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

뭔가 기록해둘만한 큰 일이 생김 – 아아 이런 건 나중에 잘 적어둬야지 – 아아 이런 큰 일을 하느라 블로그를 적을 수 없어 – (큰일끝남) – 아아 귀찮아 – 결과는 – 블로그에는 별로 안 중요하고 안 큰 일만 주렁주렁. 이번에도 그럴까 싶어서 그 때 그 때 정리 안하고 적기로.

집을 사기로 했고 본격적으로 하우스 푸어의 길로 걸어들었다. 가난하더라도 이쁘게 배고프고자 예쁜 집을 찾았다. 내년 쯤이나 알아볼까 하다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집이 나타나 덜컥 계약을 해버렸고 중개인을 필두로 은행-변호사를 삼각 편대로 일이 한번도 미끄러지지 않고 진행됐는데 삼개월이 걸려 열쇠를 건내받을 수 있었다.

이 집은 150년이 되었다. 외관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플라스틱 패널 마감이다. 미국 나무집들의 가장 보편적인 (이라 쓰고 제일 싸다 읽는다.) 마감이다. 아마도 미국 가정집들의 이해할 수 없는 싼 느낌의 98%는 이 재료에서 온다고 본다. 마감을 제외하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좋은 점이자 나쁜 점이라면 뒷마당이 쓸데없이 넓다는 것인데, 옆집들은 차고를 만들어 두고 너무 넓은 마당을 조금 줄였다.

열쇠를 건네받는 날, 이전 주인을 처음 만났다. 사실 모든 계약은 변호사 혹은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은 실제로 만날 일은 없다고 한다. 구순은 족히 되어보이는 전직 변호사이신 이 어르신은 딸의 학교를 위해 이 집에 이사왔고, 따님이 장성한 후 이 집은 자신의 오피스로 쓰거나 딸이 살거나 했다고 한다. 변호사답게 깐깐하게 집을 관리했다. 고용한 중개인들을 세번이나 갈아치우며 새 주인을 꼼꼼히 찾았다. 계약 전에 자기 집에 뭐가 언제 고장이 났고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를 적었던 문서를 보내왔고, 다들 이게 뭐지. 어리둥절하고 그 어르신의 중개인은 왜 이런 계약 파토날 일을 하냐고 어르신을 나무라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열쇠를 전해주는 날. 열쇠가 든 봉투에 그동안 자기 집을 관리해왔던 가드너, 배관공, 핸디맨 등등의 연락처를 프린트한 편지를 꺼냈다. 선물이라며. 이들은 이 집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그리고도 기억할 수 없지만 한참 이웃의 친구들 이야기와 그들과 얼마나 친했는가를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며 언제든 연락하라고 해주었다.

집이 사람의 몇 세대의 나이가 되니 내가 집의 주인이 된다는 생각보다는 이제 내가 이 집의 다음 세대 관리인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선배 집사는 그 일을 깔끔하게 끝내고 다음 세대를 위해 키를 넘겨준 셈이다.

이제 이사를 가기 전, 한참 인테리어 공사 중이다. 되도록이면 이 집을 그대로 두고 싶어서 물을 쓰는 공간들을 리노베이션하고 마감이 되어있지 않았던 지하실을 마감하는 정도로 공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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