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회 다음날 6월 20일 졸업식.





어떤 ‘식’에는 감정이 있다. 일상의 맺음이 되는 날이니 어떤 형태로든 마음이 움직이기 마련이다. 내가 겪었던 교육과정에선 그런 감정은 희미하게 느끼다 말고 끝나곤 했다. 축하보다는 성적표를 받는 날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괜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쿨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고, 노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랬던 졸업식도 있었던 것 같다. 그나마의 형식도 남지 않은 졸업식도 있었다. 어쨌든 내가 겪었던 졸업식들은 증명에 가까운 사진을 찍고 필요한 서류를 챙기고 놓아두었던 짐을 챙기는 형식적인 날일 뿐이었다.

유치원 건물에 졸업식 장식 같은 것은 언제나 임시의 미니어쳐같은 느낌이다. 아이들 생일에 나눠주는 일 이달러 안하는 구디백의 장난감같은 인테리어가 된다. 거기에서 아이들에게는 아직 이름을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일어나 유치원 졸업식장의 공기가 된다.
미국의 유치원이라 그런 것인지, 원래 3세 4세 아이들은 아직 순진해서인지, 혹은 이 교회 부설 유치원이 특히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전날의 발표회에서도 내내 울던 아이가 있었고, 눈물을 감추던 엄마들과 선생님들이 있었다.

고집이 세서 선생님들을 고생시켰던 걸로 알려졌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발표회를 마치고 굉장히 크게 울었고, 많은 아이들이 또 따라 울었다. 졸업식에선 특히나 선생님들이 이 아이에게 눈물의 포옹을 크게 해줬다.


솔이도 슬픈 것 같기도 하고 딱히 안 슬픈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뭔지 모르게 기분이 나쁜 것 같았다. 정확히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면 저런 표정이 된다. 나는 어렸을 때 그런 기분을 보라색 기분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사진은 찍어야한다.



아이들은 모두 반짝 반짝했다.


아이들을 특히 좋아하는 니자는 아이들보다 더 많이 울면서 아이들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엄마는 눈이 퉁퉁 부었다.
솔이와 엄마에게 감사. 멋진 졸업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