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R (1)

언제나 그렇듯 나는 말할 때 서론이 길다. 이것도 그럴 것 같다. 논문도 아니고 줄줄이 생각나는 대로 쓰는 거니까 이해해주세요. 쓴다고 하고 쓰는게 어딥니까.

SIRR, Special Initiative for Rebuilding and Resiliency 이름 풀이를 해보자면

  • Special – 특별이라 쓰고 급하게 모았습니다.라고 해석하면 된다.
  • Initiative – 결론이라기보단 최초 계획이랄까요. 첫술에 배부르겠습니까만은 일단 시장님께서 퇴임 전에는 뭔가를 해야하니까…
  • Rebuilding – 네.네.일단 허물어진 것은 다시 짓구요
  • Resiliency – 탄성. 복원력. 탄력: 문제는 앞으로 얼마나 잘 버틸까하는 겁니다. 네.

또 다시 되돌아가서 서론을 이어가자면, SIRR은 NYCEDC (Economic Development Corp. 뉴욕 개발 공사)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막판에 결국 EDC 사무실에서 밤을 샜다는 이야기. 수해 복구가 도시 계획국 DCP 라든가 혹은 한국처럼 군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EDC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블룸버그 재직 시절에 EDC의 역할이 무척 커졌다고 한다.)

EDC를 중심으로 피해 지역의 주민들과 인터뷰한 결과를 모으고, FEMA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해서 전문가 집단들의 Recommendation “권유사항”을 모은 책이 “A Stronger, More Resilient New York” 이라는 리포트이고, 이 수해복구 프로젝트의 결론이다. 내가 이 리포트에 기여한 일이라면 몇몇 현장 사진과 함께 막판에 밤새면서 나가떨어진 일러스트쓰는 디자이너를 대신해서 지도에서 동그라미 삼각형을 이리로 저리로 옮겨붙여주는 일을; 크게는 참여 설계사무소들이 사용하는 GIS데이터를 총괄했고 (EDC의 담당자가 막판에 맛탱이가 가서 준 화일 못찾고 데이타 날려먹고 하는 바람에) 작게는 스테이튼 아일랜드 지역과 맨하탄 아랫동네 스터디를 했다. “내가 뭐했나”하는 부분은 나중에 또 적도록 하겠다. 중요한 것은 나중에

그리고 뉴욕시의 향후 (도시) 계획은 모두 Planyc (Plannyc가 아니라 planyc입니다.) 라는 책에 담겨 있다. 여기에는 단순히 도시 계획 뿐 아니라 앞으로의 경제 정책이라는 것도 함께 담겨 있고, 블룸버그 형이 재직하는 동안 모든 정책의 목표였고 시장이 바뀐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 형이 자랑하는 치적 중의 하나이다. SIRR report는 Planyc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Planyc 역시 SIRR report를 기반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수해 복구를 하는 것을 넘어서 앞으로의 기상 이변에 대비해서 도시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 그럼 어떻게 돈을 더 벌 수 있을까에 대한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젝트의 결론을 말하자면 이렇다. 서론 다음에 결론이라니

  1. 우리는 물러나지 않는다. – 뉴욕시가 한평에 얼마냐.
  2. 앞으로 샌디보다 쎈 놈들이 더 자주 올 것이다. – 기후 변화에 대비합니다.
  3. 어떻게? – 자 전문가들 모여보세요. 전문가들: 저희도 노답입니다만… 방법은 스케일별로 토목/조경적인 접근, 건축적인 접근으로 구분되고, 주체에 따라 행정적인 접근인지, 금융적인 접근이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고 어떻게 해결할까?의 첫번째 출발점은 항상 당사자. 즉 지역 주민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고,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여기에 왜 이 놈의 수해복구라는 프로젝트가 몇년째 계속 되고 있는지, 왜 이 수해복구에 주목해야하는지 이유가 있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 및 이 회사 쿠퍼로버트슨에 들어온 날 한 일이 사이트 답사였다. 특히 피해가 심각했던 스테이튼 아일랜드의 남쪽 해변을 둘러보고 나의 결론은 “아 여기서 어떻게 살아. 그냥 여기는 공원같은 걸로 해놓고 주거 불가 지역으로 해야되는 것 아닌가.”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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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결론과 의구심은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지속됐었다. 그러나 이런 의구심은 마지막 날에서야 풀렸다. 2013년 7월 13일 SIRR 프로젝트를 마치는 날 약 한시간에 걸쳐 블룸버그 시장의 발표가 있었다. ((허리케인 샌디가 있었던게 2012년 10월이다. 9개월 걸려서 책한권 내놓는다고 하면 한국에선 뒤집어질;;))

Let me be clear. We are not going to abandon the waterfront. We are not going to leave the Rockaways or Coney Island or Staten Island’s South Shore. City cannot just rebuild what was there and hope for the best.We have to build smarter and stronger and more sustainable.
분명히 합시다. 우리는 우리의 워터프론트를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락어웨이즈와 코니아일랜드 혹은 스테이튼 아일랜드 남쪽 해안가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복구 하고 그냥 거기 앉아서 일이 잘되기를 바라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더 스마트하고 강력하며 더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 Mayor Pledges to Rebuild and Fortify Coast, NY Times.

