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슈퍼

몇년전에 사라질 동네 슈퍼 이야기를 했었는데, 뭐 예상대로 작은 마트는 사라졌고, 좀 큰 마트는 남아있게 되었다. 윤리적인 소비라던가, SSM의 등장에 관한 뉴스 혹은 어제 저녁 피디수첩에서 나오던 프랜차이즈 이야기를 들으면 다시 갸우뚱하게 된다. 대기업 체인이 아닌 동네 깡패 마트가 다른 동네 마트를 죽였는데, 그 마트는 대기업 체인이 아니니 선택을 해야하는가 말아야하는가. ((물론 대안이 없으니 그냥 여길 찾게 되리라))

아침이나 저녁 때 회사 근처 패밀리마트에 담배를 사러가면 그 매뉴얼화된 친절함에 좀 무섭기까지 하다. 마치 훈련소에서 주특기 훈련을 마친 4.2인치 박격포병처럼 하나에 안녕하세요 둘에 현금영수증드릴까요 셋에 감사합니다. 등등. 손님이 부담을 전혀느끼지 않도록 너무 친절하지도 무례하지도 않게의 5.5:4.5의 배합으로 훈련된 눈높이와 목례 각도를 익힌 그 알바생의 절절함. 나의 친절 멘트가 하나라도 빠지면 50미터 앞 편의점으로 손님을 뺏길 거라고 세뇌된 가맹점주의 가련함이 눈에 밟힌다.

그리고 동네의 또다른 반지하 수퍼에 담배사러 가면 왕수퍼 오야지가 담배물고 텔레비전 보다가 담배주세요 하면 쳐다보지도 않고 잔돈을 던진다. 이 가게의 모든 물건은 담배보다 덜 신선해 보인다. 이 아저씨는 구지 이 장사 안해도 먹고 사는데 큰 지장없어 보인다.

도대체 윤리적인 소비라던가 하는 것을 어디가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피디수첩보다가 재미없어서 채널 돌렸는데 강심장이 하는 것은 좀 다행. 강호동이 싫으니 다시 피디수첩을 볼 수 있었다.

super super

장사가 꽤 잘 됐던 것 같은 슈퍼가 하나 있다. 이름도 깔끔하게 s-마트. 지하철역이 있는 사거리를 접하는 네개의 블럭 중 하나인 우리집 블럭은 다른 4개의 블럭과 마찬가지로 언덕 위. 다시 말하자면, 지하철역 사거리가 가장 낮은 지점이다 보니, 사람들은 지하철역에서 나올 때 최대한 에스컬레이터로 높은 출구를 이용한다. 그리고 그 높은 역의 출구에서부터 어느 정도 평지인 길을 따라 몇개의 가게들이 있었고, s-마트는 나름 그 가게들 중 (( 업종과 상관없이 )) 에서 가장 잘 나갔었던 것 같다. 나름 24시간이고, 가격이 얼마나 싼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콘비니들보다는 쌀테고, 그다지 대량 구입의 필요가 없는 우리집의 특성상 가장 많이 이용하던 가게. (( 학동역 10번 출구 골목 아니 구글 지도 한국 서비스 시작했다메 ))

그런데 정확히 그 가게의 맞은 편에 그 가게의 두배쯤되는 가게가 생겼다. S 마트가 세입자인 반면 (( 이 건물 – 수산빌딩 – 나름 내 2학년때 선생님이셨던 방철린 – 그렇다 안기한테 행당동 집장사라고 하셨던 – 선생님이 하신건데 )) , 새 가게, 한국 유통은 건물주가 직접하는 모양. 나름 덩치가 있다고 싼 값으로 작은 가게를 압박하고 있다. 어느날 두 가게다 눈이 부실 정도의 조명을 하기 시작했고, 세일을 하기 시작했으며 무슨 회원카드도 발급하기 시작.

