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

이사를 위해서 짐을 싸다보니 예전에 한국에서 이사올 때 가져왔던 플라스틱 상자까지 재활용하게 되었다. 파란색 골판 플라스틱 상자. 거실에 이것들이 쌓여있으니 솔이가 그랬다고 한다.

“이거 제이티비씨에 맨날 나오는거 아니야”

5살짜리 애가 파란 박스만으로 뉴스를 연관시키는 걸 보니, 언론과 검찰은 도대체 얼마나 ‘박스들고 나르는 압수 수색’을 노출시키려고 노력한걸까. 또 제이티비씨는 이번에 도대체 얼마나 첫뉴스에 그걸 따라간 걸까.

오픈인롤먼트

해마다 돌아오는 ‘오픈인롤먼트미팅.’ 참으로 미국적인 연례행사. 이것이 무엇이냐 바로 당신의 건강 보험을 무엇으로 하느냐 결정을 하기 위해 보험회사에서 나와서 몇가지 비싼 옵션과 더 비싼 옵션을 보여주면서 너는 또 월급을 털렸다라고 알려주는 행사이다. 작년과 올해가 눈도 오고 비도 오고 해수면은 상승하고 달라지지만 도대체 왜 보험의 옵션은 해마다 변하는지 알 수가 없는 가운데, 몇십년을 이런 험난한 보험 선택을 삶을 살아온 미국인들은 왜 뭘 또 해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 지 알 수가 없다.

정말 편리하게 각 보험 상품을 색으로 구분하고 표도 제공하고 앱도 있고 웹사이트도 설명해주는데 그러니까 애초에 쓸모없는 일을 벌려서 이해할 수 없는 걸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매년 보는 재미가 있다.

새 집

뭔가 기록해둘만한 큰 일이 생김 – 아아 이런 건 나중에 잘 적어둬야지 – 아아 이런 큰 일을 하느라 블로그를 적을 수 없어 – (큰일끝남) – 아아 귀찮아 – 결과는 – 블로그에는 별로 안 중요하고 안 큰 일만 주렁주렁. 이번에도 그럴까 싶어서 그 때 그 때 정리 안하고 적기로.

집을 사기로 했고 본격적으로 하우스 푸어의 길로 걸어들었다. 가난하더라도 이쁘게 배고프고자 예쁜 집을 찾았다. 내년 쯤이나 알아볼까 하다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집이 나타나 덜컥 계약을 해버렸고 중개인을 필두로 은행-변호사를 삼각 편대로 일이 한번도 미끄러지지 않고 진행됐는데 삼개월이 걸려 열쇠를 건내받을 수 있었다.

이 집은 150년이 되었다. 외관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플라스틱 패널 마감이다. 미국 나무집들의 가장 보편적인 (이라 쓰고 제일 싸다 읽는다.) 마감이다. 아마도 미국 가정집들의 이해할 수 없는 싼 느낌의 98%는 이 재료에서 온다고 본다. 마감을 제외하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좋은 점이자 나쁜 점이라면 뒷마당이 쓸데없이 넓다는 것인데, 옆집들은 차고를 만들어 두고 너무 넓은 마당을 조금 줄였다.

열쇠를 건네받는 날, 이전 주인을 처음 만났다. 사실 모든 계약은 변호사 혹은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은 실제로 만날 일은 없다고 한다. 구순은 족히 되어보이는 전직 변호사이신 이 어르신은 딸의 학교를 위해 이 집에 이사왔고, 따님이 장성한 후 이 집은 자신의 오피스로 쓰거나 딸이 살거나 했다고 한다. 변호사답게 깐깐하게 집을 관리했다. 고용한 중개인들을 세번이나 갈아치우며 새 주인을 꼼꼼히 찾았다. 계약 전에 자기 집에 뭐가 언제 고장이 났고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를 적었던 문서를 보내왔고, 다들 이게 뭐지. 어리둥절하고 그 어르신의 중개인은 왜 이런 계약 파토날 일을 하냐고 어르신을 나무라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열쇠를 전해주는 날. 열쇠가 든 봉투에 그동안 자기 집을 관리해왔던 가드너, 배관공, 핸디맨 등등의 연락처를 프린트한 편지를 꺼냈다. 선물이라며. 이들은 이 집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그리고도 기억할 수 없지만 한참 이웃의 친구들 이야기와 그들과 얼마나 친했는가를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며 언제든 연락하라고 해주었다.

집이 사람의 몇 세대의 나이가 되니 내가 집의 주인이 된다는 생각보다는 이제 내가 이 집의 다음 세대 관리인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선배 집사는 그 일을 깔끔하게 끝내고 다음 세대를 위해 키를 넘겨준 셈이다.

이제 이사를 가기 전, 한참 인테리어 공사 중이다. 되도록이면 이 집을 그대로 두고 싶어서 물을 쓰는 공간들을 리노베이션하고 마감이 되어있지 않았던 지하실을 마감하는 정도로 공사를 하고 있다.

201908

8월에 가장 많이 들은 노래들.