To illustrate the futility of retreat, consider that within FEMA’s new 100-year flood maps there are more than 500 million square feet of New York City buildings – equivalent to the entire city of Minneapolis. These communities are home to almost 400,000 people and more than 270,000 jobs.
물러서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를 말씀드리죠. FEMA의 100년 주기 홍수 지도 안에는 5억 스퀘어피트 (4천6백만 제곱미터)의 뉴욕시 빌딩이 있습니다. – 미네아폴리스같은 도시 전체와 맞먹는 숫자지요. 이 지역은 거의 40만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고, 27만개의 직장이 있습니다.
– Mayor Bloomberg Presents The City’s Long-term Plan To Further Prepare For The Impacts Of A Changing Climate, Office of the Mayor

다시 말해, 피할래야 피할 범위가 너무 넓고 뉴욕시의 땅 1인치라도 돈으로 환산하면 절대 버릴 수가 없는 땅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뉴올리언즈의 복구와 다른 부분이 있다면 여기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다시 한번 블룸버그의 말을 빌리자면,

Think about what that means – just in financial terms: Sandy cost our City $19 billion in damages and lost economic activity. And we now forecast that a storm like Sandy could cost nearly five times that much by mid-century – around $90 billion.
이게 뭔소린가 하면, 돈으로만 얘기해보자구. 샌디 땜에 잃은 돈이 190억 달러(이천억원)야. 그리고 앞으로 샌디같은 놈이 대략 2050년 쯤 또 오면 그 액수가 900억쯤 될거라구.
– MAYOR BLOOMBERG DELIVERS ADDRESS ON SHAPING NEW YORK CITY’S FUTURE AFTER HURRICANE SANDY, New from the Blue Room

호미로 막을 거 가래로 막지 말자. 지금부터 준비합시다.가 이 프로젝트의 결론.

그럼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자는 건가? – 는 다음 포스팅에 계속. 아 힘들다. 다음 포스팅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복구

샌디 이후의 수해 복구에 대해서 자세히 좀 적어둬야지 하고는 여지껏 미루고 미루다 또 다른 수해 복구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게다가 한 후배가 난데없이 질문을 해서 어디서부터 이야기할 지를 모르겠으니, 찬찬히 내가 했던 일부터 짚어봐야겠다. 누군가는 이 과정을 쭉 꿰고 있을 지 모르겠지만, 워낙에 산발적으로 여기저기서 하고 있어서 어디서 누가 무얼 하고 있는지조차 따라 잡기가 힘들다. 거기서부터 사실 이게 그냥 수해복구가 아닌 것이기도 하다. 한가지 시작 전에 변명을 또 하자면, 결국 건축가의 입장에서는 프로젝트들을 바라보는데 혹은 참여하는데 한계가 있으니 내가 모르는 부분은 눈치껏 넘겨짚은 것임을 밝힌다. 아마도 이 포스팅은 몇번에 걸쳐서 이어 적어야할 것 같다.

우선 배경은, 당연히 왕태풍 샌디 Super Storm Sandy였다. 샌디 덕에 지금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샌디가 올 때 난 서울에 있었습니다;; 직접 겪지 못해서 당시의 일들을 전해 듣기만 하고, 사진만 보고는 막상 뉴욕에 왔더니 야 수해복구 프로젝트 하자. 네. 그래서 지금의 회사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네.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모르겠으니 일단 크게 프로젝트 이름들을 나열해두고 자세한 각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은 다음 포스팅으로 넘겨야겠다.

  1. SIRR, Special Initiative for Rebuilding and Resiliency – 뉴욕시에서 주관. 정확히는 NYCEDC, 뉴욕개발공사쯤 되려나 에서 진행함.

  2. NY Rising – 뉴욕주에서 주관

  3. Rebuild by Design – 연방정부, 정확히는 HUD (Housing and Urban Development) 우리로 치면 건설교통부같은데서 주관

그리고 다시 리부트된 following-up 프로젝트들도 줄줄이 적어보겠습니다. 아 이거 과연 내가 연재할 수 있을까.

