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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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ads#18:12

관광지에 쥬다스프리스트 티셔츠 입고 갔더니

아저씨들이 말걸어 자꾸. 한명은 심지어 등쪽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더라.

아저씨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팁이에요.
제길. 죽어버려 헤비메탈따위


Threads#23:28

“처음에는 나라를 구한다고 떠들다가 판이 식으면 ‘우리는 순수했다, 일부가 문제였다, 언론이 왜곡했다, 프락치가 망쳤다’고 발뺌한다. 선동할 때는 한몸이고 책임질 때는 각자도생이다.”

💬 @ciaccona1685

정치, 사회 �…
잠실 개그화 운동은 극우들에게 또 하나의 조롱거리를 남겼다.
잠실 개그화 운동은 극우들에게 또 하나의 조롱거리를 남겼다.
성조기 투구게, 전한길 상자 소동, 프락치 놀이, 후원 장사, 외제차 계급장, 무료 이발과 공연 호객까지. 이 정도면 정치 집회라기보다 극우판 종합 예능에 가까웠다. 본인들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모든 이가 반드시 함께해야할 민주화 운동이라 믿고 싶었겠지만 밖에서 본 풍경은 그냥 잠실판 개그콘서트였다.
그럼에도 이 장면을 그냥 비웃고 넘기기만 해서는 안 된다. 왜 이런 집회가 잠깐이나마 사람을 모았는지, 왜 곧바로 망가졌는지, 왜 같은 방식의 선동과 실패와 발뺌이 반복되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조롱거리는 조롱거리대로 남기되 여기서 얻을 교훈도 분명하다.
잠실 개그화 운동은 사실상 이제 거의 막을 내렸다.
우선 좌우를 떠나 나라가 망하는데 뭐 하냐며 선민의식을 뽐내고 이 집회를 비판하던 사람들에게 쌍욕을 퍼붓던 인간들 중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는 퍽 궁금하다.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예상했듯 처음부터 오래 갈 판이 아니었다. 나는 첫 비판글을 쓸 때 길어야 3~4주라고 봤고 중간에는 그 전망을 2~3주로 낮췄다. 결과는 대체로 예상대로 흘러갔다.
오늘은 이 집회가 왜 개같이 망했는지 핵심을 짚어보려 한다. 단순히 사람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넘어 이 집회는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처음부터 안고 있었다. 명분은 흐렸고 방식은 조악했고 주도권은 극우 음모론 장사꾼들에게 넘어갔고 남은 사람들은 현실을 인정하기보다 또 다른 음모와 자기합리화로 도망쳤다.
더 우스운 것은 그다음이다. 잠실판에서도 익숙한 공식이 반복됐다. 처음에는 나라를 구한다고 떠들다가 판이 식으면 ‘우리는 순수했다, 일부가 문제였다, 언론이 왜곡했다, 프락치가 망쳤다’고 발뺌한다. 선동할 때는 한몸이고 책임질 때는 각자도생이다.
첫 번째 문제부터 살펴보자. 그건 바로 명분의 부실함이었다.
선관위 비판이라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는 있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분명히 심각한 관리 실패였고 책임자 문책과 재발 방지 대책은 필요했다. 여기까지는 문제 제기 자체가 정당했다.
하지만 그다음이 엉망이었다. 요구는 정리되지 않았고 책임 주체도 불분명했으며 출구전략도 없었다. 정부와 정치권이 국정조사와 특검까지 거론하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아무것도 믿지 못했다. 독립기관인 선관위를 정부와 여당의 하부 조직처럼 몰아가며 음모론을 키웠고 국민의힘 일부 강경파는 그 흐름에 올라타 장외 선동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특히 장동혁, 김민수 같은 인간들이 보여준 모습은 한심 그 잡채다. 선관위 제도 개선을 말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이미 망해가는 잠실 장사판에 편승해 강성층 비위나 맞춘 것에 가까웠다. 장외의 분노를 제도권 정치가 정리한 것이 아니라 제도권 정치인이 장외의 음모론에 기대어 자기 정치 장사에 올라탄 꼴이다.
장동혁은 앞으로도 잠실에 얼마나 더 기어나올지 반드시 지켜봐야 한다. 그렇게까지 이 판이 소중하다면 끝까지 책임지고 함께 폐업 정리까지 해보길 간절히 바란다. 다만 판이 식은 뒤에 ‘나는 선관위 개혁을 말했을 뿐’이라며 슬쩍 발을 빼는 장면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두 번째 문제는 극우 음모론 세력의 장악이었다.