BTS의 idol을 듣다가 Nicki Minaj의 랩에서 갑자기 John Mayer 이야기가 나오길래 아니 존메이저가 여기서 왜나와 했더니, 존메이어 형 또 왜 니키한테 플러팅을. 그래서 오랜만에 존메이저 노래를 많이 들었다. 그랬더니 매불쇼에서 갑자기 왜 또 존메이저의 연애사 특집을. (매불쇼 8월 13일 플레이리스트 참조) 그리고 또 무슨 BTS 곡에선가는 정바비도 등장하더라. 와. BTS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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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여름

한국갔다 돌아온 지 딱 한달이 되었다. 가족들도 모두 돌아왔고, 프로젝트는 바쁘다. 아니, 중요 프로젝트가 쉬는 중이니 여기저기 다른 프로젝트를 돕다보니 나만 바쁘다. 새로 이사갈 집도 알아보고 있고, 인생의 숙제 검사라는 대출도 알아보고 있다. 이미 한달이 지났지만 으레 지난 여름이 어땠는가하는 인사에 한국을 다녀왔고 무얼 했나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를 물어보는 질문에 아직도 답한다. 잠깐의 인사에는 제주도에 다녀왔고, 온 가족이 만났다는 정도로 끝을 맺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2019년-여름-가족의 태그로 나의 기억을 정리하면 가장 먼저 기억이 나는 일은 ‘택배 사건’이었을 것이다.

2주간의 한국 방문 동안 온 가족이 제주도를 다녀왔고, 이리 저리 돌아다녔다. 그 와중에 사촌 형수님이 아주 오랜만에 보는 조카에게 선물을 꼭 주고 싶다고 부모님 집으로 값이 나가는 아동복을 택배를 통해서 보내왔는데, 원활한 배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쇼핑몰측과 택배사와 선물을 보낸 형수님 그리고 부모님까지 5각 통신에 알고보니 조카 시혁이의 물건인 줄 알고 그 상자를 가져온 동생네까지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기억을 더듬고 누가 무얼 언제 어떻게 했는지 알리바이를 짜맞추어 갔다. 결론은 흔한 배달 해프닝이었고, 물건은 잘 배달되었다. 어디서나 어느 가족들 사이에서나 벌어지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가장 특별하고 값진 시간이었다. 물론 제주도에서 목동에서 솔이와 시혁이가 같이 노는 장면은 큰 설명없이 스틸사진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흐뭇한 순간이겠지만, 이번 해프닝은 서사적으로 가장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현재의 풀세트 가족이 되기전, 그러니까 동생과 내가 부모님집에서 살던 총각들 시절의 우리집이란 평화로운 조용한 가족이었다. 시끄러울 일을 만들지 않고 서로에게 미끄러지듯 조용히 살았다. 간섭하지 않고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먹고 싶은 것은 남에게 양보하고 의견을 내지 않았다. 그래서 길게 토론할 거리는 보통 학업 직업 재테크 등의 기능적인 활동이었고 다함께 머리를 모아서 고민할 일이란 별로 없었다. 부모님 집은 크고 각자의 방에 들어가서 조용히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이번 택배 사건은 신선한 기억이었다. 동생집의 작은 거실에 둘러앉아서 각자의 기억을 꺼내서 시간조각을 맞추는 일은 나에겐 가족이 함께 방탈출 게임이라도 한 듯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다.

여름이 끝났다. 또 가족들이 보고 싶다.

휴가 – 복귀

2주 간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또 리조트 어딘가로 주말 여행을 갔는데 나만 어딘가에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그래도 솔이가 어른들과 동생과 이렇게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다니 다행이다. 이런 류 경험의 선배말을 빌자면 이 나이 때의 한국 방문은 타국나와 사는 아이에게 평생가는 추억이 된다고 한다.

미국 설계사무실들이 다 그렇지만, 외국인들이 많다. 약삭빠른 미국인들은 디자인을 하지 않아서라고 외국인들끼리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자신의 고향을 다녀오는 조금 긴 휴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하는 날이면 뭔가 특산품같은 걸 키친에 두고 전체 이메일을 보낸다. 메일 제목은 보통 ‘treats from 어떤나라’이다. 여기에서 나름 자신의 정체성, 자기 고향의 정체성을 그러내곤 한다. 물론 해외 여행을 다녀온 미국인은 다녀온 여행지의 특산품같은 것을 사오기도 한다. 그런데 항상 그 특산품이란 것들이 특산품같은 것들이라 별로 먹고 싶지도 않고 그 나라적이지도 않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인도의 무슨 전통 과자라든가 한국의 떡같은 걸 무슨 맛으로 먹겠어. 한국 사람들이 평소에 먹지도 않는 이상한 전통 과자를 한국에서온 트릿이야하는게 맘에 안들었다. 그래서 공항에서 서성이다 좀 한국적인 건 뭘까 생각하다가 핑크퐁과 구데타마 과자를 샀다. 차라리 BTS과자나 레드벨벳과자같은 게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저 계란은 뭐냐 베이컨을 이불로 덮는다 베이비 샤크 땜에 애들 가져다 줬다 등의 잡담을 나누었다. 과자는 그렇게 고급진 맛은 아닌데, 의외로 맛있다는 사람도 있었다. 뭐 구지 와서 맛없다고 할 사람은 없겠지만. 이렇게 작은 일에 쓸데없이 신경써서 기분이 좋다.

완판

회사에 남친 (한국 프로 배구리그 용병) 따라 회사를 그만 두고 대전엘 간다는 미국인 직원이 있는데, 대전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도움을 주기가 힘들어서 안타깝다.

휴가 – 아는 가게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안기가 서현 선생님과 약속을 잡아줘서 민재와 의현이와 함께 만났다. 선생님이 예약하신 익선동의 한 가게였다.

특별히 간판도 메뉴도 없는 아는 사람만 가는 가겐데 특별한 막걸리와 소주를 마셨다. 영화사 대표라는 그 사장님은 새로 들어온 좋은 술과 술에 맞춘 적당한 안주를 내주셨다. 그리고 또 다른 테이블에서 다른 손님들과 술을 드시고 계셨다. 술맛을 모르는 나라서 맛있다고 홀짝홀짝 마시다가 훅갈까봐 조심했는데, 막걸리도 신기하고 소주도 진기했다. 알고보면 우리끼리 떠드느라 선생님이 말씀하실 기회를 많이 안드린 듯.

