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5년에서 10년의 습관에 대해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하며 바꾸라고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특히나 도면을 치는 사람들의 습관이란 아주 중요한 것이다. 화장실 한칸 그리는 게 아니라 몇백 몇만개의 선을 그어대는데 그때 그때 이게 맞는가 틀리는가를 고민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사람의 몸이 변하지 않는한 대부분의 ‘습관’들은 인간이 집을 짓기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건축가들에 의해 정제된 전통이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그러한 전통을 몸에 잘 익혀둔 사람은 그림을 빨리 그려낼 수 있다.
오랜 동안 인정받은 치수와 곡률, 방향 등등. 그런 것들을 잘 익힌 사람들에게 연차라는 계급을 달아주던 것이 설계 사무소의 오랜 전통이고, 그런 특수한 기능을 지닌 것이 바로 전문직의 프라이드였다. 병적으로 정리하고 모듈화시키고 이쪽끝에서 저쪽끝까지 300 혹은 600, 900과 같은 재료의 배수가 되도록 면을 나눠내는 능력 그것이 대칭이 되면 더욱 좋은 것이고 그 배수로 완성시키는 비례가 미의 척도였다.
손으로 도면을 그릴때 14930.5464 와 같은 치수가 나오면 어쩌라고. 치수선 딱 쳐서 600 900 손으로 써넣을 수 밖에. 도면은 그 배수의 영향 그대로 그려졌었다. 물론 나역시 저런 딱떨어지는 숫자의 힘 앞에 무력하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건축은 전문직이 아닌 것이 되었다.