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일

1. 서울 올라와서 작품 철수하고 있을 무렵. 동생에게 전화. 형 엄마 생일이야~ 오오 이런.

니자카한테 열라 갈굼받으며 집으로 복귀. 선물은 무얼.. 하나하다가 보인 꽃가게 (라기 보단 화분가게-_-;;) 에서 환타지아..던가를 사서 얼렁 왔다. 정말로 엄마 맘에 드는 꽃 하나 고르려면 힘든게 사실이지만 그나마 꽃키우는데 취미가 있으니 다행이다.

사실 엄마 아빠의 선물을 고른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내가 돈이 많은 경우라면 뭐 걱정할 것이 있겠냐만은…. 용돈받아 쓰면서 비싼 거 사드리는 건 정말 우스운 거고. 친구들처럼 씨디를 사주기도 뭐하고 (사실 다행히 저번 아부지 생신 땐 양희은 앨범이라도 나와줬으니 다행이었지만) 옷 사드리려고 해도 엄마 아빠 급의 옷이란 비싸기 마련이고… 취미에 맞는 선물이래봐야 골프 용품 -0-;; 존나 비싸기 마련. 무얼 드리던 고마워하시면서 받으시기야하지만서도. 막상 그 선물이 그냥 방한구석에 처박혀 있기만 하는걸 보면 더 미안해진다. 선물을 고를 때마다 부모님과 나 사이엔 참으로 공감하는 부분이 적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 작품 철수를 하면서도 여전히 꿀꿀했다. 교수님께도 미안하고. 기대 아닌 기대를 해준 형들한테도 미안하다. “다음번에 잘해야지”할 수 없는게 졸업작품인것을… 쩝.

3. 미나뤼 로그. 좀만 기둘리. 다음주쯤이면 시작할 수 있으리라.

4. 참 중요한 걸 잊고 있었네요. 오늘은

많이 오세요 🙂

가족 여행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간다.”는 건 우리 가족에겐 참으로 어색한 일입니다. 작년까지 한번도 가족만이 함께한 여행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물론 제가 기억하기 힘든 어렸을 때 갔다는 건 아부지가 찍어두신 빛바랜 사진들 속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만. 물론 가족 모두가 여행을 한번도 안간건 아닙니다만 항상 다른 가족들과 조인트형식으로 가곤했었죠. 그러니까 두세집안이 함께 제주도를 간다던가 동해를 간다던가. 대학교 1학년땐 태국에도 갔었군요. 결국 순수한 의미의 가족 여행은 올 해 들어가기 시작한 겁니다.
참. 어색한 일이 되어버린 거죠. 평소에 집에서도 거의 대화가 없던 식구들이 어딘가에 함께 가서 몇일을 자고 온다는 것이.

이런 어색한 행사가 난데없이 시작된 것은 동생이 아프고 나서부터입니다. 결국 가족간의 대화가 많이 필요하다는 결론. 안가던 여행이 시작되었고. 평소에 제 친구들끼리 MT용으로 사용되던 콘도에 가게 되었습니다. 성수기 콘도 사용기간 제한에 의해 2박 3일이라는 짧은 여행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만.

참. 어색하죠. 식구들끼리 바다에서도 무얼하나… 그렇다고 저녁이 되면 함께 노래방을 갈 수를 있나… 저녁을 먹으면서 무슨 대화를 하지? 친구들이랑은 그렇게 잘하는 것을 가족과 함께는 그렇게 어색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평소에 가족과 대화가 많다던가 그런 경우라면 저와 저의 가족들이 경험한 어색함이 도대체 이해가 안가시겠지만 말이죠.

그렇다고 저희 집안이 엄청나게 문제 집안인가.. 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제가 느끼기엔 아주 normal한 집안이란 것이죠. 문제는 normal한 정도가 이정도라는 것. 식구 중 하나가 아프거나 무슨 일이 있기 전까지는 가족에 대해 생각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제부터라도 식구들과 얘기를 좀더 많이 해야겠습니다… 뭐 이번 여행에선 그래도 평소완 많이 다르게 대화도 많았고 부자 당구 시합도 있었고.. 참 “어색”하지만 즐거웠고 많은 “진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재충전

재충전의 시간인 주말. 신체적인 충전 뿐 아니라 연인과 함께 쫙, 가족과 함께 쫙. 쫙쫙 충전하였습니다.=)
동생과의 스타 대전. 둘다 손이 많이 녹슬었지만 (넌 녹슬어도 상관없다구? -.-;;) 수많은 승을 올리며 기분도 올라갔습니다 =)

문제는 돈도 쫙쫙 나갔다는게.. 이거 참.. -.-;;

바나나 우유

좋아하시는 분들 많죠? 어떤분은 이걸로 홈페이지 대문을 다 하실 정도입니다만…

어린 시절엔 꽤나 약골이라 자주 아팠습니다. 그리고 바나나 우유란 황도와 함께 제가 아플 때만 먹을 수 있었던 특제 음식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흰 우유 이외엔 우유로 치지 않으셨기 때문에 (사실 단 것은 어떤 것도 안됐습니다. 사탕이나 과자도… 어린이에게 단거를 못먹게 하다니!!) 이런 특별한 날이 아니면 먹을 수가 없었죠… 그리고 평소에 무지 바쁘셔서 일주일에 한번 정도 뵐 수 있었던 아버님이 손잡고 병원 데려가시고 할머니와 어머니가 제 곁에 있었던… 그리고 그렇게 아픈 날이면 항아리 우유를 먹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

하여튼 오랜만에 집에 들어갔습니다.
텅빈 집에 뭐 먹을 거 없나 찾다가 냉장고에서 발견한 “가족용” 항아리 우유. 대가리 좀 컸다고 (웃!) 집에도 잘 안들어가고 그러던 저에게 항아리 우유가 한참동안이나 부엌에서 나오질 못하게 하고 결국은 사진까지 찍어달라고 하더군요 ^^

막내 삼촌

제 막내 삼촌은 연극을 하십니다. 네. 분명히 연극으로 돈을 벌지는 못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낮에는 공무원생활을 하시겠죠) 그렇지만 지금도 부천의 작은 소극장에서 열심히 단원들을 이끌고 계십니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조그마한 의대를 나오셨지만 자신안의 열정을 삭이지 못해 온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난데없이 연극을 시작했고 (아 당연히 도시락 싸가며 공부시켜 의대보낸 형수님 – 저희 어머님 – 은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요^^) 결국은 자신이 대표로 있는 조그만 소극장을 가진 극단까지 차리셨습니다.

아직 극장이 없던 시절, 이 시민 회관 저 고등 학교로 공연장을 찾아 공연하던 시절 관객 수의 일환으로 자주 초청되었던 저와 할머니^^는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삼촌이 연극에 나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저는 참 즐거웠습니다. ^^ 공연이 끝나면 단원들 회식 뒷치닥거리를 해야만 했던 어머니는 좀 괴로우셨겠지만. ^^;;

아직도 그 극장이 잘 운영이 되는지 하시고 싶은 연극은 마응껏 하시는지는 몰라도 낮에는 공무원 생활에 찌들면서도 지친 몸을 이끌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시고 계신 막내 삼촌 – 전 사실 봉구삼춘!이라고 부릅니다만..^^- 을 보면 오늘도 “아 이제 졸업하고 무얼하지? 돈도 잘 벌어야하는데… “등의 걱정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음.. 자네, 지금 뭐하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