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과 박정희의 묘는 서울에 있고, 최규하의 묘는 대전에 있다. 정확히는 국가 원수 묘역이 대전 현충원에 마련되어 있지만, 이승만과 박정희를 제외하곤 여기에 묻힌 대통령은 최규하뿐이다. 심지어 윤보선은 말도 안되는 풍수지리탓에 국립묘지도 안간단다. 물론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이든 누구든 자기가 묻히고 싶은 곳에 묻히는 게 맞다. 대통령이라고 싹 묶어서 한군데에 줄세워 놓는 것도 좀 군대적이지 말입니다. 게다가 현재의 현충원을 보면, 내가 윤보선 후손이라 해도 현충원에 모시기는 싫을 것이다.

서울 현충원은 국립묘지라기 보단 군대묘지다. 박정희 내외가 내려다보는 짬밥순으로 장군묘가 있고, 사병묘가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입구에서부터 땀흘리고 올라가면 맨끝에 위대한 박정희 내외분 묘가 있는 것이다. 서울 현충원에 어디에 묻히든지 박정희의 휘하에 놓이게 된다. 심지어 서울 현충원에는 박정희 운구차가 전시된 건물이 따로 있다. 이승만 대통령마저 그 아래에 있다. 박정희 묘에 서서 돌아보면 걸어오며 봤던 모든 묘비들은 결국 병마용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전 현충원 역시 국가 원수 묘역 이외의 다른 묘역들이 계급대로 배치된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리적인 공간은 어쩔 수 없이 위계를 가진다. 북쪽이 있고 남쪽이 있고, 레벨이 높은 곳이 있고 낮은 곳이 있다. 좋은 땅이 있고 나쁜 땅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동산에 얽메여 산다. 그런데, 죽어서도 이 계급을 뗄 수가 없다. 죽음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지만, 대한민국에선 그렇지 못하다. 현실적인 관리의 차원에서 대통령의 묘와 어느 이름모를 군인의 묘가 같을 순 없다. 참배객들의 숫자라든지, 동선의 차원에서 물론 차별이 생길 수 있다. 다를 순 있지만, 그것이 의도된 위계여서는 안된다. 그래서 현재의 서울 현충원에는 어떤 대통령도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은 시끄럽지 않게 고향에 묻어달라고 했으니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대통령 묘역에 안치해야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만약 노간지가 장지에 대한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대전 현충원에 자동으로 안치되는 것인가?

walking-city

건축 architecture과 전보telegram의 합성어라는 아키그램은 건축을 통해서 메세지를 전하려고 했단다. 당시 영국의 상황이 그랬나보다. 걸어다니는 도시를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부동산에 얽메여 있는지 이 재밌는 그림으로 드러내고자 했단다. 그래서 노무현은 행정중심복합도시를 추진했었을 것이다. 걸어다니는 도시가 그림으로만 있듯, 세종시도 국제현상에서, 첫마을, 행정타운 이후의 턴키까지 모두다 그림으로만 남을 것 같다. 현상을 하며 만들었던 모델이, 도면이, 당선되서 만들었던 보고서들이 모두 아키그램의 그림과 같은 운명이 될 것 같다. 이 나라에 건축가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공헌이라고까지 혼자 되뇌였던 첫마을 당선때의 기쁨도 대충 지어질 턴키 아파트들과 같은 신세가 되었다.

오바마가 노벨 평화상을 탄다니 우리 나라 대통령들 생각이 났다가, 괜시리 부동산으로 생각이 옮겨갔다. 한정된 재화의 분배에 따른 불평등이라고만 하기엔 부동산에 얽혀있는 다른  힘들이 너무나도 많다. 지방 토호가 됐던 강부자 정부가 됐던 어퍼이스트사이드 XOXO가 됐던 location, location, lo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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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op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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