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절

오늘도 트위터에서 얻어 읽은 글 하나. 오랫동안 갖고 있던 의문같은 것을 상황을 설명해주는 글. 물론 해법(?)같은 것은 없었다.

오직 ‘극호’와 ‘극불호’라는 양극의 강력한 표현만 통하는 오늘날의 언어 경향이 비평을 압도하고 있다. 그럴 때 비판은 비판이기를 그치고 다만 감정적으로 소모적일 뿐인 공격으로 변질한다. 특정 인물이나 집단, 인종 등의 재현에서 몇가지 결점이 있다고 한다면 해당 작품은 별안간 처음부터 만들어져서도 안 됐고 방영되어서도 안 됐던 폐기물로 기각되어버린다. 급기야 그 작품을 시청한 사람들에게도 공격성이 뻗친다. 한 작품에 대한 ‘극불호’의 정서와 공격성은 ‘극불호’ 외의 다른 수용을 인정하지 않는다. 남는 것은 그 작품을 좋아한 사람을 바보로, 혹은 상종해선 안 되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오징어 게임 좋다’는 네가 싫어”…‘뇌절’ 공격 끝에 남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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