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라이징

뉴욕시에서 주관한 SIRR이 끝나고 얼마 뒤부터 뉴욕주에서 주관하는 새로운 복구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이름하여 NY Rising Community Reconstruction Program.

SIRR이 조금더 개괄적이었다면, NY Rising은 조금더 구체적이고, 커뮤니티 위주의 진행이었다. 이름도 Community Reconstruction Program 아닌가. 기본적으로는 여기저기서 펀딩을 했고, 이걸 어떻게 나눠줄까…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서 회의 좀 해서 우리 동네는 뭐 때문에 어떻게 돈이 필요하다고 올려보세요. 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여기 이렇게 돈이 들어왔고,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돈쓸 분 신청하세요.”하는 페이지가 마련되어있는데, 이것이 이 프로젝트의 결론이라고 보면 되겠다.

뉴욕주에서 수해 피해를 당한 66개의 커뮤니티에서 790회의 회의를 했고, 여기서 전문가 집단이 한 일은 커뮤니티 미팅에 나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동네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수집하고 이에 대한 비용을 계산해서 위로 올리는 일이었다. 우리 회사가 맡은 커뮤니티는 로워맨하탄과 브루클린의 레드훅이었고, 내가 맡았던 지역은 레드훅이었다. 팀은 부동산 컨설팅 회사 HR&A와 엔지니어링 회사 PB 가 리드했고, 건축팀 Cooper, Robertson & Partners 과 조경팀 W Architecture 이 서포트를 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수해복구를 리드하는 팀이 부동산 컨설팅 회사였다. 군대가 아니라. 사실은 SIRR의 진행도 HR&A의 파트너가 EDC로 파견나와서 실질적인 업무를 진행했었다.

두번의 수해복구 프로그램을 통해서 놀라웠던 두가지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인데, (이것이 뉴욕시 혹은 뉴욕주의 특이 사항일런지, 혹은 미국에선 당연한 일인지 혹은 한국이나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일런지 모르겠으나,) 정부의 용역으로 부동산 컨설턴트가 공공 복구 사업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어찌보면 자연재해로부터 일정 대지의 주거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토목-부동산-건축-조경 네개의 축으로 진행되며, 그 매니지를 부동산이 맡아서 한다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여지껏 부동산의 의미를 개인 디벨로퍼의 수익에만 한정지어온 프랙티스만 봐와서 놀랍다고 생각한 것일지 모르겠다.

또다른 놀라웠던 경험은 “민주주의”였다고 하면 좀 거창할지 모르겠다만, 전문가 집단 (토목,부동산,건축,조경)에서 “여기에 돈을 씁시다.”라고 결정하지 않는다. 이는 커뮤니티 미팅에 의해 결정된다. 내가 커뮤티니 미팅에 참여한 것이 서너번 정도되었고, 건축팀으로서 하우징의 관련 법규가 어떻게 바뀌었고, 어떤 지역이 법규에 적용을 받으며, 어떻게 새로 지으면 기존의 면적을 유지할 수 있는지 등을 커뮤니티에 설명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런 다소 전문적인 프리젠테이션 외엔, 동네 학교 체육관에 뉴욕라이징 배너를 걸어드리고, 동네 할머니가 벽에 걸린 의견보드에 붙일 포스트잇을 나눠준다든지, 펜을 나눠준다든지 하는 일을 했다. MBA하시고 부동산 컨설팅하시는 분들이 볼펜을 수거하고 의견 보드 떼서 스캔하는 동안 가위와 테이프를 챙겨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아. 정확히는 부동산 형들이 청소하고 펜나눠줄 때 나는 사진찍고 돌아다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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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험이 매우 놀라웠다. 백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신의 커뮤니티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발표를 하고 있었고, 고삐리 (인지 중삐리인지) 친구들이 그걸 녹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초딩처럼 보이는 애들이 체육관 바닥에 앉아서 기록하고 전문가 집단에게 질문을 했다. 전문가 집단에서 마련한 커다란 빈 지도에 마을 대표가 그려둔 ‘문제’ 혹은 ‘가능한 해결책’ 낙서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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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팅에 갈 때까지 내가 그린 것은 하나도 없었다. 미팅이 끝난 후 이것들을 모아서 새로운 맵을 그렸고 이것이 나중에 해결책으로 전문가들의 손길을 거쳐 polish되어 나갔다. 이런 과정이 몇번이나 있었고 그 때마다 엄청난 양의 데이타가 만들어졌다. 소위 아이비리그 출신이라는 MBA 친구들이나 엔지니어들이나 건축가들은 모두 벽에 서서 팜플렛을 나눠주거나 이야기를 듣거나, 질문에만 답할 뿐이었다. 나는 주민들이 말걸까봐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

그 결과물로 나온 레드훅 보고서와 함께 다른 여타의 보고서들도 다 퍼블리쉬되었고 이 프로젝트도 이제 대충 끝나가는 듯 하다. 아직 쿠오모의 오피스에선 돈의 용처를 다 찾지 못했으니 돈을 다 쓸 때까지 프로젝트는 계속되겠지.