처음에는 ‘정치색 없는 시민 분노’처럼 포장했지만 역시나 오래가지 못했다. 부정선거, 윤어게인, 스탑 더 스틸, 성조기, 미국 개입 기대감이 차례로 올라탔다. 선관위의 행정 실패를 따지자는 이야기가 어느새 선거 전체를 뒤흔드는 음모론 장터로 바뀐 것이다.
특히 한때 전한길 쪽 상자 이야기가 등장하자마자 부정선거가 드디어 잡힌 것처럼 설레발치던 인간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참 궁금하다. 그 상자 이야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쏙 들어갔고 또 다른 떡밥과 또 다른 분노만 남았다. 뭔가 ‘큰 거’가 온다며 흥분하고 며칠 지나면 흐지부지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장면의 무한반복이다.
이 패턴은 사실 전혀 낯설지 않다. 2022년 대선 때 원희룡이 들고 나왔던 이른바 ‘대장동 문건 보따리’ 해프닝이 딱 그랬다. 당시 원희룡은 제2경인고속도로 분당 출구 인근 배수구에서 정민용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팀장 소유로 추정되는 문건 보따리를 입수했다며 긴급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검은색 천 가방, 배수구, 물에 젖은 문건, 명함과 원천징수영수증, 자필 메모까지 서사는 아주 그럴듯했다. 너무 그럴듯해서 오히려 자작극 아니냐는 조롱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검찰은 원희룡이 제시한 핵심 문건들이 이미 압수돼 재판 증거로 제출된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도 이미 공개됐거나 사실관계가 검증된 내용을 새 결정적 증거처럼 포장한다고 반박했다. 결국 고속도로 배수구에서 나온 대장동 스모킹건처럼 떠들던 장면은 지나고 보니 또 하나의 설레발과 호들갑, 극우의 사이언스로 남았다.
이번 전한길 쪽 상자 소동도 구조가 비슷하다. 뭔가 대단한 물증이 나온 것처럼 분위기를 띄우고 지지자들은 드디어 잡았다며 설레발치고 며칠 지나면 이야기는 흐려지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결정적 증거라던 것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분노만 다음 떡밥으로 갈아탄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보다 먼저 믿고 반박이 나오면 인정하기보다 다른 음모로 넘어가는 방식. 그런 방식으로는 시민운동을 할 수 없다. 그냥 다음 떡밥을 기다리는 음모론 소비자만 남을 뿐이다.
여기서 이미 대중성은 끝났다. 정상적인 시민은 선관위의 책임을 묻고 제도를 고치자는 데까지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선거 전체가 조작됐다, 미국이 움직일 것이다, 윤석열이 옳았고 다시 불러야 한다’는 식의 망상까지 같이 들고 가자고 하면 따라갈 이유가 전혀 없다. 잠실판은 스스로 일반 시민이 붙을 수 없는 판으로 망가졌다.
거기에 성조기 투구게 코스프레까지 등장했으니 절망이다. 한국 선관위 문제를 따진다면서 왜 성조기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고 성조기 투구에 갑옷을 입고 왜 미국 개입 기대감이 애국처럼 포장되나. 태극기 옆에 성조기를 꽂고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는 장면은 비장한 정치가 아니라 현실 풍자에 가깝다. 본인들은 진지했겠지만 밖에서 보면 그냥 잠실판 SNL이었다.
세 번째 문제는 집회판의 저열한 장사 냄새였다.
밥값, 차비, 물품 지원을 호소하면서 동시에 외제차와 슈퍼카를 내세우는 장면은 너무 기괴했다. 애국을 말하면서 후원에 기대고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돈과 소비 수준으로 우월감을 과시했다. 이쯤 되면 시민운동이 아니라 극우판 과시 소비와 구걸 동원의 잡탕 혼합물이다.
한쪽에서는 우리는 돈 많은 사람도 온다고 으스대고 다른 한쪽에서는 밥값과 차비, 카풀을 구한다. 외제차 키로 계급장을 달고 무료 음식으로 현장을 버틴다. 이보다 더 초라한 자기모순은 어디가서 구경하기도 힘들다.
