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드에 적었었는데 너무 길어서 기록차 옮겨둠.
역사를 통해 얻는 교훈은 매우 제한적이거나, 포괄적일 수 밖에 없다.
강을 바라보면 같은 물이 흐르는 모양을 보는 것 같지만 매번 다른 물이 흐른다. 자세히 볼 수록 다르고 대략의 방향만 비슷할 뿐이다. 역사를 통해서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인물과 사건의 인과관계를 살펴보고 당시의 필연성을 이해해야한다. 당시의 필연성을 현재에 바꾸고자 한다면 인물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시스템의 수정 가능성을 탐색해야한다.
타임머신을 타고가서 어린 타노스의 목을 졸라 죽이면 블립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히틀러가 미대에 갔으면 2차대전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당시 유럽과 독일의 방향은 바이마르 공화국을 전체주의 국가로 만들었을 것이고, 타노스 대신 울트론이 인피니티 스톤을 둘러메고 손가락을 튕겼을 것이다. 바이마르 공화국과 현재의 독일의 차이는 2차 대전의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 이고 거기서 독일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헌법과 제도, 정치문화, 교육을 바꾸어 독재자가 다시 등장하지 못하도록 구조를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미대 입학 실패자 유머를 좋아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역사같은 것을 비유랍시고 떠벌리며 빙빙 돌아왔지만,
이제 문재인 대통령을 돌아보자.










내가 기억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출발점은 박근혜의 실패였다. 모두가 말하는 ‘제왕적 대통령’으로부터 어떻게 대통령이라는 시스템을 바꿀 수 있을까가 모두의 화두였다. 권력의 집중을 막자, 청와대를 나오자(!), 내각제를 하자 등등. 이는 모두 ‘제왕적 대통령’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을 때, 그저 자기에게 유리하니 한마디씩 던지는 의미없는 솔루션들이었다.
제왕적 대통령이란 법률과 헌법이 정한 바보다 대통령 개인의 판단을 우선시하여, 예측할 수 없는 판단을 내리고, 그런 판단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가가 사용할 수 있는 권력을 휘두르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영삼의 초법적 통치 행위는 초기의 몇몇 성과에 박수를 받았지만 결국 시스템의 붕괴를 일으켰다. 박근혜는 법 바깥에 있는 최순실에게 판단을 미뤘고, 검찰은 그런 권력의 최애 아이템이었다.
그 때 책읽고 산타는 거 좋아하는 문재인은,
자신의 안온한 삶을 친구 때문에 버렸던 문재인은,
평생을 자신의 삶보다 소명을 선택한 사람이었던 문재인은,
이번에도 같은 선택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인격체의 판단을 버리고 법과 규정을 수행하는 자, 하나의 헌법기관으로서 대통령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 때 그 때 주어지는 변화하는 첩보에 의해 날렵한 판단을 하는 것보다는 시스템을 믿고, 어떤 특이점이 발생해도 헌법과 국민이 이를 언젠가 바로 잡아줄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시스템을 믿는 것이 옳았는가, 선한 의지를 가진 인물들을 믿었어야 했는가가 문재인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문재인을 욕할 수 없다고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는 시스템을 믿고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시스템을 오버라이드하는 명령을 내린다면, 그것이 그의 실패였을 것이다. 법률이 정한 한 기관의 임기를 대통령의 의지로 쳐낸다면 그것이 선례로 남고 정무적 선택을 우선시 하는 제왕적 대통령이 재등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잘못했는가?
내 맘대로 문재인의 마음 속에 들어가서 그의 의도를 선해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인터뷰와 책들을 읽어보면 그가 하려던 것이 무엇이고, 본인이 본인의 내적 정합성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볼 수 있다면, “대통령은 비인격적 헌법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과 그를 위한 행보도 함께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이 잘못했는가?
만약 그의 철학이 틀렸다면, 시스템에 대한 맹신이 틀렸다면,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나는 여전히 시스템을 믿는다.