수요일은 금식 목요일은 건강검진이라 화요일은 부산엘 다녀왔다. 솔이는 부산을 가도 잘 놀고 서울에서도 잘 놀고 제주도에서 잘 놀고 강원도 가서도 잘 노는게 참 한국 체질이다. 어딜 가나 어르신들이 이뻐해주니 그럴만도 하지.

부산에서는 아주 신기한 바닷가 가게를 갔다. 해녀분들이 하는 식당들이 모여있는 가게인데, 쯔께다시로 나오는 해산물들을 돈주고 사먹는 가게. 공짜로 먹던 애들이 공짜인 이유가 있고 돈주고 먹는 건 돈주고 먹는 이유가 있더라. 장모님께서 아시는 가게에 갔고 역시 아시는 건어물 가게에서 쇼핑을 했다.

서울로 돌아와서 건강검진하고 목요일에 큰 이모를 뵈러 갔다. 큰 이모는 엄마에겐 엄마같으신 분이시다. 언제나 큰며느리 역할을 하던 엄마는 큰 이모 앞에서는 수다떨고 어리광피우는 동생이 된다. 엄마가 가장 편하다고 생각하는 어르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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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큰이모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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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이모님은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상도동에 사셨다. 서울 한복판인데, 항상 이 동네의 모든 가게와 동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역시나 아시는 가게엘 가서 갈비찜과 냉면을 먹었다.

어딜 가나 제일 맛있는 가게는 아는 가게인 것 같다.

휴가 – 일요일

일요일은 이번 2019 서울시 건축상에 빛나는 AnLStudio가 디자인한 판교의 Pop House – 예지네 집에 갔다. 토요일과 마찬가지로 며칠 안되는 휴가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목표였으므로 판교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불렀다.

집주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손님들을 불러놓고 아침을 먹으면서 – 그러니까 아침부터 – 처음 이 집이 지어졌을 때를 생각하면서 집구경을 했다. 집자체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지만 여기저기 예지의 필요에 따라 가구며 집기들이 들어오고 처음에 두었던 가구들이 좀 바뀌었다. 조금더 주인과 집이 닮아진 것 같다.

솔이는 무조건 바론이형 오기만을 기다렸다. 무엇이든 한가지 목표만 가지고 집중하고 자기 것에 대한 개념이 강한 탓에 하루 종일 놀다가 착한 바론이 형이 다른 동생과도 놀아준다고 징징댔다. 다같이 노는 것, 어떤 룰을 받아들이도록 공통의 목표를 설정해주고 달래줬는데, 이것 또한 좋은 경험이 된 듯 하다.

아람씨와 윤성씨 그리고 아인이를 백만년만에 만났다. 집주인 쥴나베와 동갑인 둘은 뉴저지에서 살다가 몇년전에 분당으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 아인이는 또 예지와 동갑이기도 하다.

2016년 메릴랜드 휴가 때 아인이와 솔이

바론이와 보람이도 오고, 이안이 쏭이 민석씨도 오고, 키에도 왔다. 솔이의 워너비 형님 바론이는 인스타그램으로만 볼 땐 세상 개구장이인줄 알았는데, 너무 의젓한 형아 오빠였다. 좋은 롤모델을 두었구나 아들.

쏭이가 이안이 밥을 먹이는 걸 보니 와 쏭이도 엄마구나 싶었다. 여기서 막내였던 이안이는 또 솔이랑 비슷하게 언니가 좋다고 쫄랑 쫄랑 아인이를 따라다녔다.

원래는 고기를 구울까 했는데 비가 왔다 말았다 해서 내가 원하던 중국집 배달을 시켰다. 한국 오면 꼭 배달 짜장면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키에는 쥴님 나베님이랑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다들 각자 살아가긴 하지만 이런 거런 인연으로 엮이고 만나게 된다. 그래서 자리에는 없는 벌레아저씨 다슬씨 이름이 자꾸만 거론되곤 했다.

저녁 늦게까지 수다를 떨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아마도 아이들이 아니었으면 밤늦게까지 더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 또 이 많은 사람들을 다 한자리에 만날 수 있을까. 쥴나베님께 고마웠고 Pop House에게도 고마웠다.

그런데 수다떨 때 이름이 너무 했갈렸다. 아람 보람 바론 이안 아인을 계속 발음하다보면 경찰청 창살 쇠창살같은 느낌이다.

휴가 – 토요일

제주도에 다녀와서 서울있는 동안 한번 있는 주말.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려면 주말을 최대한 활용해야만 했다. 토요일은 트위터를 통해 몇몇분들을 집근처에서 만났다. 모두 목동 근처에 사시는 분들도 아닌데 구지 먼길을 와주셔서 솔이를 만나고 가셨다.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아파트에서 현대백화점이 있는 오목교역까지의 거리는 목동아파트 단지가 만들어진 후 꽤나 개발이 된 후에 다시 만들어진 거리이다. 2005년에는 이런 저런 불만이 있었는데 2019년이 되니 이제 너무 붐비는 거리가 되어버렸다. 결국 하루를 이 건물에서 저 건물 사이로 오가며 점심먹고 커피 간식 먹고 커피 저녁 먹고 커피했다.

픽스님이랑은 늘 하는 빈둥 빈둥 커밥커를 하다가 교보문고 핫트랙스에서 이상한 선물같은 걸 뜯어냈다. 제이미님과 정원이가 나타나서 엄청난 양의 로보트를 선물로 줘서 솔이는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고마워 정원아 실은 동생 아니ㅑ 미국 남부도 아니고 가정식도 아닌 느낌의 미국 남부 가정식을 먹고 커피빈엘 갔다. 10년 넘게 그 자리에 그 자리에 있는 커피숍에 가니 고향에 온 느낌.

