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 home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가는 길은 원래 지하철이 생기기 전에는 ‘이면도로’에 불과했다. 그 길의 끝에 지하철역과 백화점이 생기면서 그 길을 둘러싸고 있던 건물들은 갑자기 등과 배가 바뀌느라 진통을 겪고 있다. 이제 얼굴을 대고 있는 쪽이니 그 길을 정비해달라고 관련 기관에 무지하게 졸랐는지, 그 길에 가로수와 전구를 박아서 활주로를 만들었다.

극장과 식당들이 바라보고 있는 이 길을 그렇게 급하게 만들다보니 나무를 옮겨심을 수 있는 좋은 계절 – 식목일은 그래서 4월에 있다 – 을 지나 땡볕에서 나무를 옮겨심다보니 그 절반은 “교체 예정”이란 푯말을 달고 있을 수 밖에 없었고, 극장을 마주보고 있는 아파트가 있으니 그 거리에 높은 가로등을 설치 못하는 상황이 바닥조명의 아이디어를 낳았으나 그 특성상 툭하면 아저씨들이 낮에 앉아 교체를 하고 있다. 기술적인 한계는 그렇다치더라도 작은 조명으로 밝기를 높히다보니 휘도가 너무 높아 밤이면 활주로가 되고 비라도 오는 밤이면 초현실적인 상황이 펼쳐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 길의 중간쯤은 “축제의 광장”이라는 알 수 없는 푯말도 달려있다. 그 가운데에는 그런데 왜 잔디 화단을 두었는가는 더욱더 알 수가 없는 일.

급하게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야하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도시라는 곳은 그런 일을 해서는 안되는 곳이다. 도시는 특정 시점의 목표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루 하루의 과정이 그 목표이기 때문이다.* 평등한 도시 자원의 분배는 공간간에도 적용되어야하지만 시간대에도 적용되어야한다. 2005년의 10월 ‘목동중심축도로’를 걷고 있는 나도 2010년 10월 ‘목동중심축도로’를 걷고 있는 나도 공평하게 정상적인 거리를 걸어갈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2010년에도 여길 걸어야할지는 의문이다.

광주 도시 계획 galaxity에서 시점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탁월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였다하더라도 ‘아시아’, ‘문화’, ‘중심’ 등의 단어에 대해 완전히 책임을 지지 못한 것은 여전히 문제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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