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ji

Huji test
Huji cam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뭔가 그냥 찜찜하고 그런 디자인이 있었습니다. 그냥 이렇지도 저렇지도 않아서 그런가보다 해서 ‘좋음의 정도’가 (0)인 것이 아니라, 많은 (+)가 있지만 (-)가 너무 커서 대차대조로 (0)이 되니 이걸 좋다고 말해야할지 싫다고 말해야할 지 알 수 없는 그런 애증의 디자인 말이죠. (긍정적인 인간이라면 (+)를 보고 좋다고 말하겠지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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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ji cam

사실, 개인적으로 이런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싫은 디자인을 보면서 느끼는 불편함은 내가 나의 미움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자책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어르신A가 다른 어르신B를 비평하는 글에서 그 이유를 찾았고, 참 속이 편해졌습니다. 그 분의 글의 요지는, 기억나는대로 축약하자면, ‘B의 건축은 페티쉬이다. 페티쉬는 논리가 없고 취향만 남은 것을 말한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렵게 쓰인 글이라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디자인의 언어가 무엇인가 알 수 있었습니다.


Huji cam

말그대로 디자인 언어라고 비유하자면,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은, 영업사원을 만나거나 전화 응대를 받을 때 ‘정보값이 0에 수렴되는’ 인사성 멘트,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상관없이 반복되는 언어. 혹은 좋지 않은 말버릇과 같은 것이었던 것이죠. 저 어르신 A의 글을 읽은 이후로 개인적으로 버릇이 논리적인 구성을 거치면 ‘스타일’, 논리적인 검증을 거치지 못한 버릇은 ‘페티쉬’라고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페티쉬의 문제는 비논리성에 멈추지 않습니다. 페티쉬란 그 자체로 목적이 되기 때문에, 재귀적이라고 하던가요, 종종 디자인의 많은 것을 희생하게 만들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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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ji cam

재미있는 지점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오히려 그 글을 읽고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알게되니, 어르신 A의 비평과는 반대로 어르신 B의 디자인이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불편했던 부분을 ‘페티쉬’라는 이름으로 명확하게 분리하고 나니, 다른 좋은 부분들이 떠오르면서, 나의 호불호 대차대조를 잘 정리하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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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ji cam

범람하는 SNS의 사진에서 ‘필름룩’도 이런 페티쉬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구현하고자 하는 사진의 목표에서 ‘사이드 이펙트’로 나타난, 아날로그 시절의 기술적 한계가 큰 논리적인 검증없이 단순한 향수로, 혹은 관습으로 포장되어 본질을 흐려버리는 현상인 것이라고 여겼지요. 하지만 유행이란 언제나 극단까지 뭔가를 밀고 가서 카세트 테이프가 재발매된다든지, 악착같이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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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ji cam

그리고 다시 한번 나의 실수를 깨닫습니다. 그럼 페티쉬여서 나쁜 건 뭔가. 나팔바지 유행할 때 나팔바지 한번 입을 수 있지. 일회용 카메라 앱 누가 만들었다면 한번 다운 받아서 한번 테스트해볼 수도 있지. 유행이라니 한번 다운받아서 해볼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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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ji cam

그런 이유로 이런 쓸데없는 필름룩 앱들, 더 심각하게 일회용카메라 흉내내는 앱들을 항상 테스트해봅니다. 나름 진지한 단계까지 갔다가 스큐어모피즘의 몰락과 함께 사라진 Hipstamatic처럼 쓰잘~때~기없는 앱들말이죠.

2019-05-02 12:47:46.969

구닥Gudak (roll #1, roll #2, roll #3)은 그나마 ‘아날로그 감성’ 맞춘다고 시간과 장수의 제한 같은 재미있는 요소라도 넣었는데, 작년에 뉴욕 매거진까지 소개되었다는 (What’s the Deal With Huji Cam, This Year’s Trendiest Photo App?) 후지Huji (Apple app store Huji Cam)의 경우는 그다지 재미도 없고, 앱의 만듦새가 너무 별로라서 그냥 여기까지 써보고 말게 되었습니다.

