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cycle

자전거 타는 방법을 모른다고 세상사는데 크게 문제될 것은 없고, 자전거를 조금 더 잘 탄다고 남들에게 특히 인정받을만한 것도 아닌 일인데, 아이에게 자전거타는 법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모두들 꽤나 법석을 떤다. 그다지 먹고 사는 데에 필요한 기술이라거나, 가성비를 들먹이면 신체나 지능 발달에 도움을 주는 효용이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그다지 실용적인 이유가 없는 이유로, 자전거 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혹은 그걸 부모로서 가르친다는 것은 순수하게 기쁜 경험인 것인가 보다. 나의 아버지가 자전거를 가르쳐주셨던 날, 그 (5월같았던) 날씨와, 그 빨간 55 자전거 뒤로 날리던 학교 운동장의 먼지같은 기억들과, 그리고 아직도 당신이 나를 뒤에서 잡아주는 줄 알았다가 이제 혼자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을 때의 두려움과 흥분이란 것은, 지구가 언젠가 사막이 되고 인류 문명이 인류의 실수로 남겨질 유산이 얼마 없다고 하더라도, 무엇보다 우선 전해줘야하는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유전자를 전해주는 일보다 거대한 사명이고, 이 거대한 사명을 수행하는 날이 드디어 온 것이 –

아니라,

🛴

아이에게 스쿠터는 꽤나 특별했던 모양이다.

2017년부터 함께 하던 스쿠터. 준영이랑 놀이터에서

오후의 일정이 정해진 탓에 간단히 동네 놀이터나 나가자며 나간 길에 그 스쿠터가 망가졌다. 보도의 턱에 걸려 무릎이 까진 것이 서러워 울면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 내리막길에서 넘어질 때의 충격에 헐거워진 바퀴가 또르르르 떨어져나가 굴러가는 걸 보고 아이는 더 놀라서 울면서 달려 내려가 바퀴를 주워 가슴팍에 안고 울었다.

스쿠터야 아프지 마.

지 애비가 다쳐도 이리 안울겠다라는 농담을 하기엔, 목에는 땀이, 무릎엔 피가, 코에는 콧물이, 눈에는 눈물이. 4세의 아이에겐 자기 무릎의 상처가 주는 아픔과 스쿠터가 느끼는 아픔이 달리 느껴지지 않았을 것 같다. 얼른 빠진 나사를 끼워 눈물을 닦고 집에 가서 대일 밴드라도 붙여주고 싶었지만, 정확히 어느 시점에서 나사가 빠졌는지, 놀이터 가던 길에서 바퀴가 빠진 지점까지는 너무 멀고 복잡했다.

아이를 달래는 것도 중요했지만, 이번 여름이 기회라고 생각했던 일이다. 게다가 이제 다다음주면 엄마와 함께 아이는 한국에 먼저 가기로 했으니, 시간이 얼마 없다. 지금이 아니면 가을이 되서야 자전거를 살 수 있을테고 날은 금방 추워질테니. 얼른 소독하고 밴드붙이고 눈문 콧물만 지우고 자전거를 살 수 있는 타겟으로 갔다. 평소에 봐두었던 모델은 아니었지만, 구지 애비의 취향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니, 몇번 조금 큰 바퀴와 작은 바퀴를 얼른 태워보고 집으로 달려왔다.

솔이는 정말 스파이더맨과 스타워즈를 좋아한다.

자전거를 조립하고 시험 주행을 나가봤다. 보조 바퀴가 있으니 아직 수평을 잡는 고급 기술을 익힐 필요는 없지만, 페달에 익숙하지 않아 페달밟는 것을 조금 익혔다. 나도 접해본 적 없는 Coaster brake 라는 방식의 체인으로 되어있어 약간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어쨌든 가볍게 동네 한바퀴를 돌았고, 집에 돌아와 씻고 오후의 일정에 있었던 동네 쌍둥이 돌잔치를 다녀왔다. 돌잔치에 자진해서 찍사 노릇을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길에도 엄마는 끝내 아이의 ‘스쿠터야 아프지마’라는 울음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는지, 결국 사건이 일어난 장소로 돌아갔다.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는다는 비유가 무색해졌다. 엄마는 잔디밭과 고속도로 틈에서 나사 하나를 찾기 시작했다.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와서는 자, 엄마랑 같이 찾으러 가볼까. 하고 다시 자전거를 꺼냈다.

요즘의 판타지 이야기들에게는 쉽게 쥐어지는 해피엔딩은 환영받지 못한다. 수퍼맨은 그래서 별로 재미가 없다. 수퍼맨의 초능력이면 해결이 안되는 일이 없지 않나. 어벤저스는 끝내 지구를 구했지만, 잃기 싫은 무언가를 잃어야만 했다. 수퍼 파워로 다 해결되는 일은 재미가 없는데. 이 엄마가 수퍼 파워로 나사를 찾았다. 아니 이건 말이 안되는데. 이렇게까지 해피엔딩이 될 수 있나.

아직 보조바퀴를 뗄 때와 같은 커다란 기쁨의 차례가 오진 않았지만, 오늘의 소소한 기억들도 아이가 잘 품고 있다가 후대에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바퀴의 발명보다 위대한 건 자전거를 타는 법을 가르쳐주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