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2002년 졸업 설계.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고 했다는 생각이 든다.그 때나 지금이나 상황이 주어지면 대응하는 방식은 비슷한 것 같다.

그나저나 어차피 직각으로 되어있는 것도 아닌데 모델에 모눈 종이는 뭐하러 붙여 놨을까. 졸업할 4학년이 다 되었는데도, 건물이란게 어떻게 생겨먹어야되는지조차 감이 없었던 것 같다. 도대체 학부에선 뭘 가르쳐주는거야. – 수업을 들어가란 말이다.

당시에 스튜디오에 있던 민성이형은 캠브리지에 가서 마법을 공부하고 있고, 중학교 동창이기까지 한 성문이는 아이아크를 거쳐 나보다 먼저 컬럼비아에 와서 M.Arch를 하고 있다. 중학교 대학교 유학 동창에 친구들도 없는 주제에 만나는 건 백만년에 한번쯤. 도서관에 가면 볼 수 있다. – 당연히 나랑 만나기 힘들다.

이제는 나름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안기. 그리고 아예 LA 시민이 되어버린 가능.

안기는 호주있다가 독일거쳐 지금은 또 로마에 가 있다고. 마일리지 장난 아니겠다.

송도 작업에 이어 호주 작업도 마치고 다시 하이에나처럼 일거리를 찾아 다시 뉴욕으로. 11월이면 또 뉴욕으로 와서 내 방에서 지낼 것 같다.

셋이 같이 뭘했다하면 각자의 힘을 모두 마이너스로 발휘하는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그나저나 AnL studio는 확실히 이름이 좀… 언젠가 잡지에도 소개된다던데 안기 (추한거) 사진 많이 있으니 연락주세요. 모자라면 또 찍어드릴 수도 있습니다. 맞춤형 포토그래퍼.

얼은 이 때 나 도와주러 왔다가 건축은 하면 안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런던에서 5성 호텔 요리사가 되었다. – 믿거나 말거나. – 호텔 요리가 지겨워서 시리얼과 버터밥을 먹는 허세를 부리고 있다.

그리고 잊지 않고 등장해주시는 이 분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무섭 명랑 89.

엇. 알고보니 앞에는 미나뤼도 있네.

졸작 때는 이렇게 선후배 친구 동생 모두 모여 안그래도 튼 거 얼른 접고 야식이나 먹으러 가자며 안되요 진도가… 따위를 지껄이면 새꺄 나도 졸업했어와 같은 감언이설로 자리를 털게 만들어 먹으면 반드시 잔다는 순대국집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보다 나은 작품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자리가 마련되곤 하였다.

당시 민재 모델. 아무리 생각해도 민재는 개그 건축 신동이야. 요즘에야 많이들 저런 걸 만든다지만, 난 당시에 저걸로 민재가 뭘 하려는 지도 몰랐어. 유리에 닭발이라니. 난 벽에 샤시로 빵빵이 창있는 게 이 세상에 다인줄 알았다. 유리만 있는 건물은 귀찮아서 도면 안친 건 줄 알았다.

당시 안기의 모델. 매스 모델이 내 본 모델보다 이뻤다. 그러고보니 디테일 / 매스 라는 단어 자체를 이 친구들이 하는 거 보고 배운 듯 하다. 4년간 배워야할 걸 마지막에 벼락치기로 배우고 졸업했다.

도대체 서현 선생님은 9년 전 사진을 20년전 사진으로 만들어버리셔. – 그 때는 머리가 좀 많으셨긴 하네. ㅎ

당시 졸작 본 모델. 추상과 구상의 미묘한 경계에 … 넌 언제쯤 건축할래 라는 게 항상 서현 선생님의 질문이었는데, 글쎼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언제쯤 하겠습니까.

그러고보니 이 가방은 지금도 쓰고 있다. 이게 사진찍을 당시에도 1년 지난 거였으니까 참 오래도 됐다. 별로 맘에 드는 건 아닌데, 여행갈 땐 막 넣을만큼 꾹꾹 쑤셔넣어도 되니까 꼭 찾게 된다. 가방도 좀 사줘야하는데 가방에 넣을 물건들부터 재정비하고.

