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

이제 할렘도 예전의 할렘이 아니야. 라며 호기롭게 주차할 곳을 찾았다. 

이제는 할렘이라고 하기도 좀 뭐한, 141가에 사는 친구 커플 아들의 첫번째 생일 겸 여름맞이 바비큐를 위해 코스트코에 들려 주유도 하고 약간의 과일과 아이들을 위한 과자같은 것들을 싣고 조다리를 건넜다. 

그 친구의 아파트가 있는 지역은 뉴욕의 다른 주거 지역이 그렇듯 따로 주차장이 없고 길에 차를 세우도록 되어있다. 바로 집 앞에 주차할 곳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블록을 두세바퀴 돌면 그래도 주차할 곳이 나오기 마련이다. 두블럭 쯤 떨어진 길, 학교 앞 골목에 빈 자리가 보였다. 커다란 뮤럴 (벽화.. 라기보단 거의 합법적인 그래피티랄까) 앞에 덩그러니 아줌마 둘이 앉아있었다. 전형적인 할렘 스타일의 젊고 늙은 두 아주머니는 마치 이 동네 주차 관리 요원처럼 간이 의자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있다. 

아이들 파티가 될 줄 알았던 바베큐는 무지하게 발이 넓은 두 건축가 부부 호스트 덕에 뉴욕 건축인 모임이 되어버렸다. 으응 나는 wsp에서 일해. oma에서 6년있다가 나온 친구야 이 친구는 som 친구야 이런 콜대 선생이던 친구도 와있네. 아유 오토데스크에서 온 친구도 있네. 어찌 어찌 다 됐고 그래, 애들 데리고 온 사람은 없는거니? 오 이번에 헨리가 아이를 가졌어! 아유 축하해. 결국 솔이 또래의 아기들은 오늘따라 나타나질 않았다. 

영어쓰는 사람들, 특히나 동양인이 아닌 사람들에겐 쑥스럼을 많이 타는 솔이는 먼지가 많은 소파 주변에서 맴도는 고양이랑 논다고 얼굴을 소파에 묻었다 나왔다 하다가 생전없던 알러지 반응같은 것이 턱주변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결국 굽던 것들은 구경도 못하고 자리를 떠야했다. 

그 와중에 저번 방문 때 놀았던 놀이터는 기억이 났는지 놀이터 놀이터 해서 놀이터도 잠깐 들렀다가 화장실간다고 해서 놀이터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미국와서 본 화장실 중에 가장 더러운 화장실을 보았다. 그래도 할렘은 아직 할렘인건가. 아니 지역에 대한 혐오적인 발상은 그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종/계급에 대한 혐오와도 같은 것일까. 따위의 생각은 5초 정도 들었고 바로 ‘절대로 아무것도 만지지마!’라고 솔이에게 외쳤다. 화장실이 더러운 것은 더러운 것이니까. 

2시간 전에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갔다. 138가. 잘 놀지도 먹지도 못하고 가는 것이 참 아쉬웠다. 그래도 파킹 전에 앉아있던 아까 그 아줌마들에 아저씨도 하나 와서 앉아서 수다 떠는 것을 보고 훈훈한 동네구나. 커뮤니티란 이런 것일까 같은 생각을 하며 유모차를 접어 트렁크에 싣고 차의 시동 버튼을 눌렀다. 시동을 거는 것과 거의 동시에 내가 빠져나가기를 기다리는 차가 다가오는 것을 봤다. 내가 나오니 바로 파킹하는 장면을 백미러로 보면서 저녁은 어쩌지. 한잔이나 갈까 이번주에 외식을 너무 많이 했는데. 하며 그럼 일단 집으로 가자 하고 구글맵에서 목적지를 설정하고 핸드폰을 거치대에 꼽았다. 그리고 액셀을 잠시 밟았다가 사거리에 다다르자 대시보드에 이전엔 본적이 없었던 경고등이 보였다. 바로 ‘엥꼬.’

잠시 나를 의심했다. 내가 주유를 언제 했지? 설마 코스트코에서 한 5불 어치 넣었나 분명히 만땅 30불 넣었는데. 자동차가 잘못된 경고를 보내는 것인가. 시동을 껐다가 켜봤다. 오마이갓. 세시간 전에 만땅을 채웠던 차에 기름이 사라진 것이다. 할렘에서. 아니 그 기름 뽀려서 뭘 얼마나 돈이 된다고. 그냥 악질적인 동네 꼬마들의 장난인가. 그럼 두시간 내내 그 자리에 앉아있던 동네 주민들은 뭔가. 주차 관리 요원같아 보이는 건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동네 주차를 무서운 방법으로 관리하고 있었던 것일까. 도대체 2017년에 138가에서 왜 이런 일이 있는 걸까. 카오디오 떼다 팔던 7-80년대도 아닌 21세기에. 어쩌다 동양인 하나 얼굴보고 와 신기해 잭키챤하는 중부 시골 동네도 아니고 뉴욕에서. 이제는 하이라이즈가 점점 들어와서 땅값 비싸졌다고 징징대는 할렘에서. 

이제 차를 끌고 가족과 함께 그 동네에 가는 것은 심리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다. 무섭고 기분이 아주 나빴다. 백인들만 사는동네에 가서 살해 위협을 받는 흑인이 나오는 영화 겟아웃에서 주인공이 느꼈을 공포를 조금이나마 느꼈다. 집에 와서 시동을 끄니 그제사 긴장이 풀렸는지 온 몸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 화가 났다. 거리에게 배신당한 느낌이었다. 

Published by

jacopast

What to play wi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