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시절 과학 캠프같은 것에 갔었다.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쓸 데없이 개구리 난자시키고 지저분한 방에 다같이 모여서 자고 맛없는 밥을 먹는 곳이기도 했지만, 쏟아질 듯한 별을 보면서 별자리에 대한 설명을 들었던 좋은 기억같은 것도 있다. 자원 봉사자같은 역할로 엄마가 따라왔었는데, 단순히 자기 자식 수발드는 게 아니라 이것 저것 선생님을 도와 캠프를 굴러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셨던 것 같다.
캠프 초반에 풀같은 것을 수집하고 식물 도감 같은 것으로 이름을 확인하고 캠프 동안 잘 말려서 끝날 때 쯤 코팅해서 기념품으로 가져가는 행사같은 것이었는데, 우선, 식물도감같은 것을 가져오라고 했었든가… 했는데 그 당시에 식물 도감같은 것을 어디서 구할 수도 없었으니 대충 이름을 아는 식물 – 이라고 해봐야 네잎 혹은 세잎 클로버와 잔디 중에서 클로버를 고르는 수준 – 을 찾는 정도였으리라. 어쨌든 풀때기 하나 골라서 찾아서 보관해 뒀는데 캠프가 끝날 때 쯤, 코팅을 하기 위해 제출을 해야할 때 그 풀이 없어졌던 것이다.
엄마는 나의 무심함과 덜렁거림에 무척 화를 냈고, 기어이 뒷뜰같은데서 억지로 민들레같은 풀을 뜯어다가 코팅을 했다. 당연히 잘 마르지 않았으니 예쁜 풀떼기 샘플이 만들어질리가 없었다. 괜히 캠프에 따라와서 남들은 그냥 넘어갔을 일에 혼나고 왔으니 나도 기분이 좋았을리가 없었고 당연히 그 식물 코팅은 집에 와서 얼마 후에 사라졌을 것이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엄마는 아들하고 캠핑을 나와서 예쁜 풀로 만든 기념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아들이 무언가 배우는 과정 하나 하나가 예뻤을 것이다. 그 때 아들이 꺾은 풀마저도 소중하고 그게 코팅되어 남겨진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셨을까. 그런데 철없는 아들래미의 무신경함에 얼마나 화가 났을까.
작년에 킨포크적인 삶을 살겠다고 파한번 심어봤던 화분이었는데 해가 넘어가면서 신경쓰지않고 버려뒀더니 여전히 알 수 없는 이름의 “잡초”들이 자라났다. 과연 이 잡초들은 얼마나 자라날 지, 아무것도 안해줘도 ‘잡초’답게 잘 자라는지 궁금하고, 전혀 여기에 뭔가를 다시 심어볼 생각이 없는 고로, 그냥 뒀더니 쑥쑥 잘 자란다. 가끔 이 이름없는 풀들을 볼 때마다 그 과학 캠프 생각이 난다.
풀때기보고 엄마 생각하고 있던 날, 솔이의 최신 장난감 중 하나인, 무려 처음 함께 가본 극장의 영화라는 Car 3의 주인공 크루즈 라미레즈의 뒷날개가 부러진 것을 보고 꽤나 속상해서 솔이한테 주절 주절 잔소리를 했다. 이 놈은 귀찮아서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네 네 영혼없는 대답을 던지고 붕붕 다른 자동차들을 가지고 놀았고, 허허. 하며 나는 아이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
엄마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들, 그것들이 만들어 낸 기억들이란 것으로 나는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니, 그런 기억이 유전자를 통해 전해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 같다.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좀 더 진지해지면, 많은 문제 혹은 고민들도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