.

그러고 보니 이 아코디언 분은 작년에 봤었고,

이런 기괴한 연주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름 그래도 정신사나운 컨셉 하나는 잘 맞았던 듯.

몇일 전에도 또 봤다.

얼마전에 옆집 다슬씨가 말해줘서 알았는데, 버스킹을 하려면 라이센스를 사야한다. 그냥 막 다 되는게 아니라 촘촘히 관리하고 있는 거라는 것.

작년에 집에 가는 길에 마주친 밴드. 라틴풍 + 멈포드앤선즈의 보컬없는 버전 풍이어서 얼른 검색해서 들어보았는데, 유니온스퀘어의 에코빨이었나…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포트 오소리티 버스 터미널의 한가운데 (평면으로도, 섹션으로도)에는 원래 전체 터미널을 관장하는 커맨드 센터같은 것이 있었다. 이제 그런 기능은 필요하지 않거나, 혹은 그 기능이 각종 기술의 발전으로 이 위치에 있어야할 필요가 없어져서 그런 것인지, 커맨드 센터 자리는 비워진 채로 꽤나 오래 있었다. 아마도 내가 본 이후로는 내내 그랬던 것 같다.

아마도 테넌트를 유치하는 것도 조금 애매한 자리였는지 한동안 ‘공사중’ 풍의 가림막으로만 가려져있었고, 옆으로는 옛날 콘솔같은 것이 조금 보이곤 했었다.

그런데 대략 작년 여름부터인가 피아노 한대가 보였고, 난데없는 연주가 터미널 전체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보통 저런 큰 공간에 울려퍼지는 피아노라는 것이 연주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배경음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저번 주에는 꽤나 멋진 보컬의 연주가 있었다.

사람들도 꽤나 멈춰서서 연주를 들었고,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여기 저기서 나왔다. 하여튼 한평만 빈자리가 나도 거기에 누군가 서서 노래를 하든 뭘 하든 냅두질 않는다. 나는 그 틈에서 시작되는 변화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이런 비물리적인 도시적 이벤트를 어반디자인의 일부로 받아들여 ‘Tactical Urbanism’ 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앞으로 이 공간이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의 베타버전과 같은 시도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미루고 신중하고 즐기는 태도에 항상 주목하게 된다.

단순히 이 커맨드 센터 자리에 앞으로 연주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집어넣으면 좋겠다 수준의 문제를 넘어, 이 위치가 가지는 위계가 어떤 것이며, 그 위계가 여기를 지나는 수백만의 사람들의 머리에 일종의 가이드로 작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는 ‘공간의 위계’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이벤트가 되었다. 아마도 저 자리 렌트비가 저 가수 출연료보다 조금은 더 상승하지 않았을까.

7 E 18th St

도대체 이 건물은 이래도 되는 걸까.

구글맵에서 확인해보니 더욱더 가관인게,

capture
Google Map: Link

아래 17th 에선 합벽을 한 건물로 보이는데, 사진을 찍은 18th St에서 보면 두개의 건물 사이에 3층짜리 건물이 껴있어!

이 땅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Tw Cen MT

Twentieth Century a.png작업할 떄 Twentieth Century font 쓰기 정말 싫은데, 제목에 본문에 문서 전체를 이 폰트로 하고, 거의 몇십년간 그 고집을 꺾지 않는데가 있다. 거의 내가 하는 프로젝트에서 갑 중의 갑이 있는데, 예전에 슬쩍 다른 폰트로 파워포인트를 했더니 어느새 폰트가 다 바뀌어 있었다. 심지어 지나가다 지하철에 있는 포스터에도 그 수퍼갑님은 강렬하게 제목 설명할 것 없이 Twentieth Century로 도배를 해두셨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HY-울릉도 M이던가 그 둥글둥글 서체가 한국 건축계에선 (특히 캐드에선) 거의 공식폰트였다. 매우 쓰기 싫었지만, 그래도 ‘줄이 잘 맞는다.’는 나름 이유가 있어서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왜 폰트 디자인하시는 분들 쓰시는 용어 중에, 기억이 안나지만, 글자의 폭과 사이의 공간이 똑같아서 숫자같은거 차트로 만들어두면 줄이 쫙 맞는, 보기는 좋지만 가독성은 떨어진다는, 뭐 그런 걸 부르는 용어가 있었는데 기억은 안난다. 하여간 –

처음엔 이 요상한 서체 Twentieth Century를 고집하는 게 그 수퍼갑님이 스프레드쉬트를 많이 쓰셔서 숫자 줄맞는게 중요해서 그런가 하고 봤더니 그것도 아니야. 안 그래도 안 읽히는 영어가 이 놈의 폰트 땜에 더 안 읽힌다. 폰트 탓이라도 하자.

도대체 이폰트는 이렇게도 무책임하게 J하고 I를 만들어둔거지 쳇 쳇 쳇 보고서 지겨워 쳇 쳇  쳇

방금 회사 전체 메일:

커피가 거의 떨어져서 저번 주에 커피 오더했는데 배달오던 운전기사가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가 완쾌해서 그의 가족과 직장에 돌아가길 기원합시다.

클라이언트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대외비…가 아닌 적이 있었냐만은. 어차피 클라이언트는 한국어를 몰ㄹ;  어쨌든 비밀리에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샌프란 어딘가에 되게 넓은 땅입니다. 뭐 여기의 스트릿스케이프라는 것을 하고 있는데 뭐 쉽게 말하면 길바닥 디자인 중.

이 작업의 시작은 학교의 선생님이셨던 에반 로즈 선생이 자기의 친구들인 우리 회사 파트너들을 끌어들이면서였고, 에반 선생과 우리 회사의 수장들이 함께 디자인을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그게 벌써 몇년 전이고 그 프로젝트의 절반을 끝냈고 이제 나머지 절반을 다시 시작하는 중. 다시 말하면 몇년째 가끔씩 손을 대면서 진행되는 그런 류의 (효자) 프로젝트이다. 그리고 페북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돌았던 뉴스와 같이 그 분의 부고를 접하게 되었다. 부고를 듣기 한두달 전에만 해도 디자인에 관련된 이메일이 오갔고, 그의 친구인 우리 회사 파트너들도 그 소식을 말하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좋은 선생님이었고 뛰어난 디자이너였다. 또한 굉장한 자전거 매니아이기도 했다. 어찌 어찌하여 뉴욕과 동부 쪽으로 와서 일을 하고 살기는 하지만 언제나 샌프란을 자랑스러워했다…. 고 한다.  뭐 사실 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학교에서도 목소리가 너무 작고 그래서 뭐라고 하는지 못알아먹어서 다들 정말 대단하다는데 난 뭐가 대단한지도 몰랐고, 같이 프로젝트할 때도 전자 성대로 내는 억양없는 로보트 목소리로 듣다보니 정말 뭔 소린지 모르고 다른 사람 / 드로잉을 통해서만 그의 뜻을 듣다보니 그저 ‘디자인 잘하는군’이라는 생각 밖에 못했었다.

그런데 얼마전 회의 중에 클라이언트로부터 ‘몇 일전에 시랑 회의를 했다. 이 프로젝트를 지나가는 사이클 트랙에 에반의 이름을 붙이고자 한다. 최종 결정은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 회의 중에 좀 감동해서 울컥했는데 영어로는 뭐라 감탄을 표현할 것이 ‘와우 굿. 그레이트.’ 같은 류 밖에 나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아는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디자이너를 소중히 여기는 도시와 클라이언트가 너무 고마워서, 이 프로젝트는 정말 열심히 한다.

샌프란시스코는 정말 멋진 도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