이 인연으로 저번주에 다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EDC에서 나온 프로젝트인데 어떻게 하면 FEMA의 돈을 많이 받아올까;;를 연구하는 프로젝트가 되겠다. 다시 말하면 SIRR과 NY Rising을 통해 어디로 돈이 가서 어떻게 사용될지가 이제사 슬슬 결정되어가고 있다는 말씀. 어떻게 보면 갑갑할 정도로 느리지만 어떻게 보면 쉬지않고 많은 일들을 해나가고 있다.

어반디자인은 어디로 가는가

회사의 팀이 약간 컬럼비아 동문 모임 풍인지라 졸업한지가 꽤 됐지만 가끔 학교 소식을 전해듣는다. 사실 학교 얘기에서 무슨 중요한 건축적 / 도시적인 소식이나 학구적인 이야기를 할리는 만무하고, 어떤 선생의 전부인이 어떤 학장이랑 결혼했다더라 어떤 선생이랑 어디과의 누구랑 사귄다더라류…가 대부분.. 이란 게 당연하죠. 네. 또 이런 걸 한글로 적으니 한국 사람들만 보면 되니 또 막 써도 된다는 이점이 있군요. 세종대왕 만세. 한글 만세.

오늘 들은 소식은 조금 충격적이고 조금은 생각할 꺼리가 있는 것이었다. 한동안 어반디자인의 수장이셨던 리차드 플런츠 옹께서 물러나시고, 케이트 오프라는 분이 새로이 디렉터가 되었다는 것. 플런츠 옹은 우리 윗대 선생들한테도 학장이셨던 분인데, ((그 전에는 현재 내가 다니는 회사의 왕대빵이신 알렉스 쿠퍼님께서 디렉터셨다.)) 놀랍게도 슬슬 물러나고 물려주고 하는 아름다운 대관식풍의 광경이 연출된 것이 아니라, 플런츠 선생께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가 어느날 이리 결정이 났다는 것.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플런츠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가 / 대단했던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 그리고 케이트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은 좋다 / 별로다로 아웅 다웅 하기 시작했다. 평소 모든 디자인이 기승전’굴’ ((케이트 오프의 랜드스케이프 디자인엔 항상 수변 공간 디자인에 굴oyster가 등장하고, 심지어 Oyster-tecture라는 전시까지 한적이 있다. ))  인 그녀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비꼬며, 오, 나도 어반디자인에 관심이 있어. 정확히 말하면 크랩에 좀더 관심이 있다구. (( 해산물인 굴에 빗대서 게Crab와 헛소리crap을 이용한 말장난입니다. )) 같은 농담도 오고 갔다.

이걸 뭐 플런츠랑 (이전 컬럼비아 학장이었던) 위글리랑 사이가 좋네 안좋네 케이트가 더 친하네라든가 도시를 두고 건축이냐 조경이냐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인가 하는 건 무의미하고 (하지만 재밌다) 잠시 오늘의 어반디자인이란 무엇이 이끌어가는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리차드 플런츠 선생은 그의 저서, 뉴욕주거의 역사 History of Housing in New York City: Dwelling Type and Social Change in the American Metropolis 를 통해 현대 도시가 어떻게 조직되어가고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설명하였다. 이와 함께 도시 조직과 타이폴로지에 대한 수업을 통해서 건축 디자인과 도시 계획 중간 어딘가에 있는 어반 디자인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직접 케이트의 수업을 듣진 못했지만, 그녀의 기승전굴 시리즈라든가 같이 경쟁했던 RBD의 결과물들을 통해서 그녀의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다. 사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의 원조이신 제임스 코너나 다른 잘 나가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하시는 분들의 공통적인 명제랄까. 하는 것들이란 대충 : “자연이 도시를 만들 것이니라… “정도로 ‘싸게’ 요약할 수 있다.