그 주변에서 역한 장사 냄새를 풍기던 인간들도 가관이었다. 민주화 운동을 기록한다며 작가 코스프레하는 것들, 올공 집회 인증을 달고 장사하려던 식당 자영업자들, 애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입에 올리며 강의, 책, 부동산, 자기계발 콘텐츠를 팔던 계정들까지 줄줄이 바퀴벌레처럼 기어나왔다. 나라를 구한다더니 결국 보이는 것은 자기 자랑, 팔로워 장사, 인증 장사, 후원 장사, 상품 장사였다.
내가 스레드에서 직접 본 흐름도 비슷했다. 초반에는 올공 인증을 달고 비장하게 떠들던 일부 계정들이 집회 망한 냄새를 맡자 ‘이제 여기까지만 하고 생업으로 돌아간다’는 식으로 슬그머니 빠졌다. (그 장면을 보니 윤석열이 개같이 망하고 탄핵, 구속 국면으로 몰리자 손절하듯 일상으로 돌아간다던 극우 유튜버들이 떠올랐다. 조용히 찌그러져 있다가 잠실집회에서 다시 장사 냄새가 나자 하나둘 기어나오던 그 익숙한 풍경 말이다.) 일부는 게시물을 지우고 일부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특히 선관위 특검과 투표용지 사태 관련 입법 논의가 본격화된 이후 태도가 바뀐 계정들을 보면 더 우습다. 적어도 자기들이 떠들던 말에 끝까지 책임질 생각은 없었다는 방증처럼 보였다.
진짜 시민운동이면 기록이 남아도 부끄러울 이유가 없다. 그런데 왜 지우나. 왜 조용해지나. 왜 갑자기 생업을 찾나. 답은 독자가 판단하면 된다. 다만 내 눈에는 나라를 구하러 간 사람들보다 장사판에 올라탔다가 장사가 안 될 것 같으니 빠지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네 번째 문제는 종교색과 간증 분위기의 과잉이었다.
정치적 요구를 설득해야 할 자리에 예배, 찬송, 간증식 분위기가 끼어들었다. 종교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공적 의제의 자리를 신앙 고백과 집단 감정으로 덮어버렸다는 데 있다. 선관위 책임을 묻겠다던 집회가 어느새 애국 예배, 간증대회, 집단 최면식 분위기로 흘러갔다.
그러니 중도층이나 일반 시민은 붙을 수가 없다. 정치를 하겠다면서 종교적 흥분으로 빈틈을 메우면 그것은 설득이 아니라 자기들끼리의 열광이다.
다섯 번째 문제는 프락치 색출 놀이였다.
외부로 설득력을 넓히기는커녕 내부에서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누구는 대진연 프락치, 누구는 엔추 위장우파, 누구는 물 흐리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낙인을 찍었다. 성조기를 비판해도 의심받고 부정선거론과 거리를 둬도 의심받고 과격한 구호를 말려도 의심받는 판이 무슨 시민운동인가.
그건 운동이 아니라 집단 불신의 소용돌이다. 자기편도 못 믿는 집회가 국민을 설득하겠다는 것부터가 코미디다. 잠실판은 시간이 갈수록 넓어진 것이 아니라 좁아졌다. 상식적인 사람은 다 빠져나가고 더 강한 음모론과 더 깊은 의심만 남았다.
여섯 번째 문제는 극우 코인팔이들의 충돌이다.
초반에는 유튜버와 장외투쟁 인사들이 집회 확산에 도움이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판이 식자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시작했다. 누가 진짜 애국자인지, 누가 장사를 했는지, 누가 집회를 망쳤는지를 두고 저격전이 벌어졌다.
이것은 반성이 아니다. 매출 떨어진 장터에서 상인들끼리 자리싸움하는 꼴이다. 선거제도 개선은 뒷전이고 남은 것은 ‘누가 더 순도 높은 우파인가, 누가 돈을 벌었나, 누가 판을 망쳤나’를 따지는 내부 싸움뿐이다.
전한길과 황교안류 그리고 그 주변에 얹힌 모스탄 카드까지 딱 그 흐름 안에 있다. 초반에는 마치 구원투수라도 되는 것처럼 등장했고 부정선거 장사를 키우는 확성기 노릇을 했다. 그때는 현장에서도 온라인에서도 영웅처럼 소비됐다. 그런데 집회가 점점 막장으로 가고 냄새가 심해지고 대중성은 빠지고 내부 싸움만 남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제는 같은 편 안에서도 부담스럽고 촌스러운 악성 재고처럼 취급된다.