그리고 픽스님과 간식으로 떡볶이 부페에 갔다. 간식으로 부페 정말.

저녁에는 나무님과 해가 나타났다. 해는 파쿠르를 배운다고 한다. 아 그런 건 나도 배우고 싶다.

해가 고기를 못먹는다고 해서 고기를 먹기로 했다. 배가 불러서 많이 못먹는게 아쉬웠는데 꽤 괜찮은 목살이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사진을 하루종일 안찍었는데 솔이가 열심히 찍었다.

휴가 – 제주도

한국오자마자 회갑연 참석과 롯데월드 수족관 및 아버지 친구분 저녁 약속을 마치고 다음날 프로 예약러 제수씨의 예약에 힘입어 나흘간 제주도에 다녀왔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시혁이는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처음 비행기를 타면 울기 마련이다. 나는 이제 좀 많이 듣고 겪어서 큰 방해를 받지 않는데, 할머니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어서 좀 당황하셨다. 알고보면 많은 일들이 할머니에겐 처음인 것 같다.

숙소는 미리 예약한 덕에 세가족이 묵는 3베드 스위트룸을 하루 이십만원에 빌렸다. 숙소 마지막날부터 태풍이 불어왔으니 안좋은 날씨는 운좋게 잘 피해서 잘 즐겼다. 아이들을 데리고 마구 돌아다닐 수도 없어 대부분의 시간을 숙소에서 보냈으니 그 적은 액수에 뽕을 뽑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많은 자본이 투입된 리조트 컴플렉스인데, 하드웨어엔 충실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어찌할 바를 몰라서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던 엔터테인먼트 컨텐츠들이 4세 이상에겐 어필을 못했다. 뭐 4세와 1세 기준의 여행이었으니 나는 크게 불만 없었다. 저런 말도 안되는 트랜스포머 인터액티브 전시 어쩌구 하는 것은 여지껏 만나본 제주도의 망기획전시의 또다른 예였던 것 같아서 오히려 좀 반가웠다. 제주도의 모든 음식과 자연이 가진 매력만큼 제주도의 모든 전시기획은 최악이다. 어찌 이리 한결같은지.

하루 다섯끼 제주도 음식을 먹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제주도에 갔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매번 식사 여행을 하기도 힘들고 하루에 한번 정도 맛집을 찾아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다행히 숙소 근처의 집들이 대부분 괜찮은 가게들이었다.

도착후 첫끼. 리조트 안에 있는 식당가 라면도 맛있네.

시혁이 낮잠도 재워야하고 무리하지 않은 일정을 잡았으니 숙소 안에서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다. 휴가라면 이래야지.

누워서 빈둥거리다가 리조트 안에 있는 수영장 가서 오랜만에 혼자 수영도 하고 낮잠 자다가 일어나서 먹고 놀았다.

물론 애들이 일어나면 다 기상.

저녁과 함께 해수욕장을 찾았다. 시혁이에게는 처음 바다를, 솔이에게도 역시 처음 한국 바다(?)를 보여주러 나갔다.

부모님은 워낙 제주도에 자주 오셔서 왠만한 제주도 로컬보다 여기 저기 제주도에 관한 것을 잘 아신다. 여기는 한 백미터 걸어나가도 허리밖에 물이 안차. 아이들에게 좋은 곳이지. 라는 것과 같은 디테일과 쓸데없는 쯔께다시없는 자주 가는 횟집이 있는 협재 해수욕장을 찾았다. 식사 마지막의 매운탕에 반찬이 부족하다면서 할머니는 갈치 구이를 추가 주문하셨고, 할아버지는 또 뭘 시키냐고 하셨다. 부모님의 변치않는 모습이 반가웠다. 이미 배가 불러서 뭘 더 먹을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어쨌든 또 다 먹었다.

시혁이는 물을 보자마자 달려나갔고 바다에 엎어졌다.

솔이는 신발에 모래들어가는 거 싫다고 안가려고 하는거 신발 벗기고 발닦는데 있는 거 확인 시켜주고 겨우 들어갔다.

해는 저물고 물은 찬데 시혁이는 멈추지않고 물로 달려들어서 얼른 도망나왔다.


둘째날에는 미리 약속했던 사촌 동생과 저녁 식사를 했다. 이 친구는 카카오에서 일하면서 이곳에서 제수씨를 만나서 결혼해서 살고 있다. 처음에 여기까지만 알고는 ‘아 이번 기회에 매스스터디즈에서 했다는 카카오 본사 건물 구경도 하고 현지인이 찾는 로컬 맛집도 가야지’ 까지 생각했으나, 알고보니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와 반대편에 있었고, 정작 현지인은 이 동네 나와서 평소 안가는 동네 맛집 가보는 것도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모양. 덕분에 힙하게 로컬 재료로 파스타를 만다는 가게에서 힙하게 식사를 했다. 이탈리안이나 프렌치같은 가게를 가면 아버지는 좋아하시고 어머니는 별로 안좋아하신다. 나는 그냥 많이 먹는다.

조카좋아하는 선물이 뭐냐고 부담스러운 선물까지 사가지고 왔다. 와중에 솔이는 잠이 들어버려서 누가 줬는지도 모르고 장난감만 들고 좋아할까봐 증명사진을 찍어뒀다.


