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동

우리 집안 사람들의 공통점이라면 바로 ‘사서 걱정하기’이다. 딱히 정해두진 않았지만 가훈은 돌다리도 위험하니 물은 건너지마 정도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성격이 발현된 좋은 예가 어머니의 주소 암기같은 것 아니었나 싶다. (한동안) 외아들이었던 나에게 한글도 배우기 전부터 외우라고 해서 ‘서울시 구로구 개봉 3동 312-32‘ 라는 이 집의 주소를 혀로 외우고 있다. 이 집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2살부터 목동으로 이사간 12살까지 살았으니 나에겐 고향과 같은 곳인 셈이다.

Gaebong_google_streetview_2009_zoomin2

부모님 댁에 예전에 찍어둔 사진을 찾아보면 좀더 그럴 듯한 사진이 있겠지만, 지금 찾아볼 수 있는 건 (그나마 다행) 구글 스트리트 뷰와 다음뷰 정도. 타일로 입면을 바꾸기 전에 검은 색 벽돌집이었을 때 눈이 소복히 쌓인 날 찍은 사진이 내 기억의 집에 조금 더 가깝다. 아버지가 설계하신 집에서 소년 시절을 살았던 것이 결국 내가 건축을 하게 된 그리고 이번 생은 망했어 것과 아주 연관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다.

이 집을 떠나고 성인이 된 후에 2번 정도 찾아가 봤다. 미치도록 할 일이 없을 때 – 군제대 후 혹은 대학원 복학 전 뭐 이런 때였던 것 같은데, 그 이후의 집주인은 심지어 그 집의 커텐조차 바꾸지 않고 살고 계셨다. 그러다 문득 (새해를 맞아) 이 생각 저 생각하던 차에 이 집이 어찌되었을까 궁금해서 조마조마하며 다음맵을 뒤져봤더니, 2013년 스트릿뷰에는 담장을 없어졌고, 내 방 꼭대기에 이상한 구조물이 올라가 있었다.

Gaebong_daum_streetview_2013

이게 뭐야 하고 자세히 보니 ‘자유의교회’ 아, 내가 살던 집이 교회가 되어있었다.

Gaebong_daum_streetview_2013_zoomin

건축물이란 보통 가장 오래 남는 ‘물체’인지라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기억의 단서가 되어주는데, 서울에선 그러기가 쉽지 않다. 유명하거나 큰 건물도 휙휙 사라지는 서울에서 80평짜리 가정 주택이 30년 넘게 그 자리에 있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혹시나 없어졌으면 어쩌나 하고 지도를 봤었기 때문에 용도 변경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던 담장과 차고가 사라져서 아쉽긴 했지만, 집모양의 대부분은 보이는만큼은 거의 그대로이고 내부를 어찌어찌 터서 교회당으로 바꾸었겠지만 그 정도 크기의 주택이 변하면 얼마나 변하겠어. 만약 안에 들어가본다면 예전의 공간이 그대로 다 기억날 수 있을 것 같다. 다행이다. 딱 지금 기분이면 새 집주인이신 목사님을 찾아뵙고 두손을 잡고 고개숙여 감사하다고 오바떨 수도 있을 정도이다. 한국들어가면 꼭 아들데리고 가봐야겠다. – 언제쯤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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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op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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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thoughts on “개봉동”

  1. 개웅초 앞에 이번달에 개봉3동 주민센터 신축설계끝냈다 .자코님 생가가 있었던 곳이었군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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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는 1986년 8월, 이 경사진 언덕을 자전거를 타고 달려 내려가서 피아노학원 유리창에 뛰어들었죠. 친구와 함께. 새삼 여기 사진을 보니 반갑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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