이 장면은 너무 웃기다. 처음에는 ‘애국 선봉장’처럼 떠받들더니 장사가 안 되기 시작하자 무시하고 조롱하고 선을 긋는다. 필요할 때는 확성기로 쓰고 판이 망하면 책임을 떠넘길 대상으로 삼는다. 극우 장사판의 의리란 딱 그 정도뿐이다.
부정선거를 밝히겠다더니 결국 내부 코인 경쟁부터 하고 있다. 이게 시민운동인가. 그냥 음모론 프랜차이즈 지점장들끼리 매출 떨어진 책임을 떠넘기는 풍경이다.
일곱 번째 문제는 공공시설 민폐였다.
핸드볼경기장 일대가 장기 봉쇄되면서 공연, 행사, 체육단체 업무에도 차질이 생겼다. 시민의 권리를 말하면서 다른 시민의 일정과 공간 이용을 막아버렸다.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공공성을 해치는 모순을 스스로 만든 셈이다.
집회의 자유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 자유가 타인의 공간, 일정, 생업, 공공질서를 끝없이 침범하는 방식으로 가면 정당성을 잃는다. 시민운동이라면 시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지 시민에게 피해를 떠넘기며 ‘나라 구하는 중이니 참아라’는 식으로 굴면 안 된다.
여덟 번째 문제는 현장의 위험성이다.
폭행, 모욕, 업무방해, 공무집행방해 같은 신고와 고발이 이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정상적인 집회의 범주를 벗어났다. 물론 모든 참가자가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위가 반복되고도 제대로 제어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일부 일탈로만 덮을 수 없다.
일부가 기자를 위협하고 일부가 시민을 몰아세우고 일부가 프락치 색출을 하고 일부가 경찰과 충돌하고 일부가 공공시설 업무를 방해했다면 그 ‘일부’는 도대체 얼마나 많아야 집회의 문제로 인정할 것인가.
‘직접 와봐라, 현장은 안전하다, 일부일 뿐이다’ 같은 말은 반박이 아니다.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도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본인이 폭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폭행 의혹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기자를 위협하지 않았다고 해서 기자 위협 문제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집회가 그런 행위를 제지하지 못했고 문제를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비판자에게 낙인을 찍었다면 그것은 집회 전체의 수준이다.
내 첫 비판글에 달려들던 극우 댓글도 딱 그랬다. ‘와보지도 않고 왜 낙인찍냐,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안 했는데 왜 나한테 그러냐’는 식으로 도망갔다. 그러다 뒤늦게 상황이 불리해지니 ‘좀 잘못된 부분은 있다’는 식으로 말을 바꿨다. 그래서 먼저 그런 부분을 인정하고 비판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지니 다시 ‘네가 무슨 자격으로 와보지도 않고 비판하냐’로 도돌이표다.
이건 책임 회피의 전형이다. 문제를 지적하면 없다고 하고 드러나면 일부라고 하고 일부가 반복되면 내가 한 게 아니다라고 하고 그래도 비판하면 현장에 와봤냐고 한다. 논리도 없고 책임도 없다. 남는 것은 현장 부심과 피해자 코스프레뿐이다.
정상적인 시민운동은 폭주를 제지한다. 망가진 음모론 집회는 폭주를 열정으로 포장한다.
아홉 번째 문제는 끝물 이벤트화다.
명분으로 사람을 모으지 못하니 무료 음식, 무료 이발, 공연, 춤, 오케스트라, 예배까지 끌어오는 분위기가 됐다. 정치적 요구가 살아 있다면 말과 논리로 버티면 된다. 그런데 볼거리와 무료 서비스로 사람을 붙잡아야 한다면 이미 운동성은 빠진 것이다.
남은 것은 호객뿐이다. 집회가 아니라 폐업 직전 상가의 마지막 이벤트, 눈물의 똥꼬쇼에 가깝다. 손님이 줄어드니 음식도 깔고 공연도 부르고 이발도 해주고 ‘구경 오세요’를 외친다. 정작 팔아야 할 명분은 다 바닥났는데 호객과 부대행사만 점점 요란해진다.
결국 잠실 개그화 운동은 스스로 무너졌다.
선관위 책임론은 필요했다. 그러나 그 정당한 문제의식이 부정선거 음모론, 윤어게인, 성조기 퍼포먼스, 미국 개입 망상, 프락치 색출, 후원 장사, 극우 유튜버 경쟁으로 흘러가면서 모든 설득력을 잃었다.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사람들이 법과 절차를 가볍게 여기고 공공시설을 점거하고 내부 의심 놀이에 빠지고 돈과 계급 과시까지 섞어버렸다면 그것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다.