셋째날부터는 비가 오기 시작했다. 태풍이 온다고 했지만 오락가락하는 날씨였고, 더운 날씨에 비가 오는둥 마는둥하니 약간 사우나를 헤쳐다녀야하는 날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리조트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고, 테마파크를 찾았다. 솔이가 우연히 슬랩스틱 만화 ‘라바’를 티비에서 한참 보다가 나왔는데, 마침 테마파크의 메인 캐릭터가 라바였다.

비때문에 놀이기구를 몇개 타보진 못했지만 나름 리조트 안에 있는 테마파크치곤 이런 저런 구색은 다 갖춰두고 있었다. 여기가 제주도인지 강원도인지 관심없는 아이들에겐 괜찮은 시설. 다만 이 토종 캐릭터들이 좀더 스토리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억지로 스토리를 엮으려니 좀 …


숙소였던 신화월드라는 곳은 나쁘지 않았다. 가볍게 매일 수영장에 다녀올 수 있었고 깨끗했다. MD도 비교적 잘 해둬서 리조트밖으로 거의 나갈 필요가 없었다. 워터파크도 있고 테마파크도 있고 한류 테마 파크도 있었다. – 그럼 제주도에 왜 온거냐, 그렇다. 사실 이 리조트는 왜 제주도에 있는지 모르겠다. 어디에 있어도 괜찮은 리조트이긴 하다. 사실상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구지 리조트 밖에 안나가도 되는 입장이긴 했지만. 무엇보다 모든 것이 갖춰진 쓰리베드 스위트가 하루에 20만원! 물론 성수기에는 일박에 80만원까지 한답니다.

휴가 첫날 둘째날

7월 14일 일요일

나는 비행기를 타면 – 사실은 모든 교통 수단에 타서 – 쭉 잘 수 있다. 14시간을 중간에 한번 깨서 밥먹고 다시 자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려서 일상 생활을 하는데 별 지장이 없다. 한국에 도착한 시간은 14일 점심쯤. 2주간의 방문이니 많은 약속을 잡지 않았다. 가장 큰 기대는 조카 시혁이를 만나보는 것 정도.

동생이랑 어떻게 노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친절하게 대해는준다.

바로 그날 저녁이 둘째 삼촌의 생일 잔치여서 사촌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열명이 넘는 사촌 형제들이라 모두다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행사가 휴가와 잘 겹쳤다. 사촌 동생 중 하나인 지환이가 9월이면 결혼을 한다고 예비 신부님을 모시고 행사에 나왔다.

7월 15일 월요일

아버지 친구분께 인사를 드리러 잠실에 갔다. 어르신이 뉴저지에 오셔서 저녁 초대를 해주신 적이 있어서 일종의 답방인 셈이었다. 잠실에 가는 김에 아이들을 위해서 미리 롯데월드 수족관에 갔다.

사진은 그럴듯해보이지만, 잠깐 와~하고 끝

7월휴가 (가기전)

3년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영주권 서류가 처리 중인 동안에는 출입국을 안하는 게 서류상 편하다는 변호사의 의견에 따라 최근 일 이년간 한국에 안가다보니 어느새 삼년만에 한국에 가게 되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솔이와 니자는 6월 말에 미리 한국에 갔고, 8월 중순에 돌아올 예정이다. 나는 중간에 두주간 휴가를 냈고 하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가기 전에 이미 7월 초부터 한국에서 이런 사진들이 전해져 왔다.

솔이는, 엄마 품에서 빠져나올 줄 몰랐던 삼년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뭐든지 다해주는) 할아버지 할머니 덕에 한국에 완벽 적응하고 있는 중이었다.

솔이는 다행히 사촌 동생 시혁이와도 큰 트러블없이 잘 놀아주는 것 같았다. 저렇게 온 가족이 모여서 노는 걸 보니 나도 얼른 한국에 가고 싶었다.

7월 5일 고구마

2주를 비우더라도 더운 여름이니 청소를 좀 해두고 갈 필요가 있었다. 청소를 하다가 싹이 자란 남겨진 고구마 감자같은 것들이 있길래 베란다에 놓아둔 ‘아무거나 심는’ 화분에 심어뒀더니 이삼일만에 엄청나게 잎이 자라났다.

201907

7월(초)에 가장 많이 들은 노래들. 2주 휴가 동안 평소의 출퇴근 루틴을 안했더니 팟캐스트도 안듣고 음악도 안들었다. (게다가 휴가 중에 에어팟 케이스가 망가져서 충전도 못했다.) 휴가를 마치고 다시 출근하는 아침에 한국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한국 정치 얘기가 나오면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 같아서 웃겼다. 한국에 다녀오면서 한국 정치 시사 얘기가 멀어졌다가 미국으로 돌아와서 한국 뉴스 심지어 날씨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상에 돌아온 것 같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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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Farms

이전에 계획했던 대로 백수철을 데리고 일요일 (6월 30일)에 그레이스 팜즈에 갔다. 뉴욕이나 뉴저지에서는 차로 한시간 정도 운전하면 갈 수 있다.

그레이스팜즈는 원래 이름 그대로 교회 공동체가 운영하는 농장이었다고 한다. 이 건물 (River Building 이라고 부른다.) 은 이 농장 80에이커 (32헥타) 중 3에이커 (1.2헥타) 정도를 비워 새로 지은 커뮤니티 센터이다.

Grace Farms, Google Map

디자인은 그놈의 프리츠커상에 빛나는 SANAA가 했다.

예전에 자연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몇몇 스타 건축가들이 간단한 사진과 모델 형식의 답변을 했던 적이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하도 가물가물해서 SANAA가 아닐수도;;) 다른 건축가들은 나름 심오한 정의와 표현을 했던 반면 SANAA의 경우는 그냥 녹색이랑 나무같은 것을 떨렁 그려놨던 기억이 난다. 하여튼 자연은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라고 할 때 – 그냥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풍으로 ‘자연이 뭐 자연이지.’ 이런 결론이었던 듯.

