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다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하니 방이 넓어졌다. 더 휑하기만 해.

마야 2009 인스톨러를 날려버린 바람에 2010을 받아서 설치했더니 뭔가 OpenGL과 문제가 있어 내친 김에 2011로 설치. 이제서야 좀 변한 티가 나는가 싶지만 아이콘 바뀐 거 말고는 영. 스노우레오파드 10.6.3과의 OpenGL 문제는 여전하다. 당연하지만 이전버전은 지워버렸다. 뭐 나아지는 게 없어.

‘운명이다’를 읽고 나니 조금 더 서글퍼 져서 기분전환 겸 인터넷을 봤더니 경기줄께 서울다오가 되고 있었고, 그렇다고 대역전극이라든가 천안함 역풍으로 한나라당망할 기세 뭐 이런 기사는 눈씻고 봐도 없었다. 뭐 바뀌는 게 없어.

빨래를 하고 마누라가 사준 예쁜 옷들을 보니 더 짠하다. 더 좋아지라고 그렇게 발버둥을치는데 왜 더 좋아지지를 않습니까.

volumes

가장 좋은 건 맥북의 하드가 엄청 크고 절대로 뻑날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겠지만 세상이 그리 만만치가 않은 고로, 각종 외장을 주렁 주렁. 게다가 윈도도 사용해줘야하니 참 골치가. 가장 좋은 해법은 잡스 흉아가 제시하신대로, 에어포트익스트림에 하드 꼽아서 가정 서버를 쓰는 것이겠지만… 세상이 그리 만만치가 않아요.

1. Firewire 800

일단 My Book은 웨스턴 디지털의 1TB 외장. Firewire 800으로 15인치에 연결되어있고, 다른 거 없고 aperture library 만 있다. 몇몇 중복된 백업과 함께 다메닌겐 백업이 들어있다. 이전에는 Time Machine 백업도 담당했었다. 800기가가 남아있어서 행복하다만, 언제나 포트에 뭐가 꼽혀있다는 찝찝함이 있다.

2. iDisk

(사실상의) 작업 폴더와 최근 1년간의 아카이브는 me.com에서 제공하는 idisk에 담겨있다. 15인치와 17인치를 번갈아 쓰면서 가장 고마웠던 것이 idisk. 비싼 돈 내고 한국에선 느려서 못썼는데, 여기선 가장 효자. 친구들하고 작업할 때도 매우 유용했다. 몇년 돈낸거 이제사 뽕을 뽑는구나 했을 정도. 그런데 정말 한국에서 느리고 미국에서 빨랐던 것인지, 아니면 예전에만 느렸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30기가 용량 중에 3기가 남아있다. 최근에 공동작업을 위해 Dropbox도 깔았는데, 2기가던가. idisk를 대체할만한 웹하드 서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3. Airport Extreme Disk

그러니까 여기가 가장 열받는 부분. 엊그제 쌩쑈했다. 학기도 끝나고 백업도 할 겸 기존에 에어포트에 물려있던 500기가 (케이스는 우기님이 주신 카트리지 케이스!)를 교체할 요량으로 1.5TB를 (망할) 라디오셱에서 구입했는데, 에어포트에서 인식이 안됐다. Apple – Support – Discussions – iomega Prestige 1.5 TB USP Hard Drive … 왜 안되지 왜 안되지 안되요 안돼 라는 쓰레기만 이어지고 결론은 없다. 망할 놈의 iomega는 망할 구라 집디스크 팔 때부터 텄었건만, 너무 신용안가는 라틴 흉아들이 가득한 라디오섁에서 파는게 아이오메가뿐. 일본흉아가 오덕스럽게 팔고 있어도 믿을까 말까한데.

게다가 어쩔 수 없지 일단 백업을 하자.. 하며 usb에 물려 카피한게 또 화근. airport disk의 500GB 에서 iomega 1.5TB로 카피시켜두고 7시간뒤에 음 이제 됐겠지 하고 airport disk의 500GB를 폴더들을 지우고나서 iomega 1.5TB를 다시 보니 뭐야 이거 폴더만 카피되고 내용물 어디갔어. 비슷한 카피하고 지우고 보니 폴더만 남아있더라 경험 땜에 눈물 흘린 적이 있어 중요폴더는 꼭 카피뒤에 확인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번에도 설마 했더니 설마가 사람을 잡았네. 다행히 작업물은 안날라갔지만, 야메 프로그램들과 그 이름도 무지막지 어두운 폴더명 ‘WIK’

이 폴더 살릴려고 data rescue까지 돌렸는데, 프로그램 인스톨러는 못살렸고, 다행히 WIK 폴더 안에 있던 내용물은 끄집어내는데 성공. 다만 복구 프로그램이 화일은 살려주지만 디렉토리구조대로 살려주는 것이 아닌고로, 흑역사 WIK 폴더는 엉망진창인대로 화일만 끄집어낸 상태. 예를 들면

이런 화일들이 문맥없이 복구된 상태. 이런 거 땜에 12시간 걸려 하드복구하니 참 상쾌도 하다.