ㅇㅇ는 국력

  • 건축의 수준은 국력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질좋은 자재, 법규의 일관성. 디자이너에 대한 클라이언트의 여유. 이건 단순히 흉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부동산 시장에서의 바잉파워와 인구를 동원한 구매력, 그리고 사회안전망,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출판의 수준은 국력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 앱의 수준은 국력이라고 ….
  • 드라마의 수준은…

저 위의 트윗을 비웃으려고 쓴 글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찬성하기 때문에 다시 옮겨 적었다.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는 차고 넘치도록 많은 인프라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어서는 안되고, 위대한 영도자가 그 길을 닦아주길 기다려서는 안된다. 나쁜 버터로라도 무언가 만들어야 하지만 좋은 버터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좋은 도시를 보고 마음에 새기되, 좋은 건물을 그대로 만들려는 유혹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한국에 있어서만 생기는 문제는 아니고 미국에 있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니다.

선거, 디자인

한국 정치가 너무 재밌어서 요즘은 넷플릭스도 안본다. 맨날 한국 뉴스만 보니 눈에도 선거 관련된 디자인만 보인다.

프리젠테이션
대선 후보 토론에서 각 후보가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약간의 직업병이 발동하여 화면을 봤다. 가장 간극이 큰 두 피티는 문재인 후보와 홍준표 후보의 피티화면이었다. 문재인의 피티는 디자이너들이 한땀한땀 템플릿 디자인과 Bullet point와 장평 자간까지 잘 했고, 홍준표는 감성 사진에 뻘건 글씨 팍팍. 글쎄. 여기 학교도 아니고 디자이너들이 모여있는 것도 아닌데, 문재인 쪽 디자이너들은 일을 하다만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예쁜 피티화면까지 내부적으로 회의할 때 쓰고, 그게 홍준표 수준으로 단순 무식하게 변환되는 과정을 더 거쳤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포스터
손혜원 의원 무척 좋아한다. XX천재 어쩌구 하는 류를 싫어하고, ‘파격’ 혹은 ‘기존의 상식을 벗어난’ 어쩌구라고 보도되는 디자인을 매우 매우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포스터 별로 맘에 안들고, 안철수 포스터 이 정도면 멀쩡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문재인 포스터에 대한 기사에서 누가 폰트를 했고, 숫자의 컬러는 누가 정했고, 뽀샵 안했고 등등의 구질 구질한 설명이 덧붙여지는 걸 보니 더욱더 ‘아유. 똑똑한 병신 디자이너들.’ 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안철수 포스터는 당선에 도움은 안되지만 두고 두고 회자될 아이템이라는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 같은 운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의 완성도는 없지만.

한쪽은 전문가가 너무 많이 모여서 이도 저도 아닌 결과가 나온 것이고, 한쪽은 바보들이 모여있는데 전문가라 불리우는 사람 하나가 나타나서 어어어어 이래도 되는 건가.. 어어어어…. 뒷걸음치다가 쥐잡은 경우같다. 포스터에 정당이름 뺀거는 법적인 이유가 걸린다면 모르겠는데 그다지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거 넣고 저거 넣어야하고 하다가 망하는 포스터 한두번 봤나. 뺄 수 있는 한 빼고 잘 뽑은 건데, 트집잡으려고 잡는 거지 뭐. 그리고 포토샵을 한 것에 대해 진정성을 논하는 것도 너무 치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안철수쪽에서 디자인을 잘하고 있다는 건 절대로 아니다. 타인의 선거 유세를 해주고 있다는 병신 현수막만드신 분, 아무래도 포트폴리오에서 이번 건은 넣지 않으실 것 같다.

https://twitter.com/gama58th/status/853993054214148097

그 외
웹캠페인은 그나마 잘 했다. 문측 외에 다른 데는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선거 공약 쇼핑몰과 내가 대통령이라면 포스터만들기 참 맘에 든다.

