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갔다 돌아온 지 딱 한달이 되었다. 가족들도 모두 돌아왔고, 프로젝트는 바쁘다. 아니, 중요 프로젝트가 쉬는 중이니 여기저기 다른 프로젝트를 돕다보니 나만 바쁘다. 새로 이사갈 집도 알아보고 있고, 인생의 숙제 검사라는 대출도 알아보고 있다. 이미 한달이 지났지만 으레 지난 여름이 어땠는가하는 인사에 한국을 다녀왔고 무얼 했나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를 물어보는 질문에 아직도 답한다. 잠깐의 인사에는 제주도에 다녀왔고, 온 가족이 만났다는 정도로 끝을 맺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2019년-여름-가족의 태그로 나의 기억을 정리하면 가장 먼저 기억이 나는 일은 ‘택배 사건’이었을 것이다.
2주간의 한국 방문 동안 온 가족이 제주도를 다녀왔고, 이리 저리 돌아다녔다. 그 와중에 사촌 형수님이 아주 오랜만에 보는 조카에게 선물을 꼭 주고 싶다고 부모님 집으로 값이 나가는 아동복을 택배를 통해서 보내왔는데, 원활한 배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쇼핑몰측과 택배사와 선물을 보낸 형수님 그리고 부모님까지 5각 통신에 알고보니 조카 시혁이의 물건인 줄 알고 그 상자를 가져온 동생네까지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기억을 더듬고 누가 무얼 언제 어떻게 했는지 알리바이를 짜맞추어 갔다. 결론은 흔한 배달 해프닝이었고, 물건은 잘 배달되었다. 어디서나 어느 가족들 사이에서나 벌어지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가장 특별하고 값진 시간이었다. 물론 제주도에서 목동에서 솔이와 시혁이가 같이 노는 장면은 큰 설명없이 스틸사진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흐뭇한 순간이겠지만, 이번 해프닝은 서사적으로 가장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현재의 풀세트 가족이 되기전, 그러니까 동생과 내가 부모님집에서 살던 총각들 시절의 우리집이란 평화로운 조용한 가족이었다. 시끄러울 일을 만들지 않고 서로에게 미끄러지듯 조용히 살았다. 간섭하지 않고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먹고 싶은 것은 남에게 양보하고 의견을 내지 않았다. 그래서 길게 토론할 거리는 보통 학업 직업 재테크 등의 기능적인 활동이었고 다함께 머리를 모아서 고민할 일이란 별로 없었다. 부모님 집은 크고 각자의 방에 들어가서 조용히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이번 택배 사건은 신선한 기억이었다. 동생집의 작은 거실에 둘러앉아서 각자의 기억을 꺼내서 시간조각을 맞추는 일은 나에겐 가족이 함께 방탈출 게임이라도 한 듯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다.

여름이 끝났다. 또 가족들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