하여튼 iomega 케이스 안에 있던 seagate 1.5TB 하드를 뽑아서 (샹 뽑다가 나사 야마나서 달려나가 니퍼도 사와야만 했다!)  500GB와 교체. 현재는 윈도용 파티션 FAT (300GB) 과 맥용 파티션 onepointtwo (1.2TB)로 사용중. onepointtwo 볼륨은 15인치와 17인치의 타임머쉰을 걸어뒀더니 어느새 절반가량 찼다.

나저나 다 정리하고 보니 왠지 15인치 17인치 두대도 한대로 정리하고 싶어지는게 이게…

awards

One phase is over, still too many things to do.

I finally got 2 masters.Now I’m a Master of Architecture and Master of Science in Architecture and Urban Design. It’s not to be proud of so much, rather I feel shame for this. – I want to build. Luckily I was honored with 2 award at the commencement. One was Lucille Smyser Lowenfish Memorial Prizes, which was given to our last studio project. Of course, Brad, Josh and Chirag were awarded together. The other one was personal award which was the 2nd best award, (called Honor Award for Excellence in Design) is for overall evaluation on student’s studio work. I honestly never expected the second one. (However I expected his award, and congratulate Kingsley!)

I was so thrilled not with those awards, rather with the fact that all the students who got the prize were former team member of me. That means I had great chemistry through the year. As always, I don’t want to be best man, I want to be one of the best team. If whoever I’m with is the best people, I can be the best and happiest man.

Of course, I was little bit nervous at the ceremony, Because @Niizaka was there. As a studying husband (consuming husband), I wanted to show at least small prize like Kinne trip scholarship. I was so relieved after my name was called. Actually her lovely pressure was the biggest whip to overcome my natural born laziness. She gave me 5D mark-II, which was my dream camera, as a family award, but her short visit was the biggest award to me.

졸업

한판 또 쳐냈다. 그래도 뭐 할 일이 뭐이리 많냐.

결국 부끄럽게도 두개의 석사 학위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건축학 석사이시자 건축/어반디자인 석사셔. 쪽팔립니다 네. 뭐라도 좀 짓고 싶어요. 운좋게도 졸업식에서 상을 두개 받았다. 하나는 루씰 스마이저 로웬피쉬 메모리얼 프라이즈 ((이름은 역시 길어야 폼이 난다능 Lucille Smyser Lowenfish Memorial Prizes)) 라고 마지막 스튜디오 작품에 주어진다. 물론 브래드, 조쉬, 츄락과 함께 받았다. 다른 하나는 개인 부문, 차석상 ((Honor Award for Excellence in Design))으로 학교 다니는 동안 가장 디자인 잘 하는 애라는 상 ((이라 쓰고 선생님들한테 얼마나 알량댔냐를 측정하는 상이라고 읽습니다))이다. 솔까말 두번째꺼는 이름 불릴 때 좀 놀래서 재수없는 연말 연애인 시상식같은 표정이 나왔더랬다.

상받은 것 보다 실은 같이 상을 받은 친구들이 모두 이전 혹은 이번에 내 팀이었다는 거. 일년 잘 보냈다는 소리. 항상 그렇지만 내가 일등하는 것보다 일등하는데 껴있는 것이 인생의 목표. 가는 곳마다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참 다행. 인복이라면 타고났다.

물론 가장 큰 인복은 마누라지. 사실 졸업식에서 니자카 볼 면목이 없을까봐 무슨 여행 장학금이라도 하나 건져서 체면을 세울까 지원해뒀는데 그거 안되서 난감했었다. 알고보면 니자의 압박 덕에 유학도 결심했고, 혼자 생활하면서 게으른 천성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마누라의 가장에 대한 기대 덕이었다. 게다가 졸업했다고 꿈의 카메라 오두막까지 안겨주니 이만한 마누라가 어디있나. 그리고 가장 큰 선물은 역시 마누라가 와서 밥해주고 같이 놀아준 것. 마누라가 해주는 밥이 역시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