징기스칸은 놀랍도록 먼 땅을 정복했지만 그 땅은 얼마지나 다른 나라의 땅이 되었고 지금은 그 언어마저 남아있지 않다. 진시황은 마차의 폭을 통일했고, 도량형을 통일하였다. 징기즈칸은 놀라운 전투 능력을 가졌지만, 시스템을 만드는데 실패했고, 진시황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유지될 시스템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재명을 배출한 것은 윤석열 이후 새로 제정된 헌법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윤석열을 제거한 것도 현행 헌법이고, 리비젼은 있어야겠지만, 한동안은 대한민국을 유지할 근간이다.
나는 또한 시스템을 믿지 않는다.
미국에서 살면서 놀라는 것은 그 시스템이다. 운전면허증을 갱신하러 갈 때마다 느끼는 갑갑함은 바로 그 시스템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이재명은 그러한 시스템을 보완해줄 사람이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부분에 가서 직접 듣고 작동하지 않는 공무원 사회를 움직이게 하거나, 고장난 노동 환경을 바꾸려고 한다. 시스템을 믿는다는 것은 그것의 완전 무결함을 믿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 완결성을 믿는다는 것이다.
문재인도 이재명도 실패한 정부의 잿더미 위에서 시작했다. 문재인을 지지했다면, 그 이유가 있을테다. 내가 지지했던 이유는 그가 정확한 방향을 가진 사림이었고, 그 방향을 향해서 흔들림없이 갔기 때문이다. 그 방향이 맞느냐 틀리느냐는 그를 뽑기 전에 고민할 것이다. 그렇다면 비판의 지점은 그의 철학이 아니라 그 철학을 수행했느냐 아니냐이다. 부동산에 대한, 경제에 대한 그의 철학은 확고했고, 그 결과가 어찌됐든 그는 그 방향으로 사람들을 썼다. 그가 실패한 부분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공통적으로 만들어낸 실패이다. 분명히 반성해야할 지점이 있는 것이지, 문재인 비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그럼 왜 ‘비판하는 자’를 비판하는가?
그들이 이재명을 비판할 것이기 떄문이다. 지금은 이재명의 철학이 명확하다. 그도 역시 최선을 다할 것이고 부동산 실패를 거울 삼아 새로운 패러다임을 재시했다.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이 조금은 나아질 것이고, 이 모든 것의 원흉 검찰은 해체될 것이다. 코스피는 5000을 향해 갈 것이고 나는 이잼 친칠라 모먼트를 즐길 것이다. 그런데 만약 트럼프가 반도체 관세를 200% 때린다면? 코스피 5000을 목전에 두고 실패한다면? 검찰이 해체되는 줄 알았는데 다른 이름으로 더 나쁜 짓을 한다면? 16% 지지율의 국힘이 몇몇 이재명 정부의 스캔들을 딛고 보수 언론들과 합심해서 ‘내로남불 정부’ 라면서 제2의 조국을 만들고 제2의 문재인을 만든다면? 나는 지금 문재인에 대해 당시의 몇몇 사건들에 있었던 판단을 예로 들어가며 문재인의 실패를 부르짖는 자들이 필시 이재명을 욕할 것이라 믿는다.
정치인은 방향을 제시하고 그 철학이 내가 생각하는 바와 같다고 생각하면 표를 주고, 그 생각을 실천에 옮겼으면 지지를 유지하면 되는 것이다. 철학이 다르면 표를 주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실천을 하지 않았다면 지지를 철회하면 되는 것이다.
끝으로,
우리 와이프는 여전히 문재인 좋아하지만 평가는 다르다. 둘이서 이를 두고 꽤나 길게 토론을 했었다. 아직까지 우리 와이프가 하는 것보다 나은, 내가 설득될만한 문재인 비판은 보지 못했다. ‘저렇게 느끼는군.’은 있을지 몰라도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라는 정합성은 보지 못했다. 실패에 대한 토로는 간략하지만 반증은 길고 지루하다. 할말하않 분들을 대신해서 길게 적은 것이니, ‘비판을 비판하는 자에 대한 비판’으로 ‘긁우와 다를 바없는 맹신자들’이라는 식으로 퉁치고 넘어가지 않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