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규모에 감탄하는 일은 순수하게 규모에 압도당하는, ‘논리 이전의 감정’에 의해서도 있겠지만, 나는 규모로 인해 그것을 다루는 방법이 달라지는 경우에 더욱 감탄하게 된다. 물리 이론이 어느 순간까지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빛의 속도가 넘어가는 순간부터 다른 물리학이 적용된다든지. 지구 안에서는 뉴튼의 물리학으로만 모든 것이 설명이 되지만 지구 밖으로 영역이 확대된다든지, 생각의 영역이 빛의 속도 이상을 다루어야한다든지 하는 순간이 오면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이 필요하게 되는 순간이 오게된다. 그리고 그러한 아이디어의 계단을 딛고 올라서서 알고보면 아인슈타인의 E=mc^2가 뉴튼의 F=ma를 설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욱 살이 떨리게 마련. 엄청난 규모로 사고를 확장하게 되면 그 이전의 사고가 ‘틀린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 말이다.

랜덤하게 다운받아 봤던 ‘특선다큐’ 중에 나왔던 스웨덴과 덴마크 사이에 놓였다는 외레순 Øresundsbron 다리를 보던 중에 다시 한번 규모가 (quantity 兩) 내용 (quality 質)를 의심케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다리가 워낙 거대해서 녹을 방지하기 위해 방청도료를 철에 바르는 것보다 제습 설비를 설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는 설명이 나오는 순간 당연히 방청도료가 더 싸게 먹힐 것이라는 상식이 규모에 의해 의심되고, 의심없이 시행되는 원칙들에 대해 반성해야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울 강북 어디에 있다는 금으로 발라둔 왠 절 생각도 났다. 그 절을 몇년마다 칠하고 종이바르는 것보다 금박을 바르는 것이 더 쌌다는 주지 스님의 인터뷰를 보고 아 금보다 비싼 게 있구나.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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