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거리

2014년 한해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큰 일들이 많았다. 솔이가 태어났고, 차를 마련하고 주차가 가능하며 세탁기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 외에 회사에서의 일들 역시 큰 일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일만 힘들고 별로 배운 것도 없고 결국엔 성과도 없었으며 같이 일한 사람의 안좋은 면만 잔뜩 본 경우도 있었고, 프로젝트의 기간이 워낙 길어서 내가 한 일은 태평양에 소주 한컵 같겠지만 무언가 그리기 전에 미리 공부해야할 것이 워낙 많아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샌프란시스코 캔들스틱포인트와 헌터스포인트 프로젝트남보스톤항 프로젝트가 있었다.

샌프란 프로젝트에서 내가 한 일은 가로 디자인이었다. 아니 디벨로퍼가 건물 매스 다 정해놓고 나는 가로수 심고 쓰레기통 박는 일을 한단 말인가. 디자인할게 뭐있어.라고 투덜대며 섹션을 그렸다. 쓰뎅 이거 한국에선 하루면 끝나겠구만. 하고 널널하게 10개 정도의 티피컬 단면을 끊고 한 주를 보냈다. 그러자 매니저가 물었다. better street manual 봤냐? 뭐래 이런 거 그리는데 무슨 매뉴얼이야. 그래 미국인들은 매뉴얼을 사랑하지. 그렇다치고, 그런데 베러 매뉴얼이라니. 뭐가 더 좋은 매뉴얼인데라고 궁시렁대며 에라 모르겠다. 하고 better street manual 샌프란 어쩌구 구글에 때렸다. 아차. better가 아니라 Better였구나. Better Street Plan 아 이런 매뉴얼이 있었구만. 하고 PDF를 다운받아서 이백페이지를 출력해서 제본을 하고 하루가 다갔 읽어보니 모든 것이 여기에. 뭐야 매뉴얼에 다 있는데 이걸 뭐하러 그려. 하고 다시 그려보니 아. 이게 쉽지가 않다. 몇백번을 고치고 고쳐서 마감을 했다. 그리고 나서 모든 거리들을 위계에 따라 매트릭스를 만들고 각 거리의 바닥 마감재와 가로수의 수종과 가로수 grate 패턴까지 선정하고 벤치, 쓰레기통과 자전거 거치대의 디자인을 선정하고 업체 선정까지 하고서야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여기까지 만들었어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전체 가로 실시는 또 다른 협의와 디자인을 기다리고 있다.

작년 연말에 잠시 남보스톤항 마스터 플랜을 건드렸다. 이 프로젝트는 99년에 (15년전에!) 회사의 제1직원이신 브라이언 할배가 만들었던 사우스 보스톤 공공 영역 계획을 기반으로 한다. 원래 산업 항구였으나 이제 용도가 바뀌고 15년간 그 계획에 따라 진행되었던 것들이 있고, 달리 진행된 것들도 있고 하니 마스터플랜을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샌프란의 경험을 바탕으로 매트릭스를 짜야할 것을 제안했다. 하고보니, 아니 보스톤에도 매뉴얼이 있어. 제길. 이름하여 보스톤 완전 거리 도대체 이름들이 왜 이 모양이야. 아 이 매뉴얼도 나쁘지 않다. 정치적인 고려 탓에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내부적인 평가가 있긴 했지만, 그래픽도 깔끔하고 세세한 디테일이 많아서 더 읽기 편했다. 이 프로젝트는 주지사가 바뀌면서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상태로 마감을 하였다.

이 두 프로젝트를 마치고 제1직원 ((40년전에 처음으로 회사에 들어오신 현재의 파트너, 직원넘버 001이시다)) 브라이언 할배와 세미나를 했다. 세미나에선 그 분이 직접 작업했던 스트리트스케이프 플랜들을 연대기 순으로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그 전에 이렇게 말했다. “통상적인 현대의 도시에서 가로가 차지하는 면적이 30% 이상이 된다. 이 거리를 냅두고 도시를 디자인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일단 여기서 한방 맞은 듯 했다. 가로수와 쓰레기통 따위. 라던 게 좀 미안했다. 그리고 20년전 프로젝트서부터 회사의 가장 유명한 배터리파크시티 마스터플랜과 최근의 작업들이 모두 Complete Street 이라는 개념 하에 이뤄진 작업이라는 설명을 해주셨다. 컴플리트 스트리트를 완전 거리로 구수하게 번역하면 좀 웃기지만 별로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모두를 위한 거리. – 아니 이렇게 안하는 도시가 어딨어! 싶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미국에는 National Complete Street Coalition 전국 완전 거리 연합은 뭔가 비열한 거리의 조폭 연합이냐 같은 단체가 이러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단순히 법규로 안전한 도로폭 등을 규제하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자동차와 교통 중심의 도로를 도시의 중요한 공공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법규 및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컴플리트 스트릿, 완전 거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내가 플래닝 전공이 아니라 이미 계획 분야에선 10년 전부터 진행되오던 것을 발견하고는 아 이런 것이 있었구나…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최근에야 결과물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 도시 계획 협회에 따르면 도시별로 꽤 괜찮은 완전거리계획이란 게 만들어지고 있다. ((심지어 어느 동네에 이런 계획이 있는지 도 있다.))

  • Boston’s Complete Street Guidelines (2013)
  • San Francisco’s Better Streets Plan (2011)
  • New York’s Street Design Manual (2009)
  • Chicago (Complete Streets Chicago, 2013)
  • Atlanta (Connect Atlanta Plan/Street Design Guidelines, 2013)
  • Portland (Portland Pedestrian Design Guide, 1998)
  • Minneapolis (Access Minneapolis, 2008)
  • Louisville (Complete Streets Manual, 2007)
  • New Haven (New Haven Complete Streets Design Manual, 2010)
  • Charlotte (Urban Street Design Guidelines, 2007)

이 거리 매뉴얼들을 발견하고 공부하다보니 왜 이 사람은 쓰잘데기없이 스트리트믹스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는지가 이해되기 시작했고, 그의 글을 변역기 수준으로 번역까지 해두었다.

틈날 때마다 Complete Street에 대해 뒤진 것들을 여기 적어두고 또 이 ‘완전 거리’의 상위 도시 계획 개념인 Form-based Code에 대해서도 찾아보고 정리해두어야겠다. 도시 계획을 전공한 사람이 있으면 대화하는 데 좀 도움이 되겠는데, 의외로 주변에 계획 전공자는 거의 없다. (나는 디자인 전공이라구)

5 responses to “완전 거리”

  1. 아. 이거 정말 좋아요!! +_+
    이런걸 진적 얼았더라면. 나도 논문 주제가 나름 거리였음. 단독필지주거지의 커뮤니티거리조성 어쩌고.. 제목이 생각이 안나네
    제인제이콥스 할머니의 엄청 두꺼운 책 읽고 무한 감동받고는 논문은 산으로 보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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