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계획했던 대로 백수철을 데리고 일요일 (6월 30일)에 그레이스 팜즈에 갔다. 뉴욕이나 뉴저지에서는 차로 한시간 정도 운전하면 갈 수 있다.


그레이스팜즈는 원래 이름 그대로 교회 공동체가 운영하는 농장이었다고 한다. 이 건물 (River Building 이라고 부른다.) 은 이 농장 80에이커 (32헥타) 중 3에이커 (1.2헥타) 정도를 비워 새로 지은 커뮤니티 센터이다.

디자인은 그놈의 프리츠커상에 빛나는 SANAA가 했다.
예전에 자연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몇몇 스타 건축가들이 간단한 사진과 모델 형식의 답변을 했던 적이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하도 가물가물해서 SANAA가 아닐수도;;) 다른 건축가들은 나름 심오한 정의와 표현을 했던 반면 SANAA의 경우는 그냥 녹색이랑 나무같은 것을 떨렁 그려놨던 기억이 난다. 하여튼 자연은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라고 할 때 – 그냥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풍으로 ‘자연이 뭐 자연이지.’ 이런 결론이었던 듯.

그런 SANAA의 대답은 이건물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건물은 언덕을 따라 SANAA 특유의 헤벌레 커브로 여유만만 늘어져 있다. 하나의 매스 아닌 매스가 길죽한 덩어리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건물 반대쪽에는 말그대로 ‘자연’이 있고 건물은 그 ‘자연스러운’ 곡선을 따라 최선을 다해 투명한 매스가 언덕을 따라 흐른다. 건축이 흐르는 강이라고 River building 이다. 괜히 뚜껑이 반딱 반딱 거리는 것이 아니엇;;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곳에 오는 방법은 자동차 뿐이다. – 자연과 건축이 만나는 방법 – 두개의 주차장이 하나는 언덕 위에, 하나는 언덕 아래에 있다. 이 매스의 자연스러운 댄스가 끝나는 지점은 언덕 위에 있는 오디토리엄 역할을 하는 Sanctuary. 관람을 마치고 차를 탈 수 있도록 위쪽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부러 매스를 피해 농장길을 따라 아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구불구불 매스는 길지만 윗주차장과 아래주차장은 그리 멀지 않다.

사방이 열려있기는 하지만 유일하게 닫혀있던 문이다. 서비스 차로를 막는 문이기 때문에 문이라기보다는 방문객이 큰 무리없이 주차장으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정도만 하면 충분해.’ 라는 느낌으로.
대부분 River Building을 보기 위해 여기에 오는 것이지만 SANAA가 리노베이션을 진행한 Original Barn이 개인적으로는 더 정감이 간다. 원래 교회와 커뮤니티 센터가 있던 미국식 박공 건물 두 동인데, 미국에서 싼 맛에 많이 쓰는 외장도 이렇게만 하면 있어보이게 (그러면서도 소탈하게) 할 수 있구나 싶다. River Building은 여기를 봐도 돈돈디테일 저기를 봐도 돈돈디테일 이렇게 보여서 좀 부담스럽;; 교회라는 프로그램이 어떤 겉모습을 가져야하는지도 잘 말해주는 것이랄까. 그레이스 팜즈를 방문할 예정이시라면 이 정갈한 빌딩이 멋진 답사의 애피타이져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

SANAA의 리노베이션이니 자기 가구도 팔아야지 가구들과 마감들도 일정한 톤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소박하게 보인다고 결코 소박하지 않은 건물;;
‘소박한’ 두동을 감상하고 있을 무렵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정말 이곳은 비가 오는 날 눈이 오는 날 와봐야 하는 곳이다. 만약 방문이 예정이시라면 꼭 날이 구진 날 찾아 오시길 – 사실 베스트는 소나기가 지나가는 날, 즉 내가 갔던 날이 아닌가 싶다.
건물을 짓고 나면 장마를 맞아봐야 제대로 됐는지 안다고 한다. 이것은 물론 공구리를 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한국 건물의 특성상 방수의 성공적인 시공을 눈으로 확인하는 방법이 따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리버 빌딩에서는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비가 와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자연’과 건물의 경계. 그 얇은 선 하나가 비를 통해 그어진다.

지붕 아래에만 있으면 분명히 건물 안에 자연 밖에 있다고 느낄 수 있고, 자연은 한발 앞에 있지만 저 멀리에 있는 듯 하다. 그에 비하면 낙수장에서는 집안에 있으면 그 폭포를 보기도 힘들다. 손을 내민다고 풀을 만질 수도 없고 물에 발을 담그려면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와야 한다. 하지만 왠지 그냥 폭포위 바위에 앉아 있는 듯 하다.
다시말해 그레이스팜의 리버빌딩에게 ‘자연’은 가촉 거리는 가깝지만 (파노라마로) 관조하는 대상이 된다. 아주 얇지만 분명한 경계가 존재한다. 가깝지만 멀다. 폴링워터는 분명하지 않은 두터운 그라데이션의 경계로 자연을 체험하게 해준다.

사실은 이 얇디 얇고 선명한 경계가 SANAA가 자연에 대해 가지는 태도인 듯 하다.


2009년의 서펀타인 파빌리온. 여기에 정확하게 유리 매스만 밑에다 집어 넣은게 리버빌딩. 이 건물의 명확한 경계는 지붕과 바닥을 통해 이미 만들어져 있고, 그 경계는 저 얇디 얇은 컬럼을 따라 그려진다. 거기에 유리 (아주비싼!) 가 있는가 없는가는 그리 큰 상관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어디에나 분명하게 아주 얇은 선이 분명한 경계를 만들고 있다.

아주 작은 점이 만드는 경계도 있다.

가구가 만드는 영역도 있는데, 저 위치에 저 가구는 위치가 변하지 않는다.

비올 때는 구지 이렇게 해두는 것 같다. (아아 이것도 귀여워!)

숟가락을 놓는 곳도 정해져 있다.

‘자연스러움’ 혹은 ‘자연’ 이라는 단어는 그래서 건축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쉽게 내뱉어서는 안되는 것 같다. 특히나 ‘자연스러운 곡선’ 따위의 게으른 표현으로 자신의 디자인이나 다른 사람의 건축을 설명하면 가서 좀 때려줘야 한다.
그 외에 이 건물은 모든 부분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 4시간 넘게 수철이하고 목이 아프도록 수다를 떨다가 왔다.

심지어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재료에게서 나오는 패턴도 다 예뻐보였다.
와 처음 갔던 게 벌써 3년 전. 건물은 똑같이 아름답고 식당의 메뉴가 좀더 많아졌고 식사로 먹을만한 것도 많이 생겼다.
아이들이 가도 좋아하고 어른들도 좋아하니 건축뿐 아니라 일반 관광을 원하시는 분들도 즐겁게 반나절 즐기기에 좋다. 월요일만 닫고 일주일 내내 열려있고 매일 매일 뭔 프로그램들도 있다. 아이들을 위한 아트 프로그램이나 자연 관찰 프로그램같은 것도 있으니 아이있는 부모님들도 함께 가면 좋을 듯 하다. https://gracefarm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