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디자인

한국 정치가 너무 재밌어서 요즘은 넷플릭스도 안본다. 맨날 한국 뉴스만 보니 눈에도 선거 관련된 디자인만 보인다.

프리젠테이션
대선 후보 토론에서 각 후보가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약간의 직업병이 발동하여 화면을 봤다. 가장 간극이 큰 두 피티는 문재인 후보와 홍준표 후보의 피티화면이었다. 문재인의 피티는 디자이너들이 한땀한땀 템플릿 디자인과 Bullet point와 장평 자간까지 잘 했고, 홍준표는 감성 사진에 뻘건 글씨 팍팍. 글쎄. 여기 학교도 아니고 디자이너들이 모여있는 것도 아닌데, 문재인 쪽 디자이너들은 일을 하다만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예쁜 피티화면까지 내부적으로 회의할 때 쓰고, 그게 홍준표 수준으로 단순 무식하게 변환되는 과정을 더 거쳤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포스터
손혜원 의원 무척 좋아한다. XX천재 어쩌구 하는 류를 싫어하고, ‘파격’ 혹은 ‘기존의 상식을 벗어난’ 어쩌구라고 보도되는 디자인을 매우 매우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포스터 별로 맘에 안들고, 안철수 포스터 이 정도면 멀쩡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문재인 포스터에 대한 기사에서 누가 폰트를 했고, 숫자의 컬러는 누가 정했고, 뽀샵 안했고 등등의 구질 구질한 설명이 덧붙여지는 걸 보니 더욱더 ‘아유. 똑똑한 병신 디자이너들.’ 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안철수 포스터는 당선에 도움은 안되지만 두고 두고 회자될 아이템이라는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 같은 운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의 완성도는 없지만.

한쪽은 전문가가 너무 많이 모여서 이도 저도 아닌 결과가 나온 것이고, 한쪽은 바보들이 모여있는데 전문가라 불리우는 사람 하나가 나타나서 어어어어 이래도 되는 건가.. 어어어어…. 뒷걸음치다가 쥐잡은 경우같다. 포스터에 정당이름 뺀거는 법적인 이유가 걸린다면 모르겠는데 그다지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거 넣고 저거 넣어야하고 하다가 망하는 포스터 한두번 봤나. 뺄 수 있는 한 빼고 잘 뽑은 건데, 트집잡으려고 잡는 거지 뭐. 그리고 포토샵을 한 것에 대해 진정성을 논하는 것도 너무 치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안철수쪽에서 디자인을 잘하고 있다는 건 절대로 아니다. 타인의 선거 유세를 해주고 있다는 병신 현수막만드신 분, 아무래도 포트폴리오에서 이번 건은 넣지 않으실 것 같다.

그 외
웹캠페인은 그나마 잘 했다. 문측 외에 다른 데는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선거 공약 쇼핑몰과 내가 대통령이라면 포스터만들기 참 맘에 든다.

디자인이란

디자이너가 말하는 디자인의 정의는 유동적이기 마련이다.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에 대해 정의한다고 하는 것은 말그대로 학술적이며 우주적인 정의를 고찰하거나 논문을 쓰려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란 이런 것이어야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장한다는 것은 의도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매트릭스에서 오라클 할머니가 예언을 하는 것은 난데없이 그냥 팩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었다. 니오가 행동하기를 의도했기 때문에 예언의 전부가 아닌 일부를 일정한 시점에 전달했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사전적인 정의가 아닌 의도를 담은 정의를 외치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 의도는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게 된다. 디자인사에 길이 남을 오세훈의 정책들 ((이는 꼭 서울시의 정책 뿐 아니라 5세훈 정책 덕에 불거진 디자인에 대한 많은 담론들을 퉁쳐서 말이다.)) 이후에 2011년 디자인의 정의란 ‘디자인은 이쁘게 하는 게 아니다.’ 로 귀결되는 듯 하다. 그것이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전부가 아니라 하더라도, 유동적일 수 밖에 없는 정의를 락걸어주는 시점이 있다면, 이 시점에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은 모두 부정적인 정의 ((이런 걸 뭔가 유식한 말로 ‘정의’하던데)) – 이것은 디자인이 아니다.- 로 밖에 내릴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정도

디자인이란 행위에 대해서 ‘어느정도’라는 건 있을 수가 없다.
잘했건 못했건 ‘한 것’이다.