디자인이란

디자이너가 말하는 디자인의 정의는 유동적이기 마련이다.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에 대해 정의한다고 하는 것은 말그대로 학술적이며 우주적인 정의를 고찰하거나 논문을 쓰려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란 이런 것이어야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장한다는 것은 의도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매트릭스에서 오라클 할머니가 예언을 하는 것은 난데없이 그냥 팩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었다. 니오가 행동하기를 의도했기 때문에 예언의 전부가 아닌 일부를 일정한 시점에 전달했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사전적인 정의가 아닌 의도를 담은 정의를 외치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 의도는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게 된다. 디자인사에 길이 남을 오세훈의 정책들 ((이는 꼭 서울시의 정책 뿐 아니라 5세훈 정책 덕에 불거진 디자인에 대한 많은 담론들을 퉁쳐서 말이다.)) 이후에 2011년 디자인의 정의란 ‘디자인은 이쁘게 하는 게 아니다.’ 로 귀결되는 듯 하다. 그것이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전부가 아니라 하더라도, 유동적일 수 밖에 없는 정의를 락걸어주는 시점이 있다면, 이 시점에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은 모두 부정적인 정의 ((이런 걸 뭔가 유식한 말로 ‘정의’하던데)) – 이것은 디자인이 아니다.- 로 밖에 내릴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정도

디자인이란 행위에 대해서 ‘어느정도’라는 건 있을 수가 없다.
잘했건 못했건 ‘한 것’이다.

죽여버리고 싶은 문장 – ‘디자인적인 요소의 가미’

디자인.숫자.서울

서울에 대한 조사를 하다보면 [[1. 박사님이 아닌 수준에서]] , 서울은 이모저모로 참 멀쩡하고, 지속가능한 [[2. 지속가능한, sustainable이랑 녹색이랑 상관없다.]] 도시 축에 낀다. 객관적인 사실들 – 숫자 – 만을 놓고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정량적인 거짓을 정성적인 진실로 증명하는 것이 디자인이라고 한다면, 디자이너가 살 땅이 못된다는 서울에 디자인은 정말로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디자인을 다시 숫자로 번역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겠다.

인정 사정

아니 한국의 아파트는 왜 다 그 모냥입니까
– 나름 사정이 있어요. 알고보면 … (쳇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역시 아파트를 안해본 애들은… )

아니 컬럼비아 대학교의 디자인은 왜 다 그 모냥입니까
– 나름 사정이 있어요. 알고보면 … (쳇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아니 아이폰의 수신율은 왜 다 그 모냥입니까
– 나름 사정이 있어요. 알고보면 …

아니 삼성의 스마트폰은 왜 다 그 모냥입니까
– 나름 사정이 있긴 뭐가 있어.
– 고로 이 케이스는 디자인이라고 하기도 좀 뭐한 경우로구나

나름 사정은 당신 사정이고. 인정 사정 볼 것 없는 게 디자인이 아닌가 싶은 요즘. 벽돌아 벽돌아 너는 뭐가 되고 싶기 전에 줄이나 맞춰라.

디자인 혐오증

결국 오세훈 덕분에 모두가 ‘디자인’이라는 말만 들어가도 ‘하지마’ 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 디자인 새마을 운동. ((via Pengdo’s me1day))

세종로를 개판으로 만들었느냐 동대문의 기억을 지웠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도시라는 단어에 대한, 디자인이라는 단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망쳐놨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단어만 금칙어만들기도 힘들 것을, 도시 디자인이란 말에 대한 인식은 곱절로 망쳐주셨다. MB처럼 하나의 프로젝트만으로 삽질했으면 논란의 여지라도 있을텐데, 오세훈은 오랜 시간 건축계에서 중요하게 다뤄왔던 많은 프로젝트들을 ((건축과 학생들의 단골 졸작사이트들을!)) 모두다 건드려서 이제 그 논의들에 대한 논쟁의 여지마저 없애버렸다. 야. 해봐야 오세훈이야. 텄어.

