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란

디자이너가 말하는 디자인의 정의는 유동적이기 마련이다.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에 대해 정의한다고 하는 것은 말그대로 학술적이며 우주적인 정의를 고찰하거나 논문을 쓰려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란 이런 것이어야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장한다는 것은 의도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매트릭스에서 오라클 할머니가 예언을 하는 것은 난데없이 그냥 팩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었다. 니오가 행동하기를 의도했기 때문에 예언의 전부가 아닌 일부를 일정한 시점에 전달했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사전적인 정의가 아닌 의도를 담은 정의를 외치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 의도는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게 된다. 디자인사에 길이 남을 오세훈의 정책들 ((이는 꼭 서울시의 정책 뿐 아니라 5세훈 정책 덕에 불거진 디자인에 대한 많은 담론들을 퉁쳐서 말이다.)) 이후에 2011년 디자인의 정의란 ‘디자인은 이쁘게 하는 게 아니다.’ 로 귀결되는 듯 하다. 그것이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전부가 아니라 하더라도, 유동적일 수 밖에 없는 정의를 락걸어주는 시점이 있다면, 이 시점에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은 모두 부정적인 정의 ((이런 걸 뭔가 유식한 말로 ‘정의’하던데)) – 이것은 디자인이 아니다.- 로 밖에 내릴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정도

디자인이란 행위에 대해서 ‘어느정도’라는 건 있을 수가 없다.
잘했건 못했건 ‘한 것’이다.

죽여버리고 싶은 문장 – ‘디자인적인 요소의 가미’

디자인.숫자.서울

서울에 대한 조사를 하다보면 [[1. 박사님이 아닌 수준에서]] , 서울은 이모저모로 참 멀쩡하고, 지속가능한 [[2. 지속가능한, sustainable이랑 녹색이랑 상관없다.]] 도시 축에 낀다. 객관적인 사실들 – 숫자 – 만을 놓고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정량적인 거짓을 정성적인 진실로 증명하는 것이 디자인이라고 한다면, 디자이너가 살 땅이 못된다는 서울에 디자인은 정말로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디자인을 다시 숫자로 번역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겠다.

인정 사정

아니 한국의 아파트는 왜 다 그 모냥입니까
– 나름 사정이 있어요. 알고보면 … (쳇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역시 아파트를 안해본 애들은… )

아니 컬럼비아 대학교의 디자인은 왜 다 그 모냥입니까
– 나름 사정이 있어요. 알고보면 … (쳇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아니 아이폰의 수신율은 왜 다 그 모냥입니까
– 나름 사정이 있어요. 알고보면 …

아니 삼성의 스마트폰은 왜 다 그 모냥입니까
– 나름 사정이 있긴 뭐가 있어.
– 고로 이 케이스는 디자인이라고 하기도 좀 뭐한 경우로구나

나름 사정은 당신 사정이고. 인정 사정 볼 것 없는 게 디자인이 아닌가 싶은 요즘. 벽돌아 벽돌아 너는 뭐가 되고 싶기 전에 줄이나 맞춰라.

디자인 혐오증

결국 오세훈 덕분에 모두가 ‘디자인’이라는 말만 들어가도 ‘하지마’ 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 디자인 새마을 운동. ((via Pengdo’s me1day))

세종로를 개판으로 만들었느냐 동대문의 기억을 지웠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도시라는 단어에 대한, 디자인이라는 단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망쳐놨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단어만 금칙어만들기도 힘들 것을, 도시 디자인이란 말에 대한 인식은 곱절로 망쳐주셨다. MB처럼 하나의 프로젝트만으로 삽질했으면 논란의 여지라도 있을텐데, 오세훈은 오랜 시간 건축계에서 중요하게 다뤄왔던 많은 프로젝트들을 ((건축과 학생들의 단골 졸작사이트들을!)) 모두다 건드려서 이제 그 논의들에 대한 논쟁의 여지마저 없애버렸다. 야. 해봐야 오세훈이야. 텄어.

결국 ‘도시를 향한 조형적 피해의식이 가득한 엔지니어와 엔지니어링의 철학이 전무한 시각디자이너들 사이의 진공상태’ ((4대강보 디자인, 서현))는 오세훈이 새로운 조감도를 꺼내들 때마다 풍선에 바람을 불듯 부풀어 올랐고, 그 커다란 진공 상태만을 서울 시민들은 디자인이란 이름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녹색 혐오증은 아직 진행 중.