잠실에 남은 것은 시민적 문제 제기가 아니라 망가진 장외 장사판의 잔해다.
그리고 그 잔해 속에는 집회에 취했거나 선동에 이용당했거나 스스로 선을 넘은 뒤 법적 책임을 마주하게 될 사람들도 있다. 참 신기하다. 서부지법 폭동 이후에도 배운 게 전혀 없나. 선동가들은 늘 앞에서 불을 붙이고 정작 법적 책임은 현장에서 흥분한 사람들이 진다. ‘애국’이라는 말에 취해 선을 넘고 나중에는 ‘나는 순수했다, 분위기에 휩쓸렸다, 무료변론이 있다더라’는 식으로 기대는 장면까지 너무 익숙하다.
특히 이른바 올다르크류는 더 볼 만하다. 한쪽에서는 영웅처럼 빨아주고 다른 한쪽에서는 프락치로 몰고 그러다 수사와 처벌 가능성이 보이면 또 무료변론 이야기에 기대려 한다. 그런데 서부지법 폭동 때 황교안 무료변론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정도는 상기하는 게 좋겠다. 무료변론은 요란했지만 정작 법정 출석은 보도 기준 한 차례였고 불출석이 이어지자 재판부가 사임계 제출을 요청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그런 전례를 보고도 또 같은 환상을 품는다면 그건 순진한 게 아니라 기억력이 짧고 멍청한 것이다.
황교안이 ‘애국동지’라며 무료변론을 말해주면 마음이 든든한가. 건투를 빈다. 다만 법정에서 책임지는 사람은 유튜버도 아니고 정치 장사꾼도 아니고 결국 본인이다. 선동은 남이 하고 전과는 내가 받는 구조. 극우 장사판에서 가장 꾸준히 팔리는 상품이 바로 그 어리석음이다.
처음의 분노는 선관위로 향했지만 끝에는 성조기와 음모론과 유튜버 코인과 내부 분열만 남았다. 간판은 아직 내려가지 않았을지 몰라도 이미 정상적인 시민들은 다 빠져나갔다. 남은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의 순도를 따지고 마지막 이벤트로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선관위의 잘못은 따져야 한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책임자 문책과 재발 방지 대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잠실 개그화 운동은 애초에 그 일을 제대로 해낼 그릇이 아니었다.
이 개그화 운동이 남긴 교훈은 단순하다. 정당한 문제의식도 음모론 장사꾼 손에 넘어가면 순식간에 쓰레기가 된다. 책임을 묻는 시민적 분노도 윤어게인, 성조기, 미국 개입 망상, 프락치 색출, 후원 장사, 유튜버 코인과 섞이면 더 이상 공론이 아니다. 그냥 선동 상품이다.
또 하나의 교훈도 있다. 틀리면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떡밥으로 이동하고 부끄러우면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게시물을 지우고 선동이 실패하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나는 순수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이번에도 반복됐다. 상자 하나에 설레고 배수구 문건에 설레고 성조기 투구에 감동하고 미국이 움직일 거라며 또 설렌다. 그러고는 매번 비슷한 추한 결말을 맞는다.
그리고 이제 또 뻔한 장면이 나올 것이다. 열기가 식으면 누군가는 ‘나는 그런 극우와 달랐으며 이용당한게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우리는 순수한 시민이었다’고 변명할 것이며 누군가는 ‘언론과 프락치가 망쳤다’고 떠넘길 것이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같은 판에 있었고 같은 구호를 방치했고 같은 장사판의 손님으로 박수를 쳤다.
이 집회는 민주주의 수호가 아니다.
망한 장사판의 마지막 재고 처리다.
그리고 극우들에게 남은 것은 또 하나의 교훈이 아니라 또 하나의 흑역사다. 문제는 그들이 이번에도 배우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아마 다음번에도 이상한 상자 하나, 어디서 주웠다는 문건 하나, 미국이 움직인다는 망상 하나만 던져주면 또 눈을 반짝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남은 일은 어렵지 않다.
선관위의 잘못은 끝까지 따지되 잠실 개그화 운동 같은 극우 음모론 장사판은 끝까지 비웃으면 된다.
민주주의는 지켜야 한다. 그리고 개그는 박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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