다시 어반디자인의 문제 아니 도시의 문제로 돌아오자면, 오늘날까지 (최근까지) 도시를 조직하는 힘은 주거 – 주거를 상징으로 하는 경제 및 정책, 즉 인간 정치 사회의 결정- 를 따라왔다. 그러나, 이제 도시를 디자인하는 힘의 중심이 굴 자연으로 옮겨갔다고 할 수 있고, 이번 디렉터 취임 사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이제 도면 그릴 때 나무를 좀더 성실히 심어야겠어요. 

Field Trip to Catskill for Foodshed Research.

마지막 학기 때 뉴욕의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로 리서치 클래스 때 답사갔던 우유 목장에서 플런츠 선생님. 항상 재미없는 농담을 하고 / 듣고 어깨를 들썩이며 (좀쪼잔한풍으로) 낄낄 웃으시는 모습에 참 사람좋은 분이시다. 컬럼비아 선생들 중 몇 안되는 다시 만나보고 싶은 분이시기도 하다.

완전 거리

2014년 한해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큰 일들이 많았다. 솔이가 태어났고, 차를 마련하고 주차가 가능하며 세탁기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 외에 회사에서의 일들 역시 큰 일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일만 힘들고 별로 배운 것도 없고 결국엔 성과도 없었으며 같이 일한 사람의 안좋은 면만 잔뜩 본 경우도 있었고, 프로젝트의 기간이 워낙 길어서 내가 한 일은 태평양에 소주 한컵 같겠지만 무언가 그리기 전에 미리 공부해야할 것이 워낙 많아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샌프란시스코 캔들스틱포인트와 헌터스포인트 프로젝트남보스톤항 프로젝트가 있었다.

샌프란 프로젝트에서 내가 한 일은 가로 디자인이었다. 아니 디벨로퍼가 건물 매스 다 정해놓고 나는 가로수 심고 쓰레기통 박는 일을 한단 말인가. 디자인할게 뭐있어.라고 투덜대며 섹션을 그렸다. 쓰뎅 이거 한국에선 하루면 끝나겠구만. 하고 널널하게 10개 정도의 티피컬 단면을 끊고 한 주를 보냈다. 그러자 매니저가 물었다. better street manual 봤냐? 뭐래 이런 거 그리는데 무슨 매뉴얼이야. 그래 미국인들은 매뉴얼을 사랑하지. 그렇다치고, 그런데 베러 매뉴얼이라니. 뭐가 더 좋은 매뉴얼인데라고 궁시렁대며 에라 모르겠다. 하고 better street manual 샌프란 어쩌구 구글에 때렸다. 아차. better가 아니라 Better였구나. Better Street Plan 아 이런 매뉴얼이 있었구만. 하고 PDF를 다운받아서 이백페이지를 출력해서 제본을 하고 하루가 다갔 읽어보니 모든 것이 여기에. 뭐야 매뉴얼에 다 있는데 이걸 뭐하러 그려. 하고 다시 그려보니 아. 이게 쉽지가 않다. 몇백번을 고치고 고쳐서 마감을 했다. 그리고 나서 모든 거리들을 위계에 따라 매트릭스를 만들고 각 거리의 바닥 마감재와 가로수의 수종과 가로수 grate 패턴까지 선정하고 벤치, 쓰레기통과 자전거 거치대의 디자인을 선정하고 업체 선정까지 하고서야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여기까지 만들었어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전체 가로 실시는 또 다른 협의와 디자인을 기다리고 있다.

작년 연말에 잠시 남보스톤항 마스터 플랜을 건드렸다. 이 프로젝트는 99년에 (15년전에!) 회사의 제1직원이신 브라이언 할배가 만들었던 사우스 보스톤 공공 영역 계획을 기반으로 한다. 원래 산업 항구였으나 이제 용도가 바뀌고 15년간 그 계획에 따라 진행되었던 것들이 있고, 달리 진행된 것들도 있고 하니 마스터플랜을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샌프란의 경험을 바탕으로 매트릭스를 짜야할 것을 제안했다. 하고보니, 아니 보스톤에도 매뉴얼이 있어. 제길. 이름하여 보스톤 완전 거리 도대체 이름들이 왜 이 모양이야. 아 이 매뉴얼도 나쁘지 않다. 정치적인 고려 탓에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내부적인 평가가 있긴 했지만, 그래픽도 깔끔하고 세세한 디테일이 많아서 더 읽기 편했다. 이 프로젝트는 주지사가 바뀌면서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상태로 마감을 하였다.