작은 가게 카운터에 손님여러분 살려주세요 인간적 도리에 어긋난 저 한국유통을 망하게 해주세요풍의 간곡한 A4사이즈의 편지를 적어서 붙여둔 걸 보니 싸움이 오래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과연 이 블럭 하나를 가지고 저 두 가게가 얼마나 살아날 수 있을까. 하나가 망한다 쳐도, 큰 가게는 과연 이 블럭 하나를 가지고 저 덩치를 유지할 수 있을까 꽤나 흥미진진하다. 내 상식으로는 저 정도 매장 규모를 유지하려면 한 블럭 가정집 상대로는 택도 없을텐데, 일단 자기 자본으로 유지를 할테니, 한동안은 아무 생각없이 돈까먹다가 작은 가게가 망하는걸 보고는 앗싸 우리가 이겼어 하고는 그런데 우리는 왜 망할까로 진행되서 결국엔 블럭안에 편의점만 남게되리라… 라는. 이런류의 가게 – 건물 – 도시 생태계란 케냐의 코끼리 생태계만큼이나 재미가 있다. 세입자 가게 주인 혹은 24시간에 혹사당하는 비정규직 카운터 직원 여러분께는 죄송.

아참, 나는 24시간 가게 없으면 살기 힘든 인간이긴한데, 24시간 가게들이란데는 참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 밤시간만 하는 가게라면 몰라도.

Day

발에 상처가 생겼다. 
만만하게 생각했던 예비군 훈련이 난데없는 산행으로 바뀌면서 느슨했던 전투화가 발과 마찰을 일으켰는지 아주 작은 상처였는데 그것이 어젯밤부터 붓기 시작했다. 이미 밤은 늦었고 마감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 아무것도 못한 상황인지라 군대에서 이와 동일한 병 – 봉화와직염 : 군대에서만 걸린다는, 사회에서 걸리면 쪽팔리는 염증 – 이 같은 발에 생겨 한달 가까이 입원한 병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오늘, 더 귀찮아지기 전에 일어나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집으로 왔다.

목이 너무 말라서 (분명 목이 자주 마른 것은 담배탓일거다.) 수박을 꺼내 수박의 지름을 포함한 가장 넓은 면을 단면으로 원을 만들어 수박을 잘라내서 급하게 먹었다. 정말 시원했다. 물이라던가 다른 음료수를 먹어서는 느낄 수 없는 다른 시원함이 과일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자두, 복숭아, 수박 등의 물컹 물컹 과일을 좋아한다. 의료보험증을 찾아서 집을 나섰다. 병원하면 얼마전에 갔던 그 종합병원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그 절차와 먼 거리를 피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보니 옛날 동네 – 차도를 사이로 저쪽 아파트 단지에서 이쪽 아파트로 이사왔다. – 에 있는 아파트 상가의 소아과가 떠올랐다. 얏빠리. 동네병원 이케.

B상가까지 가는 길은 걱정보다 그리 멀지 않았다. 녹지율 30%라는 아파트 단지의 자랑답게 나름대로 나무 사이로 걸어가다보니 금방 도착했다. 아니면 어렸을 때 학교가는 길이어서 그리 멀게 느껴졌던 것일까나. 상가의 1층에는 떡집과 문방구, 약국이 있다. 그 문방구는 6학년 때 같은 반 아이네 부모님이 하던 가게였다. 5년전쯤에 갔을 때만 해도 그 분들이 그대로 있었는데 이번에 바뀌었나보다. 무슨 무슨 팬시 어쩌구 저쩌구. 문방구란 글자는 간판에서 빠졌고, 아이들이 쪼그리고 앉아서 하는 게임기는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바뀌었다. (동전 플레이스테이션도 있다니!) 모기업이 망하고 같이 망할 줄 알았던 2층의 수퍼마켓 체인은 옛날보다 조금만 더 지저분해진 채로 잘 돌아가는 듯 했다. 3층까지 후딱 올라갔다. 3층에 있던 교회는 어디론가 이사갔고 – 교회가 망하는 경우는 못봤다. – 그 자리에는 요가원이 생겼다. 치과를 지나 소아과에 들어갔다.

