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 사람들의 공통점이라면 바로 ‘사서 걱정하기’이다. 딱히 정해두진 않았지만 가훈은 돌다리도 위험하니 물은 건너지마 정도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성격이 발현된 좋은 예가 어머니의 주소 암기같은 것 아니었나 싶다. (한동안) 외아들이었던 나에게 한글도 배우기 전부터 외우라고 해서 ‘서울시 구로구 개봉 3동 312-32‘ 라는 이 집의 주소를 혀로 외우고 있다. 이 집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2살부터 목동으로 이사간 12살까지 살았으니 나에겐 고향과 같은 곳인 셈이다.
부모님 댁에 예전에 찍어둔 사진을 찾아보면 좀더 그럴 듯한 사진이 있겠지만, 지금 찾아볼 수 있는 건 (그나마 다행) 구글 스트리트 뷰와 다음뷰 정도. 타일로 입면을 바꾸기 전에 검은 색 벽돌집이었을 때 눈이 소복히 쌓인 날 찍은 사진이 내 기억의 집에 조금 더 가깝다. 아버지가 설계하신 집에서 소년 시절을 살았던 것이 결국 내가 건축을 하게 된 그리고 이번 생은 망했어 것과 아주 연관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다.
이 집을 떠나고 성인이 된 후에 2번 정도 찾아가 봤다. 미치도록 할 일이 없을 때 – 군제대 후 혹은 대학원 복학 전 뭐 이런 때였던 것 같은데, 그 이후의 집주인은 심지어 그 집의 커텐조차 바꾸지 않고 살고 계셨다. 그러다 문득 (새해를 맞아) 이 생각 저 생각하던 차에 이 집이 어찌되었을까 궁금해서 조마조마하며 다음맵을 뒤져봤더니, 2013년 스트릿뷰에는 담장을 없어졌고, 내 방 꼭대기에 이상한 구조물이 올라가 있었다.
이게 뭐야 하고 자세히 보니 ‘자유의교회’ 아, 내가 살던 집이 교회가 되어있었다.
건축물이란 보통 가장 오래 남는 ‘물체’인지라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기억의 단서가 되어주는데, 서울에선 그러기가 쉽지 않다. 유명하거나 큰 건물도 휙휙 사라지는 서울에서 80평짜리 가정 주택이 30년 넘게 그 자리에 있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혹시나 없어졌으면 어쩌나 하고 지도를 봤었기 때문에 용도 변경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던 담장과 차고가 사라져서 아쉽긴 했지만, 집모양의 대부분은 보이는만큼은 거의 그대로이고 내부를 어찌어찌 터서 교회당으로 바꾸었겠지만 그 정도 크기의 주택이 변하면 얼마나 변하겠어. 만약 안에 들어가본다면 예전의 공간이 그대로 다 기억날 수 있을 것 같다. 다행이다. 딱 지금 기분이면 새 집주인이신 목사님을 찾아뵙고 두손을 잡고 고개숙여 감사하다고 오바떨 수도 있을 정도이다. 한국들어가면 꼭 아들데리고 가봐야겠다. – 언제쯤 가능할까.
6 responses to “개봉동”
Like 한번 누르겠다고 워드프레스 가입하고 트위터 계정찾고 찾은김에 훑어보고 먼길 돌아서 like.;
나중에 다시 사서 검은벽돌로 바꾸시길 기원합니다.
개웅초 앞에 이번달에 개봉3동 주민센터 신축설계끝냈다 .자코님 생가가 있었던 곳이었군 ㅋ
모기 승진하고 유승호도 이 동네 출신이라지
저는 1986년 8월, 이 경사진 언덕을 자전거를 타고 달려 내려가서 피아노학원 유리창에 뛰어들었죠. 친구와 함께. 새삼 여기 사진을 보니 반갑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승호야 반갑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셔. 요즘은 뭐하고 지내? 계속 영국에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