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규모에 감탄하는 일은 순수하게 규모에 압도당하는, ‘논리 이전의 감정’에 의해서도 있겠지만, 나는 규모로 인해 그것을 다루는 방법이 달라지는 경우에 더욱 감탄하게 된다. 물리 이론이 어느 순간까지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빛의 속도가 넘어가는 순간부터 다른 물리학이 적용된다든지. 지구 안에서는 뉴튼의 물리학으로만 모든 것이 설명이 되지만 지구 밖으로 영역이 확대된다든지, 생각의 영역이 빛의 속도 이상을 다루어야한다든지 하는 순간이 오면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이 필요하게 되는 순간이 오게된다. 그리고 그러한 아이디어의 계단을 딛고 올라서서 알고보면 아인슈타인의 E=mc^2가 뉴튼의 F=ma를 설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욱 살이 떨리게 마련. 엄청난 규모로 사고를 확장하게 되면 그 이전의 사고가 ‘틀린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 말이다.

랜덤하게 다운받아 봤던 ‘특선다큐’ 중에 나왔던 스웨덴과 덴마크 사이에 놓였다는 외레순 Øresundsbron 다리를 보던 중에 다시 한번 규모가 (quantity 兩) 내용 (quality 質)를 의심케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다리가 워낙 거대해서 녹을 방지하기 위해 방청도료를 철에 바르는 것보다 제습 설비를 설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는 설명이 나오는 순간 당연히 방청도료가 더 싸게 먹힐 것이라는 상식이 규모에 의해 의심되고, 의심없이 시행되는 원칙들에 대해 반성해야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울 강북 어디에 있다는 금으로 발라둔 왠 절 생각도 났다. 그 절을 몇년마다 칠하고 종이바르는 것보다 금박을 바르는 것이 더 쌌다는 주지 스님의 인터뷰를 보고 아 금보다 비싼 게 있구나. 했던.

042811

나흘 뒤면 서울로 돌아간다. 마감 날짜를 바보같이 서울 이동과 같이 잡아버리는 바람에 도망치듯 뉴욕을 떠날 것 같다. 우기님과 미나리 부부에게 안기에게 전해줄 박스 몇개 전해줘야지 했는데 내 책들도 맡기고 책상이며 의자도 떠넘겼다.

말그대로 ‘앉으나 서나’ 프로젝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디자인에 대한 생각이 그렇다면 좋겠는데 제대로 스케쥴 못 짜서 일이 밀리고 실수가 생긴 것에 대한 후회와 원망이 그런 것이니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열심히 밤새고 땀흘린다고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너무 게을리 그냥 ‘열심히’만 했다. 열심히 하는 것만큼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주는 영향이 커질 수록 그러면 안된다고 늘 불평하고,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해도 늘 지나고 나서야 느끼게 된다. 처음이니까라는 변명은 학부 졸업장받고 1년간 유효한 것. 그렇지 않으면 처음이 아닌 게 어딨나.

6개월 뒤 뉴욕에 돌아올 땐 디자인의 완성도가 높은 좋은 건물 뿐 아니라 디자인 과정의 완성도가 높은 좋은 회사로 만들어 돌아오고 싶다.

031511

하나마나한 이야기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은 내 취향이고,
그것이 목표가 아니라 방법이라면 종종 써줘야겠구나.

취향은 취향이고.

030511

모든 일이 항상 내 앞에선 선명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일을 진행할 때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대화를 할 때나 글을 쓸 때나 그림을 그릴 때나 나 혼자 하는 것과는 다르다라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겪었고 이제는 자신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상황에 닥치니 ‘다시 처음부터’. 안으로 겸손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