세종대왕

위키피디아(영문) Maya Lin에서 저질 번역

mayalinsubmissionjpg1981년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를 위한 공공 디자인 공모전에 21세의 학부생 린이 1420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선하였다. 58253명의 전사한 참전 용사의 이름이 새겨진 검은 돌벽은 1982년 10월 완공되었고, 같은 해 10월 13일에 봉헌되었다. 화강암에 V자 모양의 벽은 한쪽은 링컨 기념관을 향하고 있고 다른쪽은 워싱턴 기념비를 향하고 있다.

린의 개념은 땅에 개구부 혹은 상처를 새겨 전몰 용사의 엄숙함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디자인은 처음엔 기존의 전쟁 기념관에겐 파격적인 것인터라 논쟁의 도마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 디자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또한 린이 아시아 출신이라는 것도 트집잡았다. 그러나, 이 기념비는 이후 베트남 참전 용사 가족들에게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고, 매일 그들의 기억에 남는 유품과 기념품들을 남겨두는 곳이 되었다.

린은 만약 그 공모전이 “무기명”이 아니었다면, 이름대신 숫자로 제출하지 않았다면. “절대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린은 미국 의회에서까지 자신의 디자인을 지키려했고, 결국 타협안에 이르게 되었다. 청동 군인 군상과 미국 국기가 기념비의 한쪽 끝에 놓이게 되었다.

1981년 ((81년생이 서른을 앞두고 있다.)) 에 기념비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미국스러운 질떨어지는 논쟁 ((베테랑분들 등장해주시니)) 이고, 결국 미국스럽게 타협을 하게 된다. 내 성격상 마야 린같은 심오한 디자인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리얼리스틱한 동상을 보고 유치하다고 생각하지만도 않는다. 또 시대가 시대이지 않은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 용사들의 기념비가 땅속으로!’라는 사람들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이 지하로 들어간다고 징징대던 사람들 또한 떠올라주신다.)) 과 추상성을 이야기하는 디자이너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라는 것. Continue reading 세종대왕

coalface

나는 의외로 세수를 자주 한다. (꽤나 깔끔을 떠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만약 세수를 하지 않으면 개기름이 눈에 들어가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아프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이 아픔의 과정과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도 애매하다.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뛰쳐나가 세수를 해야하는 장면을 남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면, 급해 죽겠는데 왜 그런지 설명해야되는 상황을 피하려면, 자주 세수를 할 수 밖에 없다.

이 정도 강력한 개기름 분출력을 갖다보니 비누 역시 강하게 대응해줘야하는데, 이제껏 만나본 비누 중에 가장 상쾌하게 개기름을 제거해주는 비누가 바로 이 Coal face. 니자랑 난 숯비누라고 부른다. 참 신기하게 개기름은 완전히 제거되면서 땡기는 일은 없다. 물론 비싸기도 비싸다. 지금 쓰는 건 런던갔을 때 한국러쉬 반값이길래 왕창 샀던 것들. 이제 하나 남았다.

coal face

그런데 그 무엇보다도 이 비누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모양. 보통의 비누는 네모낳게 시작해서 점점 둥글 둥글 맥아리가 없어진다. 그런데 이 녀석은 신기하게도 가운데가 홀쭉해지면서  미묘한 모양새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재미없게 대칭의 모양새로 사라져가는게 아니라 처음의 비대칭이 심해지기도 하고 달라지기도 하면서 끝까지 멋지게 사라져가며, 3D프로그램에서 일부러 vertex 당겨서는 절대로 못만들 모양새가 나오곤 한다.

컬러 역시 미묘한 블랙이라 잘 보고 있으면 흰색거품과 함께 대리석 덩어리를 기분좋게 갈아둔 듯 하다. 전에 니자가 자동차 컬러 돌리는 작업을 하면서 색과 재질의 중간 어디쯤의 속성에 대해 얘기를 했었는데, 이 비누의 까만색 역시 그냥 까만색이라고 하기 어려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난 그냥 퉁쳐서 색깊이라고 부르는데, 마치 기타에서 ‘톤’처럼 정말 멋진 색깊이를 가진 물체는 그냥 돌맹이만 되도 멋지다. 너무 멋진 걸 보면 가끔 한입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걸 꾹 참고 세수만 한다. 세수만 하기에도 비싸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