백수철은 저런 바지를 입었다.

그런 SANAA의 대답은 이건물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건물은 언덕을 따라 SANAA 특유의 헤벌레 커브로 여유만만 늘어져 있다. 하나의 매스 아닌 매스가 길죽한 덩어리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건물 반대쪽에는 말그대로 ‘자연’이 있고 건물은 그 ‘자연스러운’ 곡선을 따라 최선을 다해 투명한 매스가 언덕을 따라 흐른다. 건축이 흐르는 강이라고 River building 이다. 괜히 뚜껑이 반딱 반딱 거리는 것이 아니엇;;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곳에 오는 방법은 자동차 뿐이다. – 자연과 건축이 만나는 방법 – 두개의 주차장이 하나는 언덕 위에, 하나는 언덕 아래에 있다. 이 매스의 자연스러운 댄스가 끝나는 지점은 언덕 위에 있는 오디토리엄 역할을 하는 Sanctuary. 관람을 마치고 차를 탈 수 있도록 위쪽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부러 매스를 피해 농장길을 따라 아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구불구불 매스는 길지만 윗주차장과 아래주차장은 그리 멀지 않다.

아아아 너무 귀여워

사방이 열려있기는 하지만 유일하게 닫혀있던 문이다. 서비스 차로를 막는 문이기 때문에 문이라기보다는 방문객이 큰 무리없이 주차장으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정도만 하면 충분해.’ 라는 느낌으로.

대부분 River Building을 보기 위해 여기에 오는 것이지만 SANAA가 리노베이션을 진행한 Original Barn이 개인적으로는 더 정감이 간다. 원래 교회와 커뮤니티 센터가 있던 미국식 박공 건물 두 동인데, 미국에서 싼 맛에 많이 쓰는 외장도 이렇게만 하면 있어보이게 (그러면서도 소탈하게) 할 수 있구나 싶다. River Building은 여기를 봐도 돈돈디테일 저기를 봐도 돈돈디테일 이렇게 보여서 좀 부담스럽;; 교회라는 프로그램이 어떤 겉모습을 가져야하는지도 잘 말해주는 것이랄까. 그레이스 팜즈를 방문할 예정이시라면 이 정갈한 빌딩이 멋진 답사의 애피타이져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세지마표 토끼의자

SANAA의 리노베이션이니 자기 가구도 팔아야지 가구들과 마감들도 일정한 톤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소박하게 보인다고 결코 소박하지 않은 건물;;

‘소박한’ 두동을 감상하고 있을 무렵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정말 이곳은 비가 오는 날 눈이 오는 날 와봐야 하는 곳이다. 만약 방문이 예정이시라면 꼭 날이 구진 날 찾아 오시길 – 사실 베스트는 소나기가 지나가는 날, 즉 내가 갔던 날이 아닌가 싶다.

건물을 짓고 나면 장마를 맞아봐야 제대로 됐는지 안다고 한다. 이것은 물론 공구리를 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한국 건물의 특성상 방수의 성공적인 시공을 눈으로 확인하는 방법이 따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리버 빌딩에서는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비가 와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자연’과 건물의 경계. 그 얇은 선 하나가 비를 통해 그어진다.

지붕 아래에만 있으면 분명히 건물 안에 자연 밖에 있다고 느낄 수 있고, 자연은 한발 앞에 있지만 저 멀리에 있는 듯 하다. 그에 비하면 낙수장에서는 집안에 있으면 그 폭포를 보기도 힘들다. 손을 내민다고 풀을 만질 수도 없고 물에 발을 담그려면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와야 한다. 하지만 왠지 그냥 폭포위 바위에 앉아 있는 듯 하다.

다시말해 그레이스팜의 리버빌딩에게 ‘자연’은 가촉 거리는 가깝지만 (파노라마로) 관조하는 대상이 된다. 아주 얇지만 분명한 경계가 존재한다. 가깝지만 멀다. 폴링워터는 분명하지 않은 두터운 그라데이션의 경계로 자연을 체험하게 해준다.

사실은 이 얇디 얇고 선명한 경계가 SANAA가 자연에 대해 가지는 태도인 듯 하다.

2009년의 서펀타인 파빌리온. 여기에 정확하게 유리 매스만 밑에다 집어 넣은게 리버빌딩. 이 건물의 명확한 경계는 지붕과 바닥을 통해 이미 만들어져 있고, 그 경계는 저 얇디 얇은 컬럼을 따라 그려진다. 거기에 유리 (아주비싼!) 가 있는가 없는가는 그리 큰 상관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어디에나 분명하게 아주 얇은 선이 분명한 경계를 만들고 있다.

아주 작은 점이 만드는 경계도 있다.

가구가 만드는 영역도 있는데, 저 위치에 저 가구는 위치가 변하지 않는다.

비올 때는 구지 이렇게 해두는 것 같다. (아아 이것도 귀여워!)

숟가락을 놓는 곳도 정해져 있다.

‘자연스러움’ 혹은 ‘자연’ 이라는 단어는 그래서 건축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쉽게 내뱉어서는 안되는 것 같다. 특히나 ‘자연스러운 곡선’ 따위의 게으른 표현으로 자신의 디자인이나 다른 사람의 건축을 설명하면 가서 좀 때려줘야 한다.

그 외에 이 건물은 모든 부분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 4시간 넘게 수철이하고 목이 아프도록 수다를 떨다가 왔다.