결국 ‘도시를 향한 조형적 피해의식이 가득한 엔지니어와 엔지니어링의 철학이 전무한 시각디자이너들 사이의 진공상태’ ((4대강보 디자인, 서현))는 오세훈이 새로운 조감도를 꺼내들 때마다 풍선에 바람을 불듯 부풀어 올랐고, 그 커다란 진공 상태만을 서울 시민들은 디자인이란 이름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녹색 혐오증은 아직 진행 중.

2009년 10월 29일

2009년 10월 27일

  • 플리커에 사진 이외엔 올리지 않았었는데, 숙제 제출을 위해 렌더링한 걸 올리다보니 작업과정데이타라고 할만한 것들도 다 올려버리게 되었다. 이런 것들을 잘 정리하는 방법은 없을까나.(flickr) [ 2009-10-27 12:20:09 ]
  • 선생한테 (그룹이) 잘보여서 학부 크리틱에 다녀왔다. 리서치는 얼마나 디자인은 얼마나라는 질문에 데이타를 찾는 것만이 리서치가 아니며 리서치를 정리하는 것도 디자인의 일부이니, 데이타가 없다는 것도 디자인의 일부라고 구라쳐줬다. 알고보니 우리 그룹에게 하는 말이었다.(데이타 그만 찾자 얘들아) [ 2009-10-27 12:27:31 ]
  • 젤리 먹다 금박은거 떨어졌다. 한국 가려면 멀었는데 제길.(이게 무슨 젤리야) [ 2009-10-27 21:23:00 ]

이 글은 작호2.0님의 2009년 10월 27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10월 20일

  • 같은 밥먹고 같은 똥싸야 좋은 디자인이 나온다. 나도 디자인 영혼설을 믿는다. 맨날 집에도 못가고 붙잡혀서 억지로 밥을 같이 먹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런 경우는 같은 밥 먹어도 다른 똥싸기 마련.(디자인) [ 2009-10-20 01:40:01 ]
  • (서울의) 역사적 배경 – (시장의 요구 / 제도적 규정) – (주거 양식 / 도시 조직의 형성), 디자인의 패러매터가 (시장의 요구 / 제도적 규정)에 있다고 전제하고, 현재 도시의 새로운 요구에 대응해 어떤 변수를 조작할 수 있는지, 그러면 사는게 좀 나아질런지.(리차드 플런즈 숙제의 스테이트먼트 요약하면 한국 아파트 텃어요 법규를 바꾸면 좀 나을까요?) [ 2009-10-20 04:41:59 ]
  • 매직 마우스. 아 독한 놈들(독한 디자인) [ 2009-10-20 22:18:42 ]

2009년 10월 14일

  • 꼬르뷔제는 정말 마르지 않는 떡밥이다.(꼬르뷔제 싫어)2009-10-14 03:13:15
  • 세계 경제가 한번도 (-)를 대비하지 않은 것처럼, 디자인도 확장만을 고려했지 축소를 고려한 디자인은 없었던 것 같다. 클라이언트에게 아 내년이면 여기 망할 테니 거기에 대비해 이런 디자인을…. 이라고 말하는 디자이너라니. ㅋㅋ(shrinking city)2009-10-14 09:36:23

세종대왕

위키피디아(영문) Maya Lin에서 저질 번역

mayalinsubmissionjpg1981년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를 위한 공공 디자인 공모전에 21세의 학부생 린이 1420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선하였다. 58253명의 전사한 참전 용사의 이름이 새겨진 검은 돌벽은 1982년 10월 완공되었고, 같은 해 10월 13일에 봉헌되었다. 화강암에 V자 모양의 벽은 한쪽은 링컨 기념관을 향하고 있고 다른쪽은 워싱턴 기념비를 향하고 있다.