팔월 구월

나중에 뭔 일이 있었나 기억을 잘하는 경우는 일기를 써두었거나 블로그를 써두었을 경우이다. 구지 그 일기나 블로그를 다시 읽어보지 않더라도 적어두면 잊지 않는다. 당연히 안적어두면 거의 다 까먹는다. 그리고 꼭 뭘 잊거나 / 잊지 않거나가 중요한 건 아니고, 일년쯤 지났을 때 아무것도 안한 기분이 들거나 / 들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무언가 적어두려고 한다. 이런 저런 노트를 꾸준히 사용하기도 하지만 꾸준히 잃어버리는 탓에 아이폰에 적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성에 차는 앱을 발견하기 힘들어서 이것 저것 옮겨다니다 보니 꾸준하지 못하게 된다. 꽤나 깔끔해서 데이원이라는 놈을 쓰다가 지금은 모멘트라는 것을 쓰기도 한다. 뭔가 다 되는 것 같지만 너무 너저분해서 에버노트는 설치 후 일주일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곤 한다.

팔월은 바빠서 사진도 별로 없고 글도 많지 않다. 샌프란시스코의 헌터스포인트/캔들스틱포인트라는 원래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야구장을 이전하고 새로 생기는 도시의 프로젝트를 마쳤다. 사실 워낙 장기 프로젝트라서 이미 마스터플랜은 나와서 계속 수정되고 있고, 그 부분의 스트리트스케이프 – 경관 계획 정도로 번역하면 될지 모르겠지만 많이 다르다. – 를 마쳤다. 건물 설계에 비유하자면 실시에 가까운 작업인데, 거짓말로 마스터플랜은 많이 그려봤지만 가로수의 위치와 가로등의 갯수까지 세서 실제로 견적을 내고, 사용될 벤치들의 스펙과 제품들의 가격까지 정리하는 일이었는데 만만치가 않았다. ‘미국식’으로 일한다는 게 어떤 건지 실감할 수 있던 좋은 경험이었다. 나무 하나 심는 도면 한장 내 맘대로 그리기가 쉽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일로 바보짓을 많이 했는데, 같이 일한 성실한 친구 마이크 덕에 – 덕이라기 보단 실질적인 진행은 마이크가 했다. – 최종 리포트를 제출했을 때 파트너들이 꽤나 칭찬을 해주었다.

그 와중에 송이하고 공모전을 하나 제출하였다. 상금이 많거나 뭘 짓거나 하는 공모전이 아니라, 글을 써야하는 공모전이어서 가볍게 해보자고 시작했는데, 모자란 영어에 게으름이 합쳐져서 막판에 꽤나 난리를 쳤다. 헐렁한 공모전이라 결과가 언제 나올지도 모르겠다.

뉴욕시의 수해복구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니 다른 수해복구가 기다리고 있다. 거의 6개월 가까이를 수해복구 관련 프로젝트들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선 좀 더 잘 적어둬야겠다. 단순히 수해복구 차원이라면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것이 아니지만, 적절한 이유에 적절히 대처하고 있는 듯 하다. 이 논리들을 한국 버전으로 치환하면 어떨까. 사대강은 아니겠지요. 샌디가 왔다간지 1년이 다되어갔는데, 여전히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고, 아직도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모두가 바쁘지만 그 와중에 끊임없이 묻고 답한다. 도면 한 장 그린 일 없지만 지난 몇년 간 했던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을 깨닫는 것 같다. 참. 자랑 아닌 자랑이라면, 최신 수해복구 프로젝트는 유명하신 왕건축가님들과 경쟁한다. 리빌드바이디자인

지난 프로젝트 동안 라이노를 (라이노답게) 사용할 일이 별로 없었는데도, 워낙 라이노질에 재미를 붙여놔서 괜히 피씨한대를 마련해서 남는 시간에 이런 저런 장난질을 치곤 했다. 특히나 그래스호퍼를 가지고 노는 재미는 쏠쏠하다. 원래 지금 회사는 거의 전통건축을 하시는 회사여서 어반 디자인 팀 외에는 백인 취향 99칸 부잣집 설계하는 분들이라 라이노라든지 스크립트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물론 레빗같은 경우엔 직접적으로 도면을 치는데 도움을 주니까 많이 도입을 한 모양인데, 디자인은 여전히 손으로 그리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도 다들 최신 유행에 뒤쳐지긴 싫어하는 모양인지 세미나를 어반디자인 팀에서 준비하기로 하였다. 어반디자인 팀이 절반 이상 컬럼비아 출신인데, 뭔가 선입견 – 컬럼비아 출신은 뭔가 똥도 디지털로 쌀 것 같아 – 은 미국애들도 마찬가지인지 우리팀으로 세미나 화살이 돌아왔다. 결국 돌고 돌아 밥도 디지탈로 먹는다고 믿는 사우스 코리안에게 책임이 돌아왔다. 그래서 집에 와서 라이노 켜보니 라이센스 익스파이어. 이걸 또 언제 새로 다운받아 깐단 말인가. 누가 정품 이런 거 협찬 좀 해주고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