이 두 프로젝트를 마치고 제1직원 ((40년전에 처음으로 회사에 들어오신 현재의 파트너, 직원넘버 001이시다)) 브라이언 할배와 세미나를 했다. 세미나에선 그 분이 직접 작업했던 스트리트스케이프 플랜들을 연대기 순으로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그 전에 이렇게 말했다. “통상적인 현대의 도시에서 가로가 차지하는 면적이 30% 이상이 된다. 이 거리를 냅두고 도시를 디자인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일단 여기서 한방 맞은 듯 했다. 가로수와 쓰레기통 따위. 라던 게 좀 미안했다. 그리고 20년전 프로젝트서부터 회사의 가장 유명한 배터리파크시티 마스터플랜과 최근의 작업들이 모두 Complete Street 이라는 개념 하에 이뤄진 작업이라는 설명을 해주셨다. 컴플리트 스트리트를 완전 거리로 구수하게 번역하면 좀 웃기지만 별로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모두를 위한 거리. – 아니 이렇게 안하는 도시가 어딨어! 싶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미국에는 National Complete Street Coalition 전국 완전 거리 연합은 뭔가 비열한 거리의 조폭 연합이냐 같은 단체가 이러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단순히 법규로 안전한 도로폭 등을 규제하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자동차와 교통 중심의 도로를 도시의 중요한 공공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법규 및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컴플리트 스트릿, 완전 거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내가 플래닝 전공이 아니라 이미 계획 분야에선 10년 전부터 진행되오던 것을 발견하고는 아 이런 것이 있었구나…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최근에야 결과물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 도시 계획 협회에 따르면 도시별로 꽤 괜찮은 완전거리계획이란 게 만들어지고 있다. ((심지어 어느 동네에 이런 계획이 있는지 도 있다.))

  • Boston’s Complete Street Guidelines (2013)
  • San Francisco’s Better Streets Plan (2011)
  • New York’s Street Design Manual (2009)
  • Chicago (Complete Streets Chicago, 2013)
  • Atlanta (Connect Atlanta Plan/Street Design Guidelines, 2013)
  • Portland (Portland Pedestrian Design Guide, 1998)
  • Minneapolis (Access Minneapolis, 2008)
  • Louisville (Complete Streets Manual, 2007)
  • New Haven (New Haven Complete Streets Design Manual, 2010)
  • Charlotte (Urban Street Design Guidelines, 2007)

이 거리 매뉴얼들을 발견하고 공부하다보니 왜 이 사람은 쓰잘데기없이 스트리트믹스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는지가 이해되기 시작했고, 그의 글을 변역기 수준으로 번역까지 해두었다.

틈날 때마다 Complete Street에 대해 뒤진 것들을 여기 적어두고 또 이 ‘완전 거리’의 상위 도시 계획 개념인 Form-based Code에 대해서도 찾아보고 정리해두어야겠다. 도시 계획을 전공한 사람이 있으면 대화하는 데 좀 도움이 되겠는데, 의외로 주변에 계획 전공자는 거의 없다. (나는 디자인 전공이라구)

팔월 구월

나중에 뭔 일이 있었나 기억을 잘하는 경우는 일기를 써두었거나 블로그를 써두었을 경우이다. 구지 그 일기나 블로그를 다시 읽어보지 않더라도 적어두면 잊지 않는다. 당연히 안적어두면 거의 다 까먹는다. 그리고 꼭 뭘 잊거나 / 잊지 않거나가 중요한 건 아니고, 일년쯤 지났을 때 아무것도 안한 기분이 들거나 / 들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무언가 적어두려고 한다. 이런 저런 노트를 꾸준히 사용하기도 하지만 꾸준히 잃어버리는 탓에 아이폰에 적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성에 차는 앱을 발견하기 힘들어서 이것 저것 옮겨다니다 보니 꾸준하지 못하게 된다. 꽤나 깔끔해서 데이원이라는 놈을 쓰다가 지금은 모멘트라는 것을 쓰기도 한다. 뭔가 다 되는 것 같지만 너무 너저분해서 에버노트는 설치 후 일주일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곤 한다.