린의 개념은 땅에 개구부 혹은 상처를 새겨 전몰 용사의 엄숙함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디자인은 처음엔 기존의 전쟁 기념관에겐 파격적인 것인터라 논쟁의 도마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 디자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또한 린이 아시아 출신이라는 것도 트집잡았다. 그러나, 이 기념비는 이후 베트남 참전 용사 가족들에게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고, 매일 그들의 기억에 남는 유품과 기념품들을 남겨두는 곳이 되었다.

린은 만약 그 공모전이 “무기명”이 아니었다면, 이름대신 숫자로 제출하지 않았다면. “절대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린은 미국 의회에서까지 자신의 디자인을 지키려했고, 결국 타협안에 이르게 되었다. 청동 군인 군상과 미국 국기가 기념비의 한쪽 끝에 놓이게 되었다.

1981년 ((81년생이 서른을 앞두고 있다.)) 에 기념비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미국스러운 질떨어지는 논쟁 ((베테랑분들 등장해주시니)) 이고, 결국 미국스럽게 타협을 하게 된다. 내 성격상 마야 린같은 심오한 디자인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리얼리스틱한 동상을 보고 유치하다고 생각하지만도 않는다. 또 시대가 시대이지 않은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 용사들의 기념비가 땅속으로!’라는 사람들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이 지하로 들어간다고 징징대던 사람들 또한 떠올라주신다.)) 과 추상성을 이야기하는 디자이너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라는 것. Continue reading 세종대왕

coalface

나는 의외로 세수를 자주 한다. (꽤나 깔끔을 떠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만약 세수를 하지 않으면 개기름이 눈에 들어가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아프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이 아픔의 과정과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도 애매하다.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뛰쳐나가 세수를 해야하는 장면을 남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면, 급해 죽겠는데 왜 그런지 설명해야되는 상황을 피하려면, 자주 세수를 할 수 밖에 없다.

이 정도 강력한 개기름 분출력을 갖다보니 비누 역시 강하게 대응해줘야하는데, 이제껏 만나본 비누 중에 가장 상쾌하게 개기름을 제거해주는 비누가 바로 이 Coal face. 니자랑 난 숯비누라고 부른다. 참 신기하게 개기름은 완전히 제거되면서 땡기는 일은 없다. 물론 비싸기도 비싸다. 지금 쓰는 건 런던갔을 때 한국러쉬 반값이길래 왕창 샀던 것들. 이제 하나 남았다.

Lush Coal Face

그런데 그 무엇보다도 이 비누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모양. 보통의 비누는 네모낳게 시작해서 점점 둥글 둥글 맥아리가 없어진다. 그런데 이 녀석은 신기하게도 가운데가 홀쭉해지면서  미묘한 모양새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재미없게 대칭의 모양새로 사라져가는게 아니라 처음의 비대칭이 심해지기도 하고 달라지기도 하면서 끝까지 멋지게 사라져가며, 3D프로그램에서 일부러 vertex 당겨서는 절대로 못만들 모양새가 나오곤 한다.

컬러 역시 미묘한 블랙이라 잘 보고 있으면 흰색거품과 함께 대리석 덩어리를 기분좋게 갈아둔 듯 하다. 전에 니자가 자동차 컬러 돌리는 작업을 하면서 색과 재질의 중간 어디쯤의 속성에 대해 얘기를 했었는데, 이 비누의 까만색 역시 그냥 까만색이라고 하기 어려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난 그냥 퉁쳐서 색깊이라고 부르는데, 마치 기타에서 ‘톤’처럼 정말 멋진 색깊이를 가진 물체는 그냥 돌맹이만 되도 멋지다. 너무 멋진 걸 보면 가끔 한입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걸 꾹 참고 세수만 한다. 세수만 하기에도 비싸니까.

