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한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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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한국 여행

To be continued.

8월 20일

한국의 아침은 바쁩니다.

아이를 챙겨서 유치원에 보내야하는 사람도, 집에서 일하는 사람도 모두 공평하게 출근 시간에 맞춰야 합니다. 이리도 바쁜 와중에도 착한 동생과 재수씨는 오랫만에 한국에 온 형의 가족들 와서 아침 식사를 먹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요즘 유행하는 ‘런던 베이글 뮤지엄’에서 사온 베이글까지 준비해서 말이죠.

런던과도 상관없고 뮤지엄과도 상관없는데 게다가 무려 베이글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쫄깃 쫄깃 일단은 맛있다!
맛만 좋으면 좋은 아침!

아이가 아직 열을 내려야 하고 안정을 취해야 해서 큰 일정없이 쉬었습니다. 오히려 이 때가 ‘휴가’같은 휴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목동 아파트 3단지의 푼크툼

아침을 먹고 동네를 좀 걸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횡단보도를 보고 들었던 생각은 따로 ‘횡단보도’라는 글에 적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5단지는 아니고 지금 동생이 살고 있는 3단지입니다만, 5단지와 비슷한 디테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30년 전에는 지하 주차장이 없고, 지하는 반지하로 스토리지로 활용되고 지상층은 반층위에서 시작합니다. 당시에는 꽤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당연한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프라이버시를 침해받을 가능성이 높은 저층부는 보행자쪽으로 화단이 구성되어있습니다. ‘나름’ 백야드 역할을 하는데, 이 화단을 만들기 위한 벽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졌습니다. 아마도 동일한 거푸집으로 표준화 시켰던 모양인데, 간단하지만 꽤나 디테일하고 질리지 않는 디자인입니다.

그리고 물결모양의 블럭 타일도 지금까지 큰 문제없이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 화단 벽과 타일들이 군데 군데 실패한 것들을 어린 시절부터 봤던 기억이 있지만, 그 큰 단지에선 극히 일부였고, 30년도 더 되었을텐데 큰 하자 없이 잘 버티고 있는 걸 보면 무척이나 성실한 디자인과 시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사진을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먼저 올린 이후로 초등학교, 아니 저희에겐 국민 학교입니다만, 동창생들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덕분에 미국에 살고 있는 몇몇 친구들과 화상회의도 한번 했지요. 저 벽의 높이란 초등생들 눈에는 거리로 보이는 상당 부분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을테니, 그만큼 기억에 남는 디자인 요소겠지요. 어떤 다른 벽을 보여줘도 구분될 수 있는 디자인, 나의 어린 시절 마을에 있던 벽이라는 Punctum 1 을 자극할 수 있는.

특별히 멋부리지 않은 그래픽 디자인도 정감있습니다. 그래픽이나 폰트, 로고, 색의 사용도 나름 통일성있게 목동 아파트 단지를 구성하는 요소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화단의 펜스 역할을 하는 pq 모양 철물도 최소한의 재료와 시공을 할 수 있는 좋은 디자인이었던 것 같구요. 아직까지 잘 유지되는 것을 보니 참 대단합니다.

당시에 처음 도입되었던 (것 같은) 시각 약자를 위한 안내 보도 블럭도 끊기거나 파손되지 않고 잘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새로 시공된 단지 입구의 보도블럭의 시공 상태와는 딴판입니다. 사실 이곳은 보행자 전용이긴 하지만, 때때로 착탈식으로 시공된 볼라드 Bollard 를 제거하고 서비스를 위한 차량이 밟고 올라오는 탓에 보행자를 위한 보도 블럭이 파손되고 새로 시공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전거 도로가 추가되면서 함께 변한 것일 수도 있구요. 시공이 크게 잘못되지는 않았지만 제멋대로 현장의 편의대로 시공된 것이 눈에 보입니다. 아무도 저 줄눈을 맞춰 고민한 적이 없고 현행 법규에만 맞게 허가도면만 만들어지고 시공이 되었겠죠.

오래된 아파트 단지는 어딜가나 초록초록합니다. 특히나 녹지면적을 30%까지나 확보한 당시로선 상당히 파격적이었던 설계덕에 목동 아파트는 이름에 걸맞게 ‘우거진’ 나무들을 자랑합니다. 30년이면 도시로서도 나무로서도 대단한 역사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한 세대를 갓 넘기고 좋은 도시 조직으로 역할을 시작할 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아파트 단지에게 30년이면 늙은 나이지요. 이제 한국의 재개발 관련법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20년이면 안전진단을 한다지요?

아마도 재개발을 통한 수익이 생길 수 있는 거의 마지막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아닐까 싶은데요. (수익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비슷한 연배의 상계동도 함께.) 교육 프리미엄이 있으니 그래도 목동 아파트의 재개발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고 있는 모양입니다. 모자란 주차장과 노후된 건물 때문에 주민들 입장에선 불편한 점도 많겠지만 단지 디자인만 놓고 보면 재개발이 참 아쉬운 단지들입니다.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도 없고 답도 없습니다만, 오랜만에 어린 시절 목동 아파트 단지를 걸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내친 김에 원래 제가 살았던 5단지도 걸어보았는데, 다음번에 5단지 사진과 함께 아파트에 대한 글을 조금 더 적어보겠습니다.

2024 한국 여행

To be continued.

  1. 사진하시는 분들이 이야기하는 스투디움과 푼크툼의 그 푼크툼입니다. 저도 뭔지는 정확히는 몰라요. 한번 읽어보시면 (…) Roland Barthes: Studium & Punctum ↩︎

Edi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