팔월은 바빠서 사진도 별로 없고 글도 많지 않다. 샌프란시스코의 헌터스포인트/캔들스틱포인트라는 원래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야구장을 이전하고 새로 생기는 도시의 프로젝트를 마쳤다. 사실 워낙 장기 프로젝트라서 이미 마스터플랜은 나와서 계속 수정되고 있고, 그 부분의 스트리트스케이프 – 경관 계획 정도로 번역하면 될지 모르겠지만 많이 다르다. – 를 마쳤다. 건물 설계에 비유하자면 실시에 가까운 작업인데, 거짓말로 마스터플랜은 많이 그려봤지만 가로수의 위치와 가로등의 갯수까지 세서 실제로 견적을 내고, 사용될 벤치들의 스펙과 제품들의 가격까지 정리하는 일이었는데 만만치가 않았다. ‘미국식’으로 일한다는 게 어떤 건지 실감할 수 있던 좋은 경험이었다. 나무 하나 심는 도면 한장 내 맘대로 그리기가 쉽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일로 바보짓을 많이 했는데, 같이 일한 성실한 친구 마이크 덕에 – 덕이라기 보단 실질적인 진행은 마이크가 했다. – 최종 리포트를 제출했을 때 파트너들이 꽤나 칭찬을 해주었다.

그 와중에 송이하고 공모전을 하나 제출하였다. 상금이 많거나 뭘 짓거나 하는 공모전이 아니라, 글을 써야하는 공모전이어서 가볍게 해보자고 시작했는데, 모자란 영어에 게으름이 합쳐져서 막판에 꽤나 난리를 쳤다. 헐렁한 공모전이라 결과가 언제 나올지도 모르겠다.

뉴욕시의 수해복구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니 다른 수해복구가 기다리고 있다. 거의 6개월 가까이를 수해복구 관련 프로젝트들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선 좀 더 잘 적어둬야겠다. 단순히 수해복구 차원이라면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것이 아니지만, 적절한 이유에 적절히 대처하고 있는 듯 하다. 이 논리들을 한국 버전으로 치환하면 어떨까. 사대강은 아니겠지요. 샌디가 왔다간지 1년이 다되어갔는데, 여전히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고, 아직도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모두가 바쁘지만 그 와중에 끊임없이 묻고 답한다. 도면 한 장 그린 일 없지만 지난 몇년 간 했던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을 깨닫는 것 같다. 참. 자랑 아닌 자랑이라면, 최신 수해복구 프로젝트는 유명하신 왕건축가님들과 경쟁한다. 리빌드바이디자인

지난 프로젝트 동안 라이노를 (라이노답게) 사용할 일이 별로 없었는데도, 워낙 라이노질에 재미를 붙여놔서 괜히 피씨한대를 마련해서 남는 시간에 이런 저런 장난질을 치곤 했다. 특히나 그래스호퍼를 가지고 노는 재미는 쏠쏠하다. 원래 지금 회사는 거의 전통건축을 하시는 회사여서 어반 디자인 팀 외에는 백인 취향 99칸 부잣집 설계하는 분들이라 라이노라든지 스크립트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물론 레빗같은 경우엔 직접적으로 도면을 치는데 도움을 주니까 많이 도입을 한 모양인데, 디자인은 여전히 손으로 그리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도 다들 최신 유행에 뒤쳐지긴 싫어하는 모양인지 세미나를 어반디자인 팀에서 준비하기로 하였다. 어반디자인 팀이 절반 이상 컬럼비아 출신인데, 뭔가 선입견 – 컬럼비아 출신은 뭔가 똥도 디지털로 쌀 것 같아 – 은 미국애들도 마찬가지인지 우리팀으로 세미나 화살이 돌아왔다. 결국 돌고 돌아 밥도 디지탈로 먹는다고 믿는 사우스 코리안에게 책임이 돌아왔다. 그래서 집에 와서 라이노 켜보니 라이센스 익스파이어. 이걸 또 언제 새로 다운받아 깐단 말인가. 누가 정품 이런 거 협찬 좀 해주고 그랬으면 좋겠다.

작업

여지껏 썰풀던 것과 따로노는 그림을 그렸는데, 어쨌든 그리면서 계속 그 썰을 염두에 두고 그리니 테스트가 되긴 했다. 내용은 별로 없고 후려쳐야하는 부분은 여기서 영감을 받았다. 한번 테스트해보고 싶었는데 쉽지는 않았다. 그러고보니 이제부터 원래 하던 썰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좀 잘 정리해서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저렇게 아이디어들은 떠올랐는데 손이 모자라니 확실히 힘이 든다. 회사에서 일할 때가 좋은 점이 있기도 하구나.

+ AnL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