2008년 12월 9일

이 글은 작호2.0님의 2008년 12월 7일에서 2008년 12월 9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petitinvention

게으름과 뻘짓, 두 축을 일생의 과업이라 믿었건만, 이런 초천재 흉아가 있었을 줄이야.
나는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전혀 필요없음의 미학.

pinball1.jpg

전혀 쓸모없음.
Not practical at all. Just for having fun playing with the files on your desktop. : Gravity on desktop

의자에서 일어나기도 귀찮으신 분들을 위해
These are for people who feel even bothered just to stand up from your chair, grab the mess and put it away. : Bookshelves for Super-Lazy People (like me)

게다가 잘 꺼먹기도 하셔서

The Ball’s in My Court? I Was Waiting for Your Answer!That happens very often, doesn’t it? Then why not visually check who’s turn to answer and how many answers are on hold in your Mail app?

거기에 이 형 유머가 예술, Don’t Leave Your Trash for Long
그런데 CG는 왜이리 깔끔하셔. Just a Sketch: Mobile Phone 그리고  Calendar Desktop Wallpapers.

via ironyjk‘s me2day

visual2

비쥬얼입니까 리얼리티입니까

디자인어에게는 매 프로젝트마다 부딪혀야하는 당연한 문제. 폼이냐 펑션이냐. 뭐 이런 것들. 많은 수련끝에 아, 이 두가지가 다른 문제가 아니에요. 이 둘의 합일이야말로 마스터피스. 라는 깨닳음을 얻은 수많은 뒤자인어흉아들의 조언과 미숙한 깨닳음이 있었지만 말이지요. 이상계의 존재를 믿사옵니다. 피스.

그런데 회사에서. 단박에 끝내야하는 2-3주짜리 사업성 검토류의 일에서는 이 충돌이 매우 미묘하여, 그 수위를 조절해야하는 일이 프로젝트의 퀄리티와 삶의 퀄리티를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만. 이 경우 클라이언트의 심중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짧은 시간안에 제대로 이루어져야하는데, 그 선을 정확히 파악하는 하는 것은 로또 번호 맞추기….보다 어렵다. 대부분은 클라이언트도 자신도 잘 모르거덩욤. 더더군다나 시간이 길어지고 액수가 커지고 등등. 일이 복잡해지면 그 판단을 할 지점도 많아지고 정도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펼쳐지니 ….

나도 모르게 드래프트에 있었던, 이 일 할때 적었던 글인데, 뭐 무슨 일을 해도 그 마음의 상태가 틀리지 않군화.

하루 종일 회의 회의 회의. 시지프스산에 돌맹이를 두고 균형을 잡으려니 삽질 삽질 삽질.

깔라트라바

Santiago Calatrava. 아주 괴물같은 거 잘해주시는 너무 멋진 형이시다. 근데 이 형이 이번에 WTC (리베스킨트형이 설계한) 앞에 있는 지하철 역사를 디자인하셨는데…architectural record의 기사 척보면 딱 날개펴기 직전의 새모양이다. 이 설명 또한 예술이다.

The movement also has symbolic meaning, he said, enabling the building to open like the wings of a bird or a phoenix rising from the ashes.

매년 9월 11일이 되면 이 전 참사의 자리에 그림자가 하나도 안생기도록 설계된 리베스킨트의 WTC 사이에 빛이 내려쬐면서 재 속에서 부활한다는 불사조가 날개를 펴는 형상이라! 너무 멋진 형들의 콤비 플레이 아닌가.

근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건 개구라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른 작품이라는 밀워키 아트 뮤지엄이다. 이것도 저 지붕이 펴지면 (정말 날개 펴진다 -0-;;) 날아가는 새다. 사실 깔라뜨라바 형의 작품은 대부분 새처럼 생겼다. 그게 꼭 새를 표현하라고 한건가? 아니. 아니다. 절대로 상암 경기장은 방패연으로 만든거 아니고 잠실 올림픽 경기장은 조선백자 모양으로 만든거 아니다. 왜 그런 구라를 치냐면. 그렇게 말해줘야 이해해주는 클라이언트 탓이다. 클라이언트 무식한 덕에 저런 무식한 해석을 하는거다.

얼마전에 번호판 및 축구 선수 유니폼 파동 -_-;; 이 있었는데. 번호판 구린 건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언제부터 전국민이 디자인 공부들은 하셨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