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초에 읽었던 것들

새해에는 책 좀 많이 읽어야지. 하는 결심만 40년째 해왔습니다만, 아이의 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에 자주 가는 덕에 저도 그 결심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회사 다니고 정신없을 때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책을 멀리할테니 할 일 없는 연말 연초에 책이나 많이 읽자. 하고 아이 책 빌릴 때 제가 읽을만한 것도 몇권씩 같이 빌려왔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의 도서관네트웍이 잘 되어있고, 한인 비율이 높은 덕에 한국의 도서관에 있을만한 책들은 모두 빌릴 수가 있었습니다. 아이 덕분에 한국에서도 통 안가던 도서관도 가고, 한국에서 통 읽지 않았던 한글책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 한국에선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교과서부터 영어로 하고 전공서적들도 모두 영어라 거꾸로 한글책을 볼 일이 없었는데 말이죠 –

공부머리 독서법, 최승필, 책구루

우습게도 아이에게 책읽는 습관을 키워야겠다고 책을 읽었는데, 나 자신을 돌아보는 책이 되었습니다. 알고보면 어릴 적에 책을 굉장히 좋아했었는데, 이제 왜 안그런지 이유를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뜬금없이 연말부터 독서를 할 수 있게 해준 시작이 된 책이었습니다. 한국의 입시를 기준으로 쓰인 책인데, 이 책에서 주장하는 ‘독서법’이 여기 유치원에서 하는 교육과 일치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몇몇 표현들은 아이의 유치원 선생님과 보조 자료로 학부모에게 전달되는 이야기를 번역한 것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었을 정도니까요. 가장 인상깊었던 문구(?)라면

핀란드는 8세 미만의 아이에게 문자를 가르치는 것을 아예 법으로 금지해놓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문자란 영어 같은 외국어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모국어인 핀란드 알파벳을 말하는 거죠. … 독일의 초등학교 취학 통지서에는 ‘귀댁의 자녀가 입학 전에 글자를 깨치면 교육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 문구가 버젓이 박혀있습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팩토리나인

저 입시 지도서같은 제목의 ‘독서법’ 책을 읽고 난 후 ‘아이에게 무슨 책을 어떻게 읽히자’는 생각은 별로 안들었고, ‘내가 무슨 책을 읽을까’하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제가 한 반성 두가지는 1. 소설을 읽자 2. 어려운 거 읽지 말자. 였습니다. 제가 한동안 책을 집중해서 보지 못한 것이 입시와 성적 위주로 책을 읽어서 도장 깨기하듯 빨리 빨리 더 어려운 걸로. 하는 투로 책을 읽었던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소설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었을지도요. 그래서 최대한 느긋하게 쉬운 소설을 즐기자라는 이유로, 원래 웹소설로 유명했던 베스트셀러를 선택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상상력을 자극하고 넷플릭스 판타지 시리즈물을 보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엔 살짝 눈물로 흘릴 수 있었습니다. 읽고 나서 너무 기분이 좋아서 괜히 영화 감독 남편인 친구한테, 야 이거 감독님한테 읽어보고 넷플릭스 시리즈 한번 만들어보시라그래. 라고 까지 했습니다.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문학동네

위의 가벼운 책에 버프를 얻어서 또 다른 소설에 도전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을 재미있게 봤으니, 이것도 재미있겠네 하고 정세랑 작가의 책을 선택했는데, 아뿔싸. 첫장에 족보같은 것이 나오는데, 그 수많은 등장인물을 저는 따라잡을 수가 없더군요. 중요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인물간의 관계가 그려지지 않으니 책에 집중이 안되서 포기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니 이런 게 좋네요. 포기하면 반납. (평생 도서관에서 책빌려본 적 없던 사람)

파나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이본 쉬나드 / 이영래 번역, 라이팅 하우스

유튜브에서 우연히 ‘왜 파타고니아 조끼가 월스트릿의 유니폼이 됐나’를 봤습니다. 이전부터 파타고니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만, 저처럼 야외 활동 및 야외 활동 관련 디자인 모든 것을 혐오하는 사람에겐 관심 외의 것이었습니다. 그 영상을 보고는 살짝 파타고니아에 대해 검색해보고 이 회사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책이 있길래 함께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너무 감명을 받아서 이 책을 읽고난 후의 몇주간은 만나는 사람마다 파타고니아 사장 이본 쉬나드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옷 좀 그만사’가 그 분의 결론인데, 뭔가 이 분 너무 멋져서 괜히 파타고니아 옷을 살 일이 없을까 기회를 노리게 되었습니다. 몇구절 보다가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반면, 삼림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벌목과 제지용 펄프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나무 농장을 ‘지속 가능한’ 관행으로 홍보하고 있다. 목재의 진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2X4, 2X6 공법으로 목조 주택을 짓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아무도 나무로 집을 짓지 않는다. 건물의 질이 훨씬 낮고 정부가 그런 업계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균적인 미국인의 읽기 능력은 8학년 수준이고 미국인의 50퍼센트는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 정부는 그런 우리의 수준을 반영한 정부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자기 사업을 시작해서 가능한 빨리 키운 뒤 현금화하고 은퇴해서 레저 월드에서 골프나 치며 여생을 보내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기업 자체가 상품이다. 샴푸를 팔든 지뢰를 팔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 회사가 제대로 살이 오르면 수익을 남기기 위해 팔아 치운다. 회사의 자원과 재산은 산산조각 나고, 사용하고 버리는 개체로서의 기업이라는 개념이 사회의 다른 요소들에게로 이어진다.

어찌보면 책 전체 내용과는 상관없는 구절들인데, 평소에 가지고 있던 질문들에 대한 답변같아 보여서 찍어두었습니다.

이제 연휴가 끝나고 회사일이 시작되니 당연히 책읽을 시간이 줄어들고, 유튜브 편집하랴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 부탁드립니다.) 홈페이지 정비하랴 뻘짓할 시간이 없다는 핑계가 생겼습니다만, 큰 부담없이 계속해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숙제하듯 책을 두고 빨리 끝내고 싶다는 기분으로 빠져나가려는 듯 읽었는데, 이젠 읽은 페이지 다시 보고 이것 저것 찾아보고 느리게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제사 아이 덕분에 무언가 하나 더 배운 기분입니다.

By jacop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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