저 난데없는 클래식은 학교 복도에 버려져 있던 걸 주워왔던 것. 부팅도 된다. 논현동집에서 전시용으로 보관.. 되다가 니자가 치워버렸다.

그러고보니 이 때 쓰고 있던 마우스는 지금도 잘 쓰고 있다. 로지텍은 명품이에욤. 이때 쓰던 디카는 캐논 익서스. 나름 처음 산 디카였고 니자랑 알바해서 커플로 마련했었던 카메라다. 나중에 재환이한테 넘겼었던 듯. 3-4년 후까지도 니자의 셀프 전용 카메라로 잘 사용되었다. 사실 찍는 내용물들은 오두막이나 익서스나 거기서 거기. 아유 앳된 옛날 마누라 마누라 옛날 사진. 근데 알고보면 피부는 지금이 더 좋은 듯. 돈이 좋아요.

지금 보니 당시에도 아이포토에 넣어서 키워드 태깅 다 해뒀었다. 참 착실하기도 하지. 요즘 좀 게을러졌어. 반성하고 정진하겠습니다.

건축을 묻다

arch-ask

선생님 새 책 나왔다. 제목에서 보이는 오야지 개그 센스는 연구실에 면면히 흐르는 학풍입니다. 요즘은 많이 잠잠해졌지만 다시한번 오야지 개그가 만발하길 바라고, 이에힘입어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와 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에 이은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길 바랍니다.

얼마전에 누군가와 얘기하다가 “서현씨”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는 살짝 발끈했었다. 내 선생 내가 뒷다마까는 거는 괜찮지만 남이 내 선생을 “씨”라고 부르는 것을 들으니 괜히 욱하더라. 그 사람이 무슨 욕한 것도 아니고 그냥 “씨”라고 했을 뿐인데. 따지고 보면, 남의 선생을 그 제자 앞에서 “씨”라고 부르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고, 그다지 악의를 담은 것도 아니었고, 나는 얼마나 예의바르다고.

ssahn.com

인맥건축의 대가 _;; 공구리군이 (난데없이) 찾아낸 서현 선생님. 안상수 블로그

예전에 블로그 열풍 불던 적에 만들어진 것을 봤었는데, 이 한쪽 눈 가리고 찍기 하나로 여태까지 하고 있었다니. 더 무서운 건 메뉴의 css가 뭔가 꼬인 모양인데 아직까지 처음 그대로. 처음처럼?

이석정 선생님도 발견. 이 분덕에 spacus군과 함께 도시과 학생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게 된 적이 있었다.

따지고보면 한국에서 이래저래 모르는 사람이 어딨나.

쿼티

타자기란 것이 미국에서 팔릴 때는 타자수를 함께 팔았다고 합니다. 즉 지체높으신 분들이 사용하는 하드웨어가 타자기였던 것이고 그러한 ‘하찮은 일’을 대신해주는 소프트웨어가 타자수였던 것이죠. 그래서 타자기 회사는 더 좋은 하드웨어 개발도 중요했지만 더 좋은 소프트웨어 개발도 했어야했기에 타자수 경진대회같은 것도 했다고 해요…

하여튼 당시의 타자기는 독수리타법을 사용한 것이었고 그 먹지 위에 내려치는 해머가 최대한 겹치지 않게 만들어져야 했으므로 동시에 같은 글자를 칠 때 그 자판을 최대한 가까이 둬서 시간을 벌 수 있는 형태가 되었답니다. 이것이 ‘QWERTY’자판이라고 하는거래요. 하지만 열손가락을 다 사용한 타이핑의 경우엔 이것이 여간 비효율적이지 않습니다. 당장 e, r만 보세요. 영어에서 그렇게 많이 쓰는 애들을 딱 붙여뒀으니… 그래서 드보락 자판이란게 나왔답니다. 열손가락을 사용하는, 즉 현대의 컴터 키보드에 어울리는 자판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모든 타자수는 QWERTY자판에 익숙해 있으니 계속 QWERTY자판만을 썼고 모든 타자기 회사는 타자수들이 QWERTY자판만 치니까 QWERTY자판만 만들고… 회사에서 QWERTY자판만 만드니 타자수들은 계속 QWERTY자판만을 치고…

결국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이지만 이렇게 사회적 관성에 의해 – 사회의 요구와 환경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합리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요? …

라고 저희 교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