심지어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재료에게서 나오는 패턴도 다 예뻐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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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 Sol, run. #gracefarm by #san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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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처음 갔던 게 벌써 3년 전. 건물은 똑같이 아름답고 식당의 메뉴가 좀더 많아졌고 식사로 먹을만한 것도 많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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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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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가도 좋아하고 어른들도 좋아하니 건축뿐 아니라 일반 관광을 원하시는 분들도 즐겁게 반나절 즐기기에 좋다. 월요일만 닫고 일주일 내내 열려있고 매일 매일 뭔 프로그램들도 있다. 아이들을 위한 아트 프로그램이나 자연 관찰 프로그램같은 것도 있으니 아이있는 부모님들도 함께 가면 좋을 듯 하다. https://gracefarms.org/

Autograph

전에 다니던 회사 이름은 Cooper Robertson 이다. 쿠퍼에 해당하시는 분은 Alex Cooper, 로버트슨에 해당하시는 분은 Jacquelin T. Robertson 이시다. 이제 두분다 은퇴하신 걸로 안다.

마음씨 좋은 알렉스옹. 컬럼비아 어반디자인 제자의 제자 빌켄워시와 얼잭슨, SIRR 발표회날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알렉스 영감님 어르신은 필립존슨 사무실에서 글래스 하우스같은 프로젝트를 하고 나서 뉴욕시에서 일하게 된다. 뉴욕시에서 일하면서 Stanton Eckstut 를 만나서 Cooper Eckstut Associates를 함께 만들고 컬럼비아대학교의 어반디자인 프로그램 디렉터를 겸하며 스탠과 함께 수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때 현재의 Battery Park City를 디자인했고, 최종적으로 KPF가 마감하게된 Hudson Yards를 시작했었다. 뉴욕타임즈의 기사 ‘BUSINESS PEOPLE; Architectural Split At Cooper Eckstut’ 에 따르면 둘은 도시와 건축에 대한 견해차 (라 쓰고 성격차라 읽는다) 로 각자의 회사를 운영하게 된다. 사실 이 둘을 가른 프로젝트는 트럼프의 프로젝트였던 것 같다. 스탠 어르신은 트럼프가 싫었고, 알렉스 어르신은 뭐 그런 곤조 없으신 분이다. 지금도 스탠 사장님은 내가 바로 트럼프의 프로젝트를 거절한 사람이야라고 항상 자랑하신다.

잭형 간지

Jacque 사장님은 뉴욕시의 도시계획부서와 건축부서의 시초가 되는 어반디자인그룹 이라는 걸 만드셨다고 한다. 후에 버지니아 대학교의 건축과 학장을 하시면서 Robert A. M. Stern과 Leon Krier같은 분과 일하다가 Peter Eisenman과 함께 Eisinman/Robertson을 설립하게 된다. (위키피디아 링크) 아이젠만이랑 일하다가 정신 사나워서 그랬는지 아이젠만과는 헤어지고 알렉스 사장님과 만나서 쿠퍼 로버트슨을 만들게 된다.

알렉스 옹은 주로 큰 프로젝트를, 잭 옹은 주로 클래식하고 비싸고 작은 프로젝트나 뮤지엄같은 것을 많이 하셨다. 두분다 성격 좋기로 유명했다.

알렉스 사장님과 헤어진 후 스탠 사장님은 후에 Ezra Ehrenkrantz 그리고 Denis Kuhn과 함께 와 EEK (위키피디아)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이후 합병의 과정을 거쳐서 Perkins Eastman의 Studio 8이 되었다. 여기에 전에는 쏭이가 다녔었고, 지금은 내가 일하고 있다. 스탠 옹과 에즈라, 데니스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


왜 갑자기 이런 어르신들의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들쳐보게 되었는가 하면.

공짜로 얻어와서 몇년동안 열어보지도 않은 책

쿠퍼로버트슨에 있던 시절 오래 동안 있었던 43가 미드타운 사무실을 떠나서 다운타운 윌리엄스 스트릿으로 이사갈 때 회사 라이브러리에 쌓여있던 오래된 책들을 직원들에게 나눠줬었다. 그 때 아무 생각없이 집어온 아이젠만의 책이 있었다. 그 유명한 왝스너 센터 설계집인데, 집어만 왔지 볼 일은 없었다. 그런데 (건축 변태) 백수철이 집에 놀러와서 이 책 저 책 뒤져보다가 싸인 발견. ‘야 이거 피터 아이젠만 싸인이야?’

아싸 득템

연도를 보니 쿠퍼로버트슨을 만들고 1년 뒤. 사진으로는 티가 잘 안나지만 은색 마카와 금색 마카로 정성스럽게 적었다. 잭 옹께 아이젠만 옹이 “우정과 존경을 담아,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이 이 책에 ‘심볼라이즈’ 되어있다.” 라고 한다. 안 그래도 심볼만 가득하다는 아이젠만 옹이 뭘 또 심어놨어 그래. 아마도 잭의 클래식한 오더들이 있겠지 싶다. 그걸 비틀고 더하고 빼고 하는 게 아이젠만옹이시니까. 그리고 이 둘의 대화는 티비 프로그램에 대담을 통해 이렇게 남아있다.

그럼 이렇게 공짜 득템 자랑을 마치고 저는 이만.

Falling Water

니자랑 솔이랑 한국 가고 나서 3주간의 휴가를 내고 뉴욕에 와있던 백수철을 데려다 먹이고 재웠다. (SNS없는) 백수철은 우리집이 비기 전까지 (퇴근과 주말이 없는) 후배 박영민의 브루클린 집에서 먹고 살고 있었다. 우리 셋은 한국에서 퇴근과 주말이 없는 회사에서 함께 근무했었다.

