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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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인데 일도 바쁘고 돈도 없고 어디 갈 데도 없고 뭐하지했는데,

3남매를 키운 원래님이 ‘이제 9살이 되니까 요리를 시켜봐라’ 하셨다. (그 중 첫째는 안타깝게 의대를 갔지만 요리의 천재이다.) 이것은 ‘평생을 지니고 갈 스킬’이라며

  1. 부엌이 지저분해지는 것을 감수하고 치우는 것까지 하도록 시키고
  2. 틀린 것을 자꾸 지적하지 않아야 요리에 재미를 들인다고

조언해주셨다. 그리고 한참이나 뒤에 해볼까 했었는데 다음날, 한번 해볼까? 하고 계란 후라이를 시켜봤다. 추천해주셨던 종목도 그렇고, 예전에 백종원이 요알못 연예인들 데려다 하는 프로에서도 제일 먼저 계란 후라이를 시키는 걸 봤었다.

차분히 설명해주고 (우와! 요리한다! 앗싸! 하고 하이퍼된 아이를 침착하게 만드는 게 중요) 안전 수칙을 계속 알려주면서 하니까 의외로 내 손 가지 않고 스크램블드 에그를 만들어냈다. 신이 나서 삶은 계란도 해보고 다음날도 두번이나 더 해봤다. 그리고 오늘은 라면까지 끓여봤다.

내가 처음 계란 후라이나 라면을 만들어봤던 때가 생각해보니 대략 이 나이였던 것 같다. 그 땐 엄마 몰래 했었던 것 같은데, 해보니 별거 아니네. 너무 아이를 어리게만 봤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신이 나서 지가 설겆이한다고 시켜달라고 하고 요리해준단다. 심지어 어제까지의 꿈이었던 만화가는 까먹고 레스토랑을 열겠다고 한다. 가게 이름은 Eggcellent. 자기가 최고의 계란 요리사라고.

이제 집안일 좀더 시켜야지. 후훗.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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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3 responses to “요리”

  1. Ritz Avatar

    고딩이는 5학년쯤엔가 처음으로 불 쓰는 걸 가르쳤던 것 같네요. 그때도 메뉴는 계란 후라이였어요. ^^; 그 뒤로 계란 후라이는 본인이 하겠다더니 좀 지나니 슬금슬금 저한테 도로 미루더라고요. 요리에는 별로 흥미가 없나봐요.
    지금은 라면은 먹고 싶을 때 알아서 끓여 먹어요.

    요즘은 어쩌나보니 애들이 정말로 배워야 할 이런 것들은 예전보다 늦게 가르치게 되더라고요.
    저는 고딩이 나이 때 불 쓰는 건 대충 다 했던 것 같은데 정작 저는 딸내미 과일 깎는 것도 얼마전에야 가르치면서 ‘아 내가 정말 알아야 할 걸 제때 가르치고 있을까’ 잠시 반성했어요. 다른 집도 다를 바가 없는지 고딩이 말이 가정 시간에 같은 조 여자애가 날달걀을 냅다 바닥에 내리쳐서 깨려고 하길래 말렸더니 ‘삶은 달걀 아니야?’ 했다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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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acopast Avatar

      저도 딱히 배워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한국에선 대학도 집에서 다녔으니. 외국 나와서야 때가 되면 밥을 해결해야하고 설겆이는 자동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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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WineGuitar Avatar

    젯팩으로 들어오면 코멘트칸이 비활성화 되어서, 아이들 시진은 댓글을 막아두셨구나ㅎㅎㅎ 하고 생각했는데 홈페이지 링크로 들어오니 보이는군요?!

    저는 전기밥솥에 밥 하는 걸 처음 알려줬어요. 아이가 흰쌀밥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내 특별히 체험비는 받지 않고 가르쳐줄게!” 했더니 고맙다고 인사를 꾸벅 ㅋㅋㅋㅋㅋㅋ
    저는 릿츠님보다 더 뭘 안가르치는데, 살면서 필요할 때 or 하고 싶어할 때 알려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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