의약분업 이후 내부가 바뀌었겠지. 그리고 요가원에 자리를 좀더 내주었으려나. 병원에 거의 올 일이 없었던 내가 이곳을 찾았던 이유는 대부분 예방접종이었거나 동생 혹은 할머니를 데리고 오는 경우였다. 아니면 동생데리고 오는 엄마를 따라 왔던가 좀 더 커서는 전화를 해두었으니 약을 타오라는 엄마의 심부름 등이었는데 이젠 그럴 일도 없겠다 싶었다. 그래도 진료 카드란 것이 있어서 벽 한쪽을 빼곡히 메꾼 서류들을 동 호수 대로 뒤지면 나의 카드가 나오곤 했었는데 그것들을 모두 없애고 새 손님들만 컴퓨터로 입력을 해왔는지 간호사는 나의 이름을 물어보고는 새로 신상명세를 컴퓨터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꽤나 버벅이는 것이 아마도 새로운 손님이 드는 일은 무척 적어서가 아닐까.. 등등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아 병원을 휭 둘러봤다. 그 소아과는 좀 더 작아졌다. 항상 우는 아기들을 포대기로 업은채로 달래는 엄마들로 붐볐던 곳이 손님은 하나도 없고 소아과답게 작은 의자에 앉아 있으니 박스안에 덩그라니 놓여진 기분이었다.

훤칠한 키에 아이스크림 케익을 담을 때 쓰는 스치로폴 박스를 하나 든 남자가 들어왔다. 그리고 내 이름이 불렸다.

진찰실에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 계속 의사 선생님의 얼굴을 기억하려고 했었다. 처음 이 병원에 왔을 때는 40대 초반 혹은 30대 후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양복 바지를 양말에 넣는 오야지풍으로 자전거를 타는 이 의사 선생님을 마주 칠 수 있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어색한 존대말은 여기까지 곧 이 의사 선생님은 끝없이 중얼거린다. 어이구 저런. 이걸 어쩌나. 아니 어쩌다 그랬어. 소독을 좀 해야겠네. 최대한 누워있어야돼. 어휴…. 추임새와 처방이 구분이 안가는 탓에 집중해서 들어야하는 이 분의 중얼거림은 마치 주문같다. 정말로 이 녀석 얼마나 아프겠노.. 하는 할머니의 걱정스런 말투처럼 중얼 중얼 중얼. 꽤나 효과가 있다. 이 의사 선생님의 얼굴은 딱 장년에서 노인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얼굴이다. 조금만 더 있으면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될테고 그 때 저 주문은 최고의 효과를 발휘할 듯 하다. 간단히 소독을 하고 반창고를 붙이고는 주사실로 갔다. 엉덩이 주사는 예방 접종, 군대에서 동일한 병으로 입원했을 때. 그리고 이번이다. 항생제 주사를 맞을테고 그 주사가 아플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서 있었다. 분명 바지 내리고 엎드리라고 할텐데.. 소아과다운 스케일의 침대여서 상체와 한쪽다리만 살짝 올리고 주사를 맞을텐데.. 아 어색해. 별별 걱정을 다했다. 어색한 건 문제가 아니었다. 예상대로 ‘항생제 주사니까 좀 아플거에요.’ 라는 간호사 누나의 말과 동시에 바지를 내리고 어색한 자세로 누웠다. 최대한 주사맞는 쪽 다리에 힘을 뺐다. 조금만 움직이면 힘이 들어간다. 탁탁탁탁 엉덩이 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프니까 천천히 놓을께요. 다리에 힘을 뺀 상태를 유지하는 나와 최대한 천천히 주사를 놓으며 동일한 세기로 엉덩이를 치는 간호사 누나 둘의 평형 유지의 긴장감 덕에 아픈 지는 몰랐지만 꽤나 긴 시간이 흘렀다. 이 귀찮고도 자잘한 이야기를 적어야지하는 생각이 든 것도 이때쯤. 느낌으로도 긴 시간이었고 실제로도 이렇게 오래 주사를 맞긴 처음인 듯 하다. 엉덩이를 문지르고 있으니 슬슬 뻐근함이 퍼져 나가는 듯 했다.