내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을 볼 일은 평생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미국 건축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 미술 / 건축사를 기준으로 교육을 받았던 나에겐 보면 좋고 아님 말고 정도의 건물이었다.

New York to Fallingwater

뉴욕에서 다섯시간을 운전해서 가야하는 거리에 있고, 주변에 산과 농장 외에는 없으니 다른 이유를 들어서 가보기에도 나에게는 먼거리에 있어서 방문의 논외였지만, 텍사스에서 학교 생활을 하며 운전을 하면 피로가 풀리는 영민이가 있었던 덕에 수철의 방문 계획에 대해 그래 가보자. 하게 됐다. 물론 기차나 비행기를 알아봤지만, 너무 뻘스럽다.

5시간을 운전해서 도착한 공원은 정말 관리가 잘 되어있었다. 주차장에서부터 조경이 철저히 되어있었고, Visitor Center도 멀쩡했다. 나중에 해설사에게 들은 바로는, 프랭크로이드라이트의 아들의 연인이 설계했다고 한다.

미리 예약해둔 이름을 대고 들어가서 주차를 하고 비지터 센터의 레지스트레이션에 왔다고 알려주면 대기그룹의 순번을 알려준다. 시간도 예약해서 와야하지만 방문객이 많아서 비지터 센터에서 조금 기다려야한다.

방문시 내부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있고 몸을 움직이다 가구나 핸드레일같은 나무로 만들어진 전시품을 훼손할 수 있는 일정 사이즈 이상의 가구등도 휴대가 불가능하다. 모든 가구와 디테일 들이 모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직접 디자인으로 당시에 제작한 것을 그대로 뒀기 때문이다.

우선 설명과 함께 30-40분 정도의 내부 투어를 한 후 외부를 돌면서 약간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핸드폰 카메라 정도의 카메라 이외엔 촬영을 할 수 없다. 게스트 하우스까지 투어를 마치고 나면 외부로 나와서 건물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Fallingwater 한국 번역명 낙수장 落水莊은 정확히는 Kauffman House 이다. 건축주인 카우프만은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자면 ‘부자부자부자부자부자’ (건축주에 대한 설명 앞에 다섯번 wealthy를 붙였음) 였다고 한다. 구지 말 안해줘도 이 캔틸리버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건물은 크게 두동으로 이루어져있고, 그 유명한 캔틸레버로 이루어진 건물이 1차로 지어졌던 건물이다. 중학교 미술책에서 봤던, 그 머니샷은 폭포위에 얹혀진 쪽만 보이기 때문에 언덕에 캔틸레버를 박아놓은 듯 하지만, 실은 암반 위에 엄청난 하중을 버티는 코어를 짓고 거기에 캔틸리버를 걸어서 늘어트린 것이었다.

그러니까 왼쪽의 사진이 원래의 차량 진입로. 폭포의 뒤쪽으로 진입하도록 되어있었고 후에 브릿지를 걸고 언덕 위편에 2차로 게스트하우스를 지어서 연결하였다.

계단도 캔틸레버에 매달려 있다. 내외부의 재료는 모두 동일한 주변의 암석을 사용하였고 모든 창들도 코너가 오픈된 상태이고 기둥도 없었다. 컨셉대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위에 주택이 살포시 앉아있도록 설계했다. 내가 느끼기엔 그냥 돌바닥에 나앉아있는 것 같았다. 이건 좋은 점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점이기도 하다.

프랭크로이드라이트의 다른 설계들도 그렇듯이, 구석 구석 하나하나 신경쓰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밤새도록 훈련계획서를 초안에서 파란펜으로 긋고 다시쓰고 호치케스 찍어서 다시 워드쳐서 최종 최종 최종 최종.hwp를 만들던 작전과장 생각이 나서 해설자들이 입이 마르고 닳도록 경외하는 그 디테일과 작가 정신에 대해서는 ‘노고에는 경의를 표하나 감동은 좀’ 이라는 평점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프랭크로이드라이트만의 기하학은 나에겐 와닿지가 않는다.

나만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백수철은 코너 코너를 돌 때마나 캬~ 어우~ 하는 것 같았다.

물론 이 과감한 캔티와 매싱, 그리고 본관과 게스트하우스 관리동을 동선으로 엮고 시선은 완벽히 분리해낸 것, 각 공간마다 기승전결의 시퀀스를 배치해둔 것은 두고 두고 기억해둬야할 주택계획의 정석같다. 또 일본 전통 살림집에서 체험해봤던 좁고 어두운 (거의 깜깜이었다.) 진입이나 스케일을 보는 소소한 재미도 있었다.

계속해서 해설사는 미국의 모더니스트라고 하는데, 나는 약간 전통 건축 체험하고 온 것 같았다. 아마도 프랭크로이드라이트의 ‘이유없는 이유있는’ 집착이 내가 생각하는 모더니스트의 정의와 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모두 프랭크로이드라이트가 앞뒤없는 건축 덕후였다는 것은 만장일치의 의견. 어찌됐건 미국에선 꼭 가봐야하는 건물이니까, 숙제 한 느낌.

그리고 건축물 먹고 왔다는 기념샷도 남겼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주변엔 아무것도 없고 농장 농장. 겨우겨우 점심먹을 데 찾은 곳은 다이너였다. 아 뭐 깨끗하고 친절하고, 미국식 다이너 좋아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자연 좋아하고 건축 좋아하고 운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추천. 가족 여행은 좀;;

(+ 20190711) 다녀오고 며칠 뒤, UNESCO에서 올해의 세계 문화 유산을 발표했는데, 이번에 한국의 서원들과 프랭크로이드의 작품들도 포함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