죽여버리고 싶은 문장 – ‘디자인적인 요소의 가미’

디자인.숫자.서울

서울에 대한 조사를 하다보면 [[1. 박사님이 아닌 수준에서]] , 서울은 이모저모로 참 멀쩡하고, 지속가능한 [[2. 지속가능한, sustainable이랑 녹색이랑 상관없다.]] 도시 축에 낀다. 객관적인 사실들 – 숫자 – 만을 놓고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정량적인 거짓을 정성적인 진실로 증명하는 것이 디자인이라고 한다면, 디자이너가 살 땅이 못된다는 서울에 디자인은 정말로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디자인을 다시 숫자로 번역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겠다.

인정 사정

아니 한국의 아파트는 왜 다 그 모냥입니까
– 나름 사정이 있어요. 알고보면 … (쳇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역시 아파트를 안해본 애들은… )

아니 컬럼비아 대학교의 디자인은 왜 다 그 모냥입니까
– 나름 사정이 있어요. 알고보면 … (쳇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아니 아이폰의 수신율은 왜 다 그 모냥입니까
– 나름 사정이 있어요. 알고보면 …

아니 삼성의 스마트폰은 왜 다 그 모냥입니까
– 나름 사정이 있긴 뭐가 있어.
– 고로 이 케이스는 디자인이라고 하기도 좀 뭐한 경우로구나

나름 사정은 당신 사정이고. 인정 사정 볼 것 없는 게 디자인이 아닌가 싶은 요즘. 벽돌아 벽돌아 너는 뭐가 되고 싶기 전에 줄이나 맞춰라.

디자인 혐오증

결국 오세훈 덕분에 모두가 ‘디자인’이라는 말만 들어가도 ‘하지마’ 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 디자인 새마을 운동. ((via Pengdo’s me1day))

세종로를 개판으로 만들었느냐 동대문의 기억을 지웠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도시라는 단어에 대한, 디자인이라는 단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망쳐놨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단어만 금칙어만들기도 힘들 것을, 도시 디자인이란 말에 대한 인식은 곱절로 망쳐주셨다. MB처럼 하나의 프로젝트만으로 삽질했으면 논란의 여지라도 있을텐데, 오세훈은 오랜 시간 건축계에서 중요하게 다뤄왔던 많은 프로젝트들을 ((건축과 학생들의 단골 졸작사이트들을!)) 모두다 건드려서 이제 그 논의들에 대한 논쟁의 여지마저 없애버렸다. 야. 해봐야 오세훈이야. 텄어.

결국 ‘도시를 향한 조형적 피해의식이 가득한 엔지니어와 엔지니어링의 철학이 전무한 시각디자이너들 사이의 진공상태’ ((4대강보 디자인, 서현))는 오세훈이 새로운 조감도를 꺼내들 때마다 풍선에 바람을 불듯 부풀어 올랐고, 그 커다란 진공 상태만을 서울 시민들은 디자인이란 이름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녹색 혐오증은 아직 진행 중.

세종대왕

위키피디아(영문) Maya Lin에서 저질 번역

mayalinsubmissionjpg1981년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를 위한 공공 디자인 공모전에 21세의 학부생 린이 1420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선하였다. 58253명의 전사한 참전 용사의 이름이 새겨진 검은 돌벽은 1982년 10월 완공되었고, 같은 해 10월 13일에 봉헌되었다. 화강암에 V자 모양의 벽은 한쪽은 링컨 기념관을 향하고 있고 다른쪽은 워싱턴 기념비를 향하고 있다.

린의 개념은 땅에 개구부 혹은 상처를 새겨 전몰 용사의 엄숙함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디자인은 처음엔 기존의 전쟁 기념관에겐 파격적인 것인터라 논쟁의 도마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 디자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또한 린이 아시아 출신이라는 것도 트집잡았다. 그러나, 이 기념비는 이후 베트남 참전 용사 가족들에게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고, 매일 그들의 기억에 남는 유품과 기념품들을 남겨두는 곳이 되었다.

린은 만약 그 공모전이 “무기명”이 아니었다면, 이름대신 숫자로 제출하지 않았다면. “절대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린은 미국 의회에서까지 자신의 디자인을 지키려했고, 결국 타협안에 이르게 되었다. 청동 군인 군상과 미국 국기가 기념비의 한쪽 끝에 놓이게 되었다.

1981년 ((81년생이 서른을 앞두고 있다.)) 에 기념비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미국스러운 질떨어지는 논쟁 ((베테랑분들 등장해주시니)) 이고, 결국 미국스럽게 타협을 하게 된다. 내 성격상 마야 린같은 심오한 디자인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리얼리스틱한 동상을 보고 유치하다고 생각하지만도 않는다. 또 시대가 시대이지 않은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 용사들의 기념비가 땅속으로!’라는 사람들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이 지하로 들어간다고 징징대던 사람들 또한 떠올라주신다.)) 과 추상성을 이야기하는 디자이너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라는 것. Continue reading 세종대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