반쯤 열린 주사실 문틈으로 그 키 큰 영업사원 풍의 사내가 들어왔다. …. 5개 이야기하셨는데 2개밖에 못구했습니다. 아니 정말로 2개 밖에 못구했네..허허. 처음이 중요하니까요. 일단 물건은 들어와 있습니다. 마약? 장기? 곰발바닥? 손님이 바로 옆 문열린 방에 있는데 당연히 그런 살벌한 거래가 있을리 없지 않나. 역시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이려니 하면서도 살짝 볼까. 눈이라도 마주 치면 어쩌지.. 하다가 안녕히 계세요. 하고 나와버렸다. 무슨 건강 식품 종류라던가.. 그런 거겠지. 도대체 뭐길래 스치로폴 박스에… 처방전을 받고나니 곧 잊혀졌다. 혹시나 군대에서 먹었던 약과 같은 종류일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다시 보면 기억이 날 듯 했다. 한달 의무대에 있으면 의무병들 하고 놀면서 약이름 외우기 등의 암기 강요를 통해 – 나름 재밌게 지냈다 – 적어도 내가 먹은 약이 무엇 무엇인지 그리고 중간에 상당히 강력한 항생제를 먹어서 이 약은 내성이 생기니까 자주 먹으면 안된다 등등을 배웠었다. 아쉽게도 내가 아는 이름은 없었다. 1층의 약국으로 가는 길에는 애들이 뽀려온 자전거를 수리해서 되판다는 자전거포 – 소문이려니 했는데 내 자전거를 여기서 찾은 적이 있다. 그 아저씨 당당하게도 어? 그럼 가져가로 끝냈다. 초딩이 뭐가 두려우랴 – 가 그대로 있었고 그 아저씨도 그대로 멍하니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빵집을 돌아 세탁소를 보니 세탁소 아저씨도 그대로였다. 보통 아파트 단지에서 특유의 세탁소 발성으로 세탁~을 외치는 아저씨. 가운데의 머리는 깔끔하게 없고 주변 머리를 파마한 헤어 스타일과 조금 스타일 달라졌지만 눈 주변의 넓은 점 때문에 쓴 걸로 추정되는 선글라스도 여전하다. 아마도 드라이크리너로 생각되는 곳에 세탁물을 넣고 있었다.

이 약은 걸러서 먹으면 안되고 무조건 하루 세번 먹어야해요. 약을 받아든 순간 배가 사르르 아팠다. 아. 수박. 
상가 화장실은 휴지도 없을 테고. 지저분할텐데. 게다가 휴지를 사기 위해 수퍼까지 올라가긴 너무 싫었다. 한번 지나온 동선을 다시 돌아가는 것은 귀차니스트의 수치라구. 좀 참으니 괜찮아 졌다. 제대로 된 커피 한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버스 정류장에 갔다. 배도 다시 아팠고 정류장 맞은 편에 좀 제대로된 커피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근처 은행에서 무선 인터넷 신호도 쏘니 들어가서 깨끗한 화장실도 가고 커피 한잔에 잠시 인터넷… 까지 잘도 합리화해서 가게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화장실 어디에요 묻기 쑥스러워 일단 앉았다. 메뉴판을 받자마자 스트롱이요.라고 하고는 괜히 파워북 한번 꺼내서 뚜껑 열어보곤 화장실 어디냐고 물었다. 꼭 허무하게 화장실은 가게 밖에 있다. 돌아와 보니 신호는 잡히지 않았다. – 여기까지 쓰고 신호 확인해보니 잡힌다 –

이제 글 올리고 나가야지 하는 차에 커피를 더 준다네. 오케. 아. 해진다. 힘도 나는군. 이제 학교로 절뚝